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인터뷰] 황문정 작가 - 김푸르나 / 시각예술가
김푸르나(김): 간단한 작가님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황문정(황):
저는 인천과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시각 예술 작가 황문정입니다. 주로 설치 작업을 하지만, 조각이나 영상과 같은 다양한 매체를 활용해 도시 공간을 여러 각도에서 조명하는 작업도 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수집한 이미지를 재조합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이 작업의 주요한 방향입니다.
또한, 작업 활동 외에도 교육 프로그램이나 공공미술 프로젝트와 같은 다양한 활동을 병행하고 있어요. 단순히 전시에만 국한되지 않고, 여러 형태의 활동을 통해 작업의 폭을 넓히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김:
작가님께서는 인천에서 여러 공공미술 프로젝트에 참여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공공미술 프로젝트에 참여하실 때, 어떤 방식으로 접근하고 작업을 진행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작가님만의 공공미술을 대하는 접근법이 있다면 간단히 이야기해 주실 수 있을까요?
황:
제가 많은 공공미술 프로젝트에 참여한 것은 아니지만, 몇 번의 경험을 돌아보며 느낀 점은 작업이 놓이는 공공장소의 중요성입니다. 그래서 저는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그 장소를 면밀히 파악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편입니다.
예를 들어, 2018년에는 '인천시청역'에서 '안부벤치'라는 공공미술 작업을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이 작업은 관객과의 상호작용을 중심으로 한 인터랙티브(Interactive) 설치 작품이었습니다.
인천시청역은 비교적 특이한 공간이었어요. 역사 안에 넓은 홀이 있었는데, 한쪽은 주로 나이 드신 분들이 탁구를 치는 공간으로 사용되었고, 반대편은 10대 청소년들이 춤을 추는 무대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 공간을 이해하기 위해 일주일에 두 번 정도 방문하여 관찰을 진행했습니다. 그들이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혹은 어떤 사람들이 이 공간을 사용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약 한 달 동안 7~8차례 방문하며 수십 분에서 한 시간씩 머물렀습니다. 이를 통해 사람들이 이 공간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면밀히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흥미롭게도 세대 간의 활동이 철저히 분리되어 있음을 발견했어요. 각자가 사용하는 공간이 명확히 나뉘어 있었으며, 서로의 영역을 넘나드는 교차 지점은 없었습니다. 매일같이 비슷한 사람들이 방문하고 있었지만, 그들 간에 어떤 교류도 이루어지지 않는, 단절된 상황이었습니다.
이러한 관찰을 바탕으로 저는 세대 간의 교차와 연결을 시도하는 장치로 '안부벤치'라는 작품을 기획했습니다. 이 작품은 트라이비전을 활용한 공공 설치 작업으로, 양옆에 마주 보는 벤치가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관객이 벤치에 앉아 휴식을 취하면 센서가 작동하여 트라이비전이 움직이고, "안녕하세요", "어디 가세요?"와 같은 간단한 인사말이 화면에 표시되는 구조였어요. 이를 통해 벤치에 앉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맞은편 사람과 인사를 나누도록 유도한 것입니다.
저는 어떻게 장소에서 관계의 흐름이 만들어지고, 그것이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공공미술 작업은 전시장이나 화이트 큐브 안에 위치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작업이 놓일 공공장소의 특성을 철저히 파악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단순히 몇 번 방문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며, 지속적인 관찰과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김:
그렇군요. 혹시 인천에서 공공미술 관련 사업이나 프로젝트에 참여하시면서, 현재 공공미술 지원 체계나 예산 배분에 대해 개선이 필요하다고 느끼신 부분이 있을까요? 예를 들어, 현장 조사에 작가가 직접 참여하는 것도 하나의 중요한 업무인데, 이런 부분에 대한 지원이 충분하다고 보시는지 궁금합니다.
황:
제가 '안부벤치'를 만들게 된 계기는 인천문화재단의 ‘예술 정거장’ 프로젝트 공모에 선정되면서 였습니다. 당시 신진 작가로서 공공미술에 접근하는 데에는 여러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공공미술 프로젝트가 규모가 크다 보니 공모를 통해 당선되기 쉽지 않고, 인맥이나 특정 업체를 통해 진행되는 경우도 많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천문화재단이 공모를 통해 신진 작가를 발굴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한 것은 매우 뜻 깊은 시도였다고 생각합니다. 신진 작가들에게는 이러한 기회가 공공미술 분야에 진입할 수 있는 소중한 발판이 되기 때문입니다.
김:
신진 작가 말고도 중견 작가 등 다양한 세대의 작가들이 같이 참여했나요?
