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절인연(時節因緣)’이란 말이 있다. 불교용어인데 요즘 세속에서는 ‘이루어질 일은 언젠가 기회와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는 뜻으로 쓰인다.
‘헤어질 결심’, ‘색계’의 탕웨이가 2014년 주연으로 나온 같은 제목의 영화가 있고 트로트 가수 이찬원의 노래로 많이 알려져 있다.
윤정환 신임 감독이 이끄는 프로축구 인천 유나이티드 선수단이 지난 2일 태국 치앙마이로 동계 전지훈련을 떠났다.
27일까지 이어질 이번 태국 전지훈련을 통해 윤 감독과 인유 선수단은 ‘1부리그 승격’이라는 당면 과제를 달성하기 위한 담금질을 시작으로 새 시즌을 맞는다.
창단 뒤 처음으로 강등된 인천구단이 지난달 22일 윤정환 감독을 새 사령탑으로 선임했다는 발표에 많은 축구 팬들은 반기면서도 의아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당시 위기의 인천구단을 구할 새 감독으로 2~3명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었지만 윤정환 감독은 거론되지 않았고, 인천과 최영근 감독의 계약도 정리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윤 감독은 2023시즌 하반기에 강등 위기에 놓인 강원FC 감독으로 부임한 뒤 ‘K리그2’의 김포FC와 승강플레이오프를 거쳐 강원의 1부리그 잔류를 성공시켰고, 2024시즌에는 ‘K리그1’ 2위라는 강원구단 사상 최고 성적을 올리며 우승 팀이 아닌 감독으로 ‘K리그 올해의 감독상’을 수상했다.
그런데 강원과 윤 감독의 재계약은 연봉 차이 등 이런저런 이유로 결렬됐다. 윤 감독은 국내 정상급 구단 또는 외국팀으로 옮길 예정이라는 설이 돌고 있었다.
전격적으로 이루어진 윤정환 감독의 인천행
때문에 전격적으로 이뤄진 윤 감독의 인천행을 보고 K리그에 정통한 축구인들도 “올해의 감독상을 받은 감독이 왜 2부리그 강등 팀을 선택했을까”라며 뜻밖이라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일어날 일은 하루이틀 사이에 긴박하게 이뤄졌다. 인유의 새 감독 후보자들의 거취가 가닥이 잡히면서 인유와 윤 감독은 ‘인연의 끈’으로 이어졌다.
윤 감독은 “인천 구단과 최영근 감독 사이의 상황을 알았더라면 생각을 달리했을 것”이라 말해 선택이 바뀌었을 수도 있었지만 인천으로 온 까닭으로 “1부리그 승격이라는 막중한 과제가 개인적인 동기부여는 물론, 열정적인 응원으로 잘 알려진 인천 팬들과 함께 인천의 새 역사를 써 내려가는 새로운 도전을 하기 위해 왔다”고 밝혔다.
윤정환 감독은 2002년 한일월드컵 국가대표 출신으로 한국축구에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최고의 플레이메이커로 활약했다.
1995년 부천 유공 코끼리에 입단하며 K리그에 데뷔한 윤정환 선수는 감각적인 패싱과 재치있고 명석한 플레이로 패스를 중시했던 당시 니폼니시 감독의 축구 스타일인 ‘니포 축구’의 핵심 미드필더였다.
이후 일본 세레소 오사카(1999~2002), 성남 일화(2002~2004), 전북 현대(2004~2006), 일본 사간 도스(2006~2008)에서 선수로 뛰었다.
윤정환 감독은 지난 2011년 일본 J리그 사간 도스에서 지도자 커리어를 시작했다. 이후 2015년 울산HD FC, 2017년 일본 세레소 오사카, 2019년 태국 무앙통 유나이티드, 2020년 일본 제프 유나이티드를 거쳐 2023년 강원FC를 이끌었다.
윤 감독의 지도자 경력 가운데 눈에 띠는 건 2011년 사간 도스 정식 감독 부임 첫 해 기적과 같은 승격을 일궈내는 데 성공했는데 이는 사간 도스 구단 역사상 첫 승격이었다.
2017년 세레소 오사카에서는 일왕배축구선수권대회와 J리그컵대회 우승을 차지하며 2018년 AFC 챔피언스리그 진출을 이끌어 단기 승부에도 강한 면모를 보여줬다.
‘뱀의 해’ 맞아 껍질 벗고 새롭게 태어나길 기대
2023년 9월, 창단 20년만에 진출한 아시아챔피언스리그(ACL) 조별리그 첫 경기인 일본 요코 하마 마리노스와 원정 경기에서 4대2의 쾌승을 거두며 큰 감동을 맛본 인천 팬들은 불과 1시즌만인 지난해 창단 후 첫 강등이라는 충격도 경험했다.
올해 을사년(乙巳年)은 ‘푸른 뱀의 해’라고 불린다. 뱀은 껍질을 벗고 새롭게 태어나는 과정을 통해 변화와 재생을 상징한다. 또 끊임없이 성장하며 지혜로운 판단으로 어려움을 극복하는 강인함을 상징한다.
선수단 체질 개선에 능하다는 평을 받고 있는 윤정환 감독이다. 인천 유나이티드와 윤정환 감독이 맺은 ‘시절 인연’이 좋은 인연으로 이어져 올 시즌에는 인천 팬들이 원하는 결과를 얻게 되길 새해 벽두에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