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 외국인 이주자들에겐 아직도 어렵고 힘든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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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 외국인 이주자들에겐 아직도 어렵고 힘든 사회"
  • 이재은 기자
  • 승인 2015.02.02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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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시민단체 릴레이 인터뷰-⑥ 인천외국인노동자센터

 

[인천in]이 인천의 시민단체를 찾아 현재의 활동과 고민, 향후 계획 등을 나눈다. 튼튼하고 바른 사회를 만들기 위한 시민단체의 노력과 비전을 듣는 시간. 여섯 번째로 ‘인천외국인노동자센터’ 박경서 소장과 이야기 나눴다.
 

▲ '인천외국인노동자센터' 박경서 소장.


# 외국인노동자센터 창립 배경을 설명해 달라. 1993년 아름다운 공부방, 1998년 실직노숙자 쉼터가 발전해 외국인센터로 발전한 건가.
지역사회에 필요한 일을 찾다보니 여기까지 온 것 같다. 90년대 초반 지역 아이들에게 필요한 일을 찾다 공부방을 하게 됐고, IMF 위기 때는 실직자들이 들어나고 노숙하는 분이 많아져 그 분들을 돕는 길을 찾다가 실직 노숙자 쉼터 일을 하게 됐다. 노숙자들이 자활할 수 있도록 애썼다.

실직노숙자 쉼터 일을 그만두고 있던 중에 인천지역에 이주노동자들을 위한 인권단체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듣게 됐다. 인천 내 이주민지원 단체를 만드는 일에 힘을 보태주는 분들(의사, 목회자, 변호사 등)과 함께 인천외국인노동자센터를 시작할 수 있었다.

# 실제적으로 외국인노동자들을 위한 일은 언제부터 했나.
2000년 5월 개소식을 했지만 1999년 말부터 이 일을 했다. 당시만 해도 이주민들을 위한 법률이나 제도가 전혀 없었고 현대판 노예제도라고 낙인찍힌 연수제도만 운영되고 있었다.

이주노동자들은 연수생이라는 미명하에 최저 임금은커녕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짐승보다 못한 대접을 받고 있었다. 그때 이주노동자들의 당하는 고통과 인권유린의 현장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전 세계에 인권유린 뉴스거리를 제공하던 시절이라고 할 수도 있을 거다.

송출비리, 장시간 노동과 열악한 노동환경은 말할 것도 없었고 임금체불, 산재로 인한 강제 출국 등 비인권적이고 비상식적인 노동인권 탄압이 있었다. 연수생 제도를 폐지하고 이주노동자로 일할 수 있는 제도개선과 그분들의 권리를 보호하고 지원하는 단체가 시급하게 필요했다. 한국사회에서 이주노동자들이 노동자 또는 근로자로 불리게 되고 제한적이긴 하지만 노동법이 합법적으로 적용하게 된 것은 10여년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 외국인 노동자와 함께 걸어온 길과 주요 활동을 소개한다면.
그동안 이주운동전국협의체인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JCMK) 상임회장을 역임했다. 이 단체와 함께 연수제도 철폐와 이주노동자권익을 위한 제도개선 운동을 계속해왔다. 또 고용노동부 외국인력고용위원회에 민간위원으로 참여했다. 인천출입국외국인고충처리위원, 인천시외국인정책자문위원, 인천시다문화거리추진단 자문위원등을 맡아 일해 오고 있다.

# 인천의 외국인 노동자 비율은 어떤가. 많이 증가하는 편인지.
인천지역 이주노동자들은 조금씩 늘어가는 형편이다. 현재 인천지역 등록 외국인은 약 5만4천여명이고, 이중 이주노동자로 일하고 있는 분이 약 4만 여명이다. 이들은 합법적 체류지만 일부 미등록 상태(소위 불법체류자)로 일하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주노동자들은 크게 보면 E-9비자(고용허가제)와 해외동포(중국, 러시아, 카자흐스탄 등에서 거주하는 조선족, 고려인등으로 불리는 동포)에게만 주는 H-2(방문취업제) 비자를 받아 일하는 분들로 구분한다. 이 분들이 인천지역의 부족한 일자리를 메워주고 있는 실정이다. 그리고 이주노동자들이 필요한 일터들은 점점 늘어가고 있다. 한국인들이 어렵고 힘든 일을 기피하는 현상과도 맞물려가고 있는 것 같다.