황:
당시 ‘예술 정거장’ 프로젝트에서는 섭외된 작가 중 중견작가가 많았고, 몇 건은 공모를 통해 40대 이하의 젊은 작가들을 선발했습니다. 그 시점에서 젊은 작가들이 받을 수 있는 지원 중에서는 비교적 큰 규모의 예산을 제공했기 때문에, 공공미술 작업을 시도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있었습니다. 당시 프로젝트 운영 시스템이 다소 허술했던 것이 문제였습니다. 예를 들어, 작품이 지하철 역사 내에 계속 설치되어야 하는데, 지하철 공사는 다양한 부서로 구성되어 있고, 안전이 매우 민감한 공간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공사 부서들과의 충분한 사전 소통이 이루어진 후에 작가들을 참여시켰어야 했지만, 그런 절차가 부족했어요.
작가들은 주로 작품 설치에만 익숙하지, 소방이나 안전과 관련된 사항에는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 역시 작품 설치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이런 문제를 직접 겪었습니다. 한 번은 협의가 완료된 장소에 작업을 설치하려던 중, 모르는 공사 직원이 다가와 “여기는 소방 관련 구역이라 가리면 안 된다”거나 “이 자리를 언제 허락 받았냐”고 화를 내며 항의한 적도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은 작가들에게 적잖은 부담으로 작용합니다.
김:
갑자기 궁금한 점이 생겼는데요. 예를 들어, 작가들이 선정되고 장소가 확정된 이후에, 지하철 공사와의 사전 미팅을 통해 해당 공간에 대한 주의사항이나 안내를 받지 않으셨나요?
황:
설치 전에 한 차례 미팅이 있었지만, 당시에는 모든 문제가 논의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서 문제가 없을 것이라 생각하고 작업에 들어갔는데, 막상 설치 당일에야 소방 관련 문제나 전기선 처리 방식(예: 몰드 처리 필요 여부) 같은 중요한 사항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는 명백히 소통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던 결과였습니다.
특히 제가 설치한 장소가 지하철 역사 내에서도 민감한 구역이어서 전기 사용 문제도 복잡했습니다. 전기를 어디에서 끌어와야 할지에 대한 명확한 지침이 없었고, 관련 부서와의 사전 조율도 부족했습니다. 프로젝트의 총감독님도 작가 출신이셨기 때문에 이런 행정적이거나 기술적인 문제를 충분히 인지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주최한 재단 역시 이 프로젝트 외에도 다양한 일을 병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담당자가 지하철 내 여러 부서와 얼마나 촘촘히 소통해야 하는지 충분히 인식하지 못한 듯했습니다.
지하철이라는 공간은 그 자체로 매우 특수한 장소입니다. 야외 공간이나 건물 앞에 작품을 설치할 때와는 다른 차원의 준비와 조율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프로젝트를 기획할 때 장소의 특수성을 더 깊이 고려했어야 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전기나 교통안전 부서 역시 작품 설치 과정에서 전기 사용이 필수라고 단정 짓지 않았을 수도 있겠지만, 이런 부분에 대한 조율이 미흡했던 것은 아쉬운 점입니다.
참고로, ‘예술 정거장’ 프로젝트는 인천시청역 뿐 아니라 인천지하철 곳곳을 순회하며 진행하는 콘셉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저는 인천시청역에서 제 작품을 2년간 설치했는데, 이 기간 동안 인터랙티브 기반의 작품이 유지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다행히 제 작품은 고장 없이 잘 유지되었지만, 2년 동안 설치되는 작품에 하자 보수나 유지 관리를 위한 비용이 포함되었더라면 더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1년에 한 번 정도 점검할 수 있는 비용을 예산에 포함시키는 방식은 큰 부담 없이 효과적인 관리 방안이 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김:
그렇군요. 작가님께서 생각하시는 공공미술의 발전 방향이나 인천에서 ‘예술정거장’과 같은 프로젝트를 진행한다면, 어떤 방식을 원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또는 지역과 관련해 꼭 해보고 싶었던 공공미술 프로젝트나 개인적인 아이디어가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황:
제가 좋아하는 형태의 공공미술이 있습니다. 물론, 그것이 인천이라는 지역에 꼭 맞는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예전에 공공미술 스터디를 함께하면서 이야기했던 적이 있듯이, 저는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만들어가는 형태가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잘된 사례로는 ‘퍼레이드’를 꼽고 싶습니다. 퍼레이드는 각자가 직접 만든 소품이나 의상을 들고 나와 모두가 함께 즐기는 형태입니다. 단순히 지자체에서 주도하는 축제와는 다른 본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자체 축제는 주민들이 소비자처럼 단순히 참여하고 즐기기만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 중국의 ‘윈난 민속축제’나 일본의 ‘가와라마치 축제’를 보면 시민들이 직접 주제를 정하고 의상과 소품을 제작하며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윈난 민속축제는 중국의 전통문화를 기리는 퍼레이드와 이벤트가 중심으로, 전통 의상을 입고 춤을 추거나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들이 주축을 이룹니다. 일본의 가와라마치 축제 역시 전통 의식과 퍼레이드, 장대 춤 등을 통해 일본의 전통을 생생히 보여주는 행사입니다. 이러한 축제는 참여자들이 자신의 개성을 표현할 수 있는 장이자 지역 주민 간의 결속력을 강화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런 형태의 퍼레이드는 평등한 참여 기회를 제공하며, 다양한 계층 간의 갈등을 완화하고 세대 간의 유대감을 높이는 데 기여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대부분의 축제가 자발성이 부족해 외부에서 정해준 프로그램을 단순히 소비하는 형태로 진행됩니다. 결과적으로 축제들이 비슷비슷하다는 느낌을 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자발적인 형태가 어렵게 느껴질까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아파트 중심의 문화가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합니다. 소음 문제가 민감하게 여겨지는 도시 환경에서는 퍼레이드와 같은 활동이 제한될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지방에서는 고령 인구가 많아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어내기가 어렵습니다. 이런 활동은 젊은 세대가 기획하고 주도해야 자연스럽게 가능해진다고 봅니다.
