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왜 다시 우현인가 - 이원규 / 소설가, 『고유섭 평전』 저자
깊고 넓은 우현 미학
우현(又玄) 고유섭(高裕燮, 1905~1944)은 인천이 낳은 최고의 지성이자 문화독립운동가였다. 일본인 학자들이, 독창성 없고 열등하다고 평가했던 한국예술사는 결기에 찬 그의 연구로 우수함과 독창성이 증명되고 본연의 빛을 되찾았다.
그의 한국미술사 저술에 관한 후학들의 연구는 많으나 학문적 성과가 전부 해명되진 못했다. 그가 문(文) 사(史) 철(哲)을 뛰어넘으며 미술사 외에 문학작품을 쓰고 문화사 전반을 깊고 넓게 통찰해 저술했기 때문이다.
나는 『고유섭 평전』 집필을 위해 우현학에 빠졌을 때, 우현이 좋아하여 필명으로 쓴 ‘급월당(汲月堂)’의 의미를 되새기곤 했다. 원숭이가 연못 가운데 비친 달을 길으려 밤새 물을 퍼 올렸으나 날이 새어도 달은 여전히 연못 속에 있더라는 우화(偶話), 학문에 대한 그의 외경심이 담긴 것이었다. 그의 학문도 그렇다고 나는 깨달았다. 그 연못처럼 깊어서 퍼내도 퍼내도 해명되지 않은 것이다. 우현 미학은 그렇게 깊고 넓다.
민족예술사 해명 위한 미학 전공
우현은 경성제대 철학과에서 독일 유학파 일본인 교수를 통해 서양의 근대미학 이론을 습득했다. 미학이란 철학의 하위개념, 아름다움을 대상으로 삼아 그 본질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그는 콘라드 피들러(Conrad Fiedler)의 미학 이론을 분석한 「예술적 활동의 본질과 의의」을 졸업논문으로 썼고, 대학 조수 시절에「미학의 사적(史的) 개관」도 발표했다. 그렇게 방법론을 익히고 본격적인 한국미술사 연구에 나섰다. 양식사 중심이론과 예술의욕에 의한 관점, 역사적 사회적 배경 중심이론도 받아들여 글을 썼다.
그렇다고 우현이 서양 철학과 미학, 서양미술사의 관점에만 빠진 것은 아니었다. 경성제대 재학 중 한문학과 동양예술사 강의도 들었고 정신 밑바탕에는 동양철학과 노자(老子)의 사상, 민족문화에 대한 지식과 애정이 고여 있었다.
고향 인천 김병훈(金炳勳)의 의성사숙(意誠私塾)에서, 보성고보 스승 황의돈(黃義敦 한문 역사)·고희동(高羲東 미술) 등에게서, 인생의 사표(師表)로 여겼던, 3·1운동 33인 하나인 오세창(吳世昌)을 통해 한문을 배우고 조국애와 민족문화의 긍지를 깨우친 덕이었다. 대학 조수 시절에는 10만 권에 달하는 규장각의 민족문화 자료를 마음대로 헤엄치며 밤새워 필사 초록했다. 그러면서 경주와 가야의 유적, 개성의 고려 유적, 평안도와 만주의 고구려 유적을 실측하며 답사했다.
우현이 39년 생애를 바쳐 해명한 조선미술의 특징은‘무기교의 기교’,‘무계획의 계획’,‘무관심성’이다. 그는‘조선의 미’를 상상력과 구성력의 풍부함에서 오는 모나지 않은 멋, 끝이 날카롭거나 차갑지 않고 순박한 데서 느끼는 구수한 큰맛, 단순한 색채에서 오는 적조미(寂照美)라고 설명하고, 외래문화의 창조적 변용을 특장(特長)으로 들었다.
‘무기교의 기교’는 그의 아호인 우현(又玄)과 상통한다. 그것은 노자의 『도덕경』에 있는 문장,‘무(無)와 유(有) 양자는 나온 데는 같은데 이름만 다르다. 둘을 함께 이르는 것은 오묘하고 또 오묘하다’에서 뽑은 것이다.
K컬쳐의 생명력을 위해
우현의 키워드 ‘무기교의 기교 ’, ‘구수한 큰맛’은 미술 외에 우리 문학이나 연극 영화, 국악, 판소리, 무용 등에도 깃들여 있다. 노벨상 작가 한강의 소설, 아카데미상 수상 영화들, 싸이와 BTS의 음률과 가사, 춤사위 등 전 세계를 풍미하고 있는 K컬쳐의 근원도 우현의 키워드에 닿아 있다.
올해는 우현 탄생 120주년이다. 인천 시정부는 우현이 인천정신의 보물임을 통 모르는지 무심하지만, 인천의 문화 오피니언 리더들은 움직이고 있다. 학술토론, 우현 전집 읽기 스터디그룹, 소인극(素人劇) 공연, 우현의 길 걷기 등이다.
우현 미학은 어렵다. 인천의 문예부흥을 위해, K컬쳐의 생명력을 위해 이제 그것을 시대정신에 맞게 쉽게 해석하고 확장해야 한다. 서양 미학과, 노자의 사상 등 동양철학과 한문학은 우현에게 어떻게 녹아들었나, 우현이 주력했던 미술과 건축 외에 문학, 음악, 무용 등 각 분야에 보이는 공통된 원류(源流)는 무엇인가?
『인천in』의 기획연재가 쉽고 흥미로운 담론으로 펼쳐지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