# 타 지역에 비해서는 어떤가.
인천 옹진군의 경우 인구가 2만 여명이고 강화군은 6만7천여 명, 동구 지역은 7만4천여 명인 것을 감안하면 등록된 5만여 명의 인천지역 외국인 수는 상당한 수치임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전국에서 경기 32.2%, 서울 24.6%, 경남 7.1%에 이어 인천은 5.4%로 전국시도 가운데 4번째로 많다.

우리나라 출산율은 가구 당 약 1.25명으로 0.8명의 싱가폴, 1.11명의 대만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낮다. 이는 인력 부족 현상으로 이어지고 계속 누적될 거다. 어쩔 수 없이 외국 인력을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로 해석할 수 있다. 실제로 2003년 70여 만 명에 불과했던 체류외국인수가 2014년에는 176만여 명으로 늘어난 추세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 우리나라의 외국인 복지, 인권 수준은.
아직도 암담하다. 한국사회는 이민사회라고 선언하지 않았을 뿐 이미 이민사회로 진입했다고 본다. 농촌지역 결혼적령기 여성 부족으로 결혼이민자들이 생겨나고 제조업이나 3D업체 등의 인력난 등으로 이주노동자들이 필요하게 된 것은 사회구조와 관련이 있다.

하지만 한국사회는 이주노동자 또는 결혼이민자들에게는 아직도 어렵고 힘든 사회로 인식돼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이주여성들이 남편의 폭력 등으로 사망하는 사건이 지난해만 해도 일곱 차례나 보도됐다. 결혼이주민들의 한국체류권리가 전적으로 남편이나 시댁에 의존하지 않으면 안 되는 현실에서 발행한 사건이다. 이주여성의 안전이 보호되지 못하고 있다.

이주노동자들은 한국에서 영주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합법적으로 최소 3년에서 최대 연장 9년8개월까지 일할 수 있지만 그 수는 매우 적다. 이는 이주노동자 정책을 단기순환정책으로 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실근로자 재입국취업제도 및 특별한국어시험 등을 통해 재입국이 가능해졌기 때문에 더 이상 단기순환정책은 의미가 없다. 산업현장에서 필요한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욕구를 반영한 측면이 강하다.

제도적으로 이주노동자들을 단기노동을 마치고 자국으로 돌려보내는 정책으로는 이주노동자들을 필요로 하는 산업현장의 요구를 흡수하기 어렵다. 노동허가제 또는 동포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방문 취업제를 통해 얻어진 결과물을 토대로 장기적인 이주노동이 가능한 근본적인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재외동포 같은 경우 같은 이주노동자이지만 이들은 입국 후 사업장 변경이 자유롭고 사업장 변경에도 제한이 없다. 하지만 동포이주노동자를 제외한 다른 나라 출신 이주노동자들에게 제한된 사업장 변동 횟수제한문제 등은 노동자의 인권을 침해한 것으로 반드시 개선돼야 한다.

안정적 노동환경과 영주환경은 이주노동자들뿐만 아니라 이주민들과 함께 살아가는 선주민들의 인권과 복지를 위해서라는 것도 알아야 한다. 한국사회가 이주민들을 받아들인 역사가 짧지만 1990년대 이주민들의 현실에 비하면 이주민들에 대한 제도적이고 법률적인 인권보호와 복지는 향상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인권과 복지는 행정적 서비스보다 이주민에 대한 인식개선이 우선적으로 해결돼야 한다. 센터에서 일하는 한국 국적을 가진 이주여성들을 대하는 행정당국자들의 언어태도를 보면 아직도 멀었다는 생각을 금치 못할 때가 많다.
 

▲ 지난해 '대한민국이주민가요제' 인천지역예선 모습.

