(143) 서창2동 장아산 일대 - 유광식/ 시각예술 작가
국내 상황이 중심을 잡기 어려울 만큼 더욱 요동치고 있다. 이 사회가 얼마나 더 참사로 물들지 참담할 따름이다. 그렇게 을사년 2025년을 맞이했다. 이전보다 연말연시 분위기를 느끼지 못한 부분에는 어수선한 정치 상황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외국에 망신 격인 일들이 진행되고 있어 매우 안타깝다. 부디 기울어진 우리 사회가 하루빨리 일상이라는 삶의 각도로 회복되었으면 좋겠다. 이 와중에도 새해 일출을 기다린 분이 많았을 것인데 인천의 동쪽, 일출 격의 찬란함을 만나러 서창2지구로 향했다.
남동구 동측, 제2경인고속도로 바로 아래에는 서창2지구가 있다. 새 둥지만큼 따듯한 곳으로 사람들의 둥지가 모여 있다. 바로 위로는 고속도로가 지나가고 아래엔 소래습지가 자리한다. 얼핏 보면 비밀스러운 주거지처럼 보이기도 한다. 서창2지구에는 흡사 아기공룡 모양의 장아산(藏我山, 71.4m)이 있다. 이곳 사람들은 남북으로 기다란 산 너머로 올해 첫 일출을 보았을 것이다. 장아산에는 월성박씨 종중 묘역이 있다. ‘장아’는 중시조인 박구(朴龜, 1337~1404)의 호로, 고려 멸망 후 칩거하던 이곳 뒷산 명이 장아산이 되었다는 후문이다. 산 정상부(망경대)에서 개경 방향을 바라보며 나라를 생각했다고 하니 지금 국민들의 처지와 상황이 겹쳐지며 마음이 숙연해졌다.
지난 11월 폭설로 허리가 꺾인 소나무가 있는 관리사무소 앞에서부터 새해 다짐을 하기로 한다. 이곳은 무장애나눔길이 조성되어 누구나 어려움 없이 산 주변을 거닐 수 있는 곳이다. 입구 옆에는 장아초등학교가 있고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상상만으로도 들리는 듯했다. 산뜻한 겨울 맑은 날씨 속에 데크길을 걷다 정상부로 방향을 틀었다. 온 산을 뒤덮은 참나무 갈잎 색깔 탓인지 메주가 연상되고 구수한 산길로 여겨졌다. 인근 주민들도 삼삼오오 나타나고 까치가 반겨주는 한낮의 산책에 속이 다 후련했다. 잠시 데크 난간에 발을 얹어 스트레칭하는 분들도 계시고 시사 뉴스를 들으며 걷는 분도 계셨다. 강아지와 함께 온 분, 가족이 총출동한 팀도 있고 장아산 둘레길이 아주 인기 만점이다.
정상부에는 빙글빙글 올라가는 전망대가 있다. 주변을 한아름 눈에 담을 수 있는 곳이었다. 장아산 우측은 경기도 시흥과의 경계 구간이기도 했다. 산꼭대기에서는 소래산이 보이고 인천지하철 2호선 운연역 차량기지도 관찰할 수 있었다. 다짜고짜 언제 이렇게 푸르게 자랐는지 모를 인천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맑고 찬 겨울바람에 세수하며 가족과 더불어 이 사회의 건강을 접어 날려 보았다. 월성박씨 박구 할아버지도 내심 내던져 본 바람이 아니었을까 싶다. 수목이 다양하지 않아 나무가 듬성듬성해 보였지만 겨울산의 매력은 원래 칩거하는 것이라며 스스로 위안했다. 함께 걸으며 이것저것 주제들이 뛰어 올라와 대화와 이해의 길을 만들어 주니 부자 부럽지 않을 처지였다. 문화공간 쉼터에는 작은 숲속도서관 시설이 있다. 서창초등학교 아이들의 장아산 이야기책이 있어 잠시 읽어 보았다. 아장아장 걸으며 찾아낸 식생을 통한 재미난 상상을 그림과 글로 정리(불시착 비행물체를 모두가 도와 수리해 줌)해 책으로 꾸민 것인데 무척 흥미로웠다. 그리고 고마웠다. 집은 원래 사는 사람이 가꾸는 것으로, 장아산을 안고 사는 분들의 관심과 노력이 있으니 공원은 좀 더 푸르고 붉어질 것으로 믿는다.
걷다가 어느 밤나무 앞에 섰다. 나무를 와락 끌어안아 보았다. 어렸을 적 무던히도 오르며 놀던 나무였다며 매달려 보고 싶었다. 굵은 줄기를 잡고 발을 차며 힘을 주었다. 예전만큼 가볍지 않은 체중이 느껴졌고 오래 버티지도 못한 팔이 원망스러웠다. 그저 남아 있던 산 중의 놀이 기억이 강력한 근육질이었던 셈이다. 산은 세월이 쌓일수록 녹음이 짙어진다. 박구 할아버지가 지키고자 했던 나라는 과연 어떤 가치였을까? 변화를 수용하면서도 올곧게 지켜야만 했던 절개는 무엇이었을지 질문을 호주머니에 빵빵하게 넣고 보니 다시 입구다.
장아산은 높지 않은 산이지만 옛 조공 창고가 있었다던 서창동의 기준점이 되는 곳으로, 없는 듯 중요한 장소라는 점을 알게 되었다. 작년 개최된 ‘제1회 인천장아산문화제’는 주민의 공간에서 태어나 가을 기억을 선물했다. 문득 하늘을 가르는 여객기를 올려다보며 재차 무안공항 항공기 사고 희생자와 유가족분들에게 깊은 애도와 위로를 아니 실어 보낼 수 없었다. 지금부터는 전쟁의 씨앗이 발아하지 말며 사회적 사고가 피어나지 않는 나날의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새해에는 모두의 건강과 행복이 가득하길 두 손 모아 빌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