결국 공공미술은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만들어낸 무언가에 예술가가 참여하여 이를 다듬고 발전시키는 형태가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예술가가 작품을 ‘툭’ 놓고 가는 방식은 공공미술의 본질에 맞지 않는다고 봅니다. 그러나 문제는 주민들에게 자발성을 어떻게 이끌어낼 수 있느냐 입니다. 이 부분은 교육의 문제와도 연결될 수밖에 없고, 결국 복합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인식은 점차 변화하고 있다고 느낍니다. 요즘은 어린 시절부터 미술에 많이 노출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관련해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하나 들었는데, 개인적으로 아는 비평가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길, 우리나라에서 미술관 관람 태도가 가장 좋은 지역은 광주라고 하더군요. 광주 비엔날레가 오래 지속되면서 시민들에게 자부심이 생겼고, 이를 계기로 시민들이 자연스럽게 예술을 보는 눈을 키우며 관람 태도 또한 성숙해졌다고 합니다. 이러한 사례는 예술과 공공의 접점이 어떻게 발전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지역을 상징할 만한 비엔날레와 같은 대규모 행사가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예를 들어, 독일 카셀에서 5년마다 열리는 현대미술 전시회 도큐멘타(Documenta)처럼 지역을 대표할 수 있는 미술 축제가 하나 있다면, 시민들이 자연스럽게 참여하면서 예술을 향유하는 태도가 점차 개선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처럼 수준 높은 예술 축제가 기획되고 지속된다면, 시민들도 점차 예술을 배우고 경험하려는 의지가 생길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지역 축제들이 주로 음식이나 먹거리 중심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이런 축제도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예술적으로 높은 수준을 지닌 비엔날레 같은 축제가 하나 제대로 자리 잡는다면, 초기에는 어려움이 있더라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지역 주민들이 예술을 자연스럽게 배우고 수용하는 문화를 형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는 공공미술에 대한 수요와 관심을 높이는 데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김:
저도 이 부분에서 큰 필요성을 느끼는데요. 그렇다면 공공미술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자리 잡기 위해 어떤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작가님께서 개인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의견이나 제안이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황:
첫 번째로 중요한 것은 해당 지역 주민들과 충분히 접촉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확보하는 것입니다. 주민들과의 지속적인 소통과 관계 형성은 공공미술 작업의 기반이 됩니다.
두 번째로는, 이러한 시간을 바탕으로 공공미술과 연결될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제가 연구 중 사례로 발표했던 캐니 헌터(Kenny Hunter)의 코끼리 프로젝트(Elephant Project)처럼, 작품을 제작하는 과정을 주민들과 공유하고, 작품과 관련된 역사나 맥락에 대한 교육을 병행하는 방식이 효과적일 것입니다. 이러한 접근은 주민들이 공공미술에 더욱 가깝게 다가갈 수 있도록 돕는 데 큰 역할을 합니다.
따라서 공공 조각이든, 주민들이 만든 공간이든 공공의 장소에 설치될 경우, 모두가 관리자가 되어 자연스럽게 이를 돌볼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잘 만든다는 것은 단순히 형태적으로 멋진 작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주민들에게 애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스토리를 담아내는 것을 뜻합니다. 작품이나 공간이 주민들에게 의미 있는 이야기로 다가설 때, 그들이 이를 돌보고 가꾸는 데 자연스럽게 동참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만, 한국의 주거 환경이 대부분 아파트 중심이라는 점은 이런 접근에 어려움을 줄 수 있습니다. 아파트라는 공간적 특성상 공공장소에서의 공동체 문화가 형성되기 어려운 측면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민들에게 공공미술과 공간에 대한 애정을 심어줄 수 있는 방법을 지속적으로 고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2편은 공공 조형물(미술을 위한 퍼센트법)과 미디어 파사드(Media Facade) 트렌드에 관련한 인터뷰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