 

# 센터 운영은 어떤가.
주로 후원자들의 후원금으로 운영하고 있다. 행사나 사업은 프로젝트를 통해 하는데 다른 시민단체들과 비슷할 것 같다.

# 교육/문화/연대사업 등에 관한 구체적 에피소드를 들려 달라.
교육은 주로 한국어교실이나 컴퓨터 교육 등을 한다. 의미 있었던 교육 활동으로 귀환교육프로그램이 있는데, 한국에서 돈을 벌어 자국에 돌아가서 무엇을 할 것인지, 무슨 목표를 가지고 살아갈 것인지, 서로 이야기하고 토론하고 그에 필요한 지식이나 기술을 습득하는 과정이다. 즉 자신들의 꿈과 비전을 만들어 가는 거다. 이를 통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이주노동들이 스스로의 가치를 확인할 수 있었다.

몽골, 네팔, 라오스, 부탄 이 네 나라의 공통점이 뭔지 아시는지? 바다가 없는 나라들이다. 평생 그 나라에서는 바다를 볼 수 없다. 3년 전 여름에 네팔, 몽골 이주노동자 중심으로 동해안으로 여름캠프를 갔다 왔다. 그때 이주노동자들의 해맑은 미소를 잊을 수가 없다.

이주민들의 인권이나 제도개선의 문제는 인식을 변화시키는 문화적 환경도 중요하지만 법률이나 제도를 변화시켜야 하는 구조적인 문제들이 있다. 이런 문제들을 함께 풀기 위해 만들어진 이주민 지원단체들과 인권단체들과 연대해 인식개선을 위한 교육, 문화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법률이나 제도개선을 요구하는 캠페인 또는 시위 등을 통해 많은 개선을 이루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함께 걸어가야 하는 많은 단체들과 이주민들의 현안들을 하나하나 풀어나갈 거다.

# 기억에 남는 외국인 노동자가 있나.
센터 개소 초반에 만난 네팔 이주노동자 카말 씨가 기억에 남는다. 나보다 두 살 많은 형님인데 이제 친구 사이가 됐다.

2000년 초 산재를 당했는데 마땅히 거처할 곳이 없다고 해서 센터 사무실 한 편에 침대를 마련해 주고 나와 함께 기거했다. 이 일을 계기로 센터에서 한국어도 배우고 컴퓨터도 배웠다. 그 후 다시 취업이 되어 김포지역에서 일하게 되었지만 한 달에 1번 이상 우리 집에 찾아와 이야기하고 식사도 하면서 친구가 됐다.

당시 미등록이주노동자였던 카말은 가족과 떨어져 산 지 10년이 넘었기 때문에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마침 네팔을 방문할 기회가 생겼을 때 카말의 영상편지를 녹화해서 카말 고향집에 찾아가 가족들에게 영상을 보여주었다. 10여년 만에 본 남편과 아버지의 얼굴을 보면서 아내와 딸들이 얼마나 많이 울던지 그때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지금도 네팔에 가서 만나면 나를 삼촌이라고 부른다.

가족들도 카말에게 보내는 영상을 찍었는데 카말이 한국에 있는 동안 훌쩍 자라서 결혼하거나 대학생이 된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울컥했던 기억이 난다. 카말이 네팔로 돌아간 후에도 관계가 이어져 보건소 건립이나 장학사업 등 사회개발협력사업 파트너로 일하고 있다.

# 언제 보람을 느끼는지.
2-3년 전에 센터에 전화 상담이 왔는데 사업장에서 한국인 상사에게 뺨을 맞는 등 폭행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 점심시간에 센터에 방문한 이주노동자는 자신이 그간 그 한국인 상사에게 당한 폭행과 폭언 등을 말해줬다. 그때까지도 이주노동자의 얼굴과 맞은 부분이 벌겋게 부어있었다.

상담을 마치고 맞은 부위를 카메라로 찍은 후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사업장도 다른 곳으로 옮기라고 제안했다. 그런데 그 이주노동자가 이렇게 얘기하는 거다. “저는 이제 괜찮아요. 제가 그동안 억울하고 힘들었던 이야기를 오늘 다 얘기해서 마음이 좋아요. 저는 때린 사람이 저에게 사과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우리 회사 좋아요.” 우리는 회사에 전화했고, 그는 가해자의 사과를 받고 다시 회사로 돌아갈 수 있었다.

씨익 미소 지으며 돌아가던 베트남 출신의 이주노동자 얼굴이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이주민이라는 이유로 종종 억울한 일이 겪지만 자신들의 억울한 이야기를 들어 주는 것만으로도 기뻐하는 이주민을 보면서, 그 버팀목이 되기 위해 외롭고 힘든 이 일을 아직도 하는 것 같다.

# 힘든 점은.
센터 운영도 힘들지만 그것보다 더 어려운 것은 이주민들에 대한 한국인들의 인식문제다. 예를 들어 수원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의 주범이 중국동포 출신이라는 이유로 수원시 전체 불법체류자를 전수조사 하겠다는 수원시 입장에 할 말을 잃었다. 시민의 안전과 관련된 문제라 민감한 것은 이해하지만 이주민들을 전부 범죄자 취급하는 듯한 정책은 먼 미래를 위해서도 지양해야 한다.

2007년 버지나아공대(버지니아텍) 총기난사 사건의 주범인 조승희 씨를 다루는 기사에서 그가 한국출신이라는 사실보다는 미국사회에서 이주민들이 겪는 사회적 또는 정신적 고통이나 그 고통으로 인해 발생하는 개인의 문제로 접근하지 않았나. 수원시의 안전을 마치 미등록이주민들(소위 불법체류)이 해치고 있다는 인식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선주민들의 불안의식을 잠재우기 위한 공격대상이 이주민들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흑인들에 대한 사회적 공포조성의 역사가 아직도 미국사회를 힘들게 하는 것처럼 이주민들에게 그런 굴레를 씌우는 일이 더 위험한 사회를 만든다. 개인이 저지른 것을 그 개인이 포함된 집단으로 확대, 범죄 집단처럼 보이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 올해 계획을 들려 달라.
올 11월경에 의료지원을 요청한 네팔에 가서 무료진료를 실시하려고 한다. 지금부터 준비해야 가능한 일이라서 벌써부터 마음이 바쁘다. 몇 년 전 네팔 어느 마을에 지역주민과 함께 보건소를 만들어 세웠는데 그곳에서 무료진료를 하는 거다.

# 인천의 시민단체에 바라는 점이 있나. 시민을 위한 단체가 되려면 어떤 역할과 노력이 필요할까.
다른 단체나 남들에게 바라는 점을 말하긴 어렵고 내 자신에게 먼저 말한다면 그 단체의 사업과 내용이 단체의 가치를 지키는 데 우선순위를 두는지 아니면 단체가 시민을 위해 일해야 된다는 것을 우선순위로 삼고 있는지 살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도 거기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 같다. 내가 속해있는 단체와 경쟁단체로 인식되는 단체에서 주관하는 행사나 사업에 그렇게 열심히 참여하지 않는다. 함께하면 이주민들에게 좋은 결과가 오는 것을 알면서도... 내가 먼저 마음을 열어야 하는데 마음이 쉽게 열리지 않는다.

# 언론이나 [인천in]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인천in’에 대해 잘은 모른다. 인천에 많은 신문이 있는데 ‘인천in’을 만든 취지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 취지에 맞는 신문인지 스스로 살피며 가는 ‘인천in’이 되기를 바란다. 사실 어느 조직이든 처음 취지대로 끝까지 가는 것이 생각보다 어렵다.


[기획연재] 시민단체 릴레이 인터뷰
① ‘건강한노동세상’ 김철홍 대표
② ‘인천사회복지보건연대’ 신규철 사무처장
③ ‘평등교육실현을위한전국학부모회’ 인천지회 이은주 상임대표
④ ‘인천작은도서관협의회’ 최선미 대표
⑤ ‘민들레장애인야학’ 박장용 교육국장
⑥ ‘인천외국인노동자센터’ 박경서 소장
⑦ ‘인천행복교육세상’ 정영신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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