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노동 세상이 오면 해체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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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노동 세상이 오면 해체하겠다”
  • 이재은 기자
  • 승인 2014.11.24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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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시민단체 릴레이 인터뷰-① 건강한노동세상

[인천in]이 새롭게 기획연재 코너를 마련했다. 인천의 시민단체를 찾아 현재의 활동과 고민, 향후 계획 등을 나누는 일이다. 튼튼하고 바른 사회를 만들기 위한 시민단체의 노력과 비전을 듣는 시간. 그 첫 번째로 ‘건강한노동세상’ 김철홍 대표를 만났다. 김 대표와 나눈 이야기를 두 번에 걸쳐 연재한다.(편집자 주)
 



- ‘건강한노동세상’은 2002년 ‘산재 없는 일터회’와 ‘인천산업사회보건연구회’가 연합해 만들어졌다. 탄생 배경을 들려 달라.

‘산재 없는 일터회’는 노동자 중심 단체다. 노동자끼리 교육받고 사례발표하고 산재예방을 위해 노력한다. ‘인천산업사회보건연구회’는 의사 중심의 전문가 조직이었다. 한쪽은 전문성이 부족하고 한쪽은 현장성이 부족하니 둘이 합쳐보자는 의견이 나왔다. 두 단체 모두 활동한 지 10년씩 되다 보니 어려워지기도 해서 자연스럽게 통합했다.

- 단체 이름이 특이하다.

딱딱하고 식상한 이름으로 하지 말고 이름에 지향점을 넣자고 생각했다. 건강한 노동 세상이 오면 해체하는 걸 목표로 했다. 그런데 우리 세대에 해체되기는 힘들 것 같다.(웃음)

- 운영은 어떤가.

2002년 5월 25일 출범했는데 회원이 200명 가까이 있을 때도 있었다. 지금은 많이 줄었다. 회비로 프로젝트 진행하고, 연구과제 수행하고, 상근자(현재는 1명뿐이다) 활동비 주고 그런다. 가끔 교육해주고 강사료 받기도 하고.. 빠듯하다. 현장의 요구가 많을 때는 상근자가 3명까지 있었다. 여기서 일하던 분들이 금속노조, 민노총, 공공연맹 등에 가서 노조활동을 하고 있다. 전문가를 키워내는 것도 좋은 일이다.

- 주요활동을 소개해 달라.

크게 네 가지 정도로 말하면, 가장 중요한 건 상담이다. 현대나 대우처럼 노조가 탄탄한 곳은 산재가 생기면 조합에서 처리해준다. 그런데 개인사업장이나 비정규직은 힘들다. 그들에게 무료 상담을 해준다. 회원 중에 의사, 노무사, 변호사가 있고 나처럼 공학자도 있으니까 일하다가 생긴 병에 대해 산재를 받을 수 있도록 아낌없는 지원을 한다. 그분들이 산재로 인정받으면 보람을 느낀다.

상담은 일이 벌어진 뒤 뒤처리로 보상을 받는 거다. 그보다 먼저 산재가 생기지 않아야 ‘건강한 노동’이다. 산재발생 구조와 예방법 등을 교육하는 노동자 학교를 1999년부터 해왔다. 산보련(산업보건연대) 시절부터 15년간 이어오고 있다. 1년에 두 번 여름방학, 겨울방학 때 하는데 길면 두 달, 짧으면 4주다. 대전에서 교육받으러 온 노동자도 있었다. 산재 법, 권리, 발생원인, 예방활동, 현장방문 사례연구 등을 알려준다.

그밖에 노동자들의 조직활동을 돕는 조직화사업, 정책 선전전이 있다. 조직화사업은 꼭 노조를 조직한다기보다 자체 교육팀을 만들어 깊이 있는 노동 활동을 돕고, 거리 선전전은 역 앞에서 팸플릿을 나눠 주고, 사진전도 하면서 대중에게 알리는 일이다. 인천대 부설 노동과학연구소장을 맡고 있는데 그곳에서 연구, 조사사업도 같이 하고 있다.

- 건강한 노동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나. 인천대 산업경영공학과 교수인데 전공과 관련이 있는지.

산업경영공학은 생산성 향상이 유일한 목적인 소위 자본의 학문이다. 사람의 작업 동작을 미세하게 분석해서 불필요한 걸 빼내고 작업 관리, 동작 경제학, 사람의 기계화, 생산 요소화 등으로 생산성을 높인다. 1시간에 40대 만들던 걸 이런 연구로 60대, 70대를 만들게 한다. 경영합리화를 꾀하겠다며 구조조정까지 시킨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노동자는 소외되고, 반복되는 과도한 노동 누적으로 병이 생긴다. ‘생활의 달인’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한때 민주노총과 방송국 대항해서 엄청 싸웠다. 왜 방송에서 직업병을 조장하느냐고.

전공은 직업병 예방이다. 육체적인 것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직업병도 포함한다. 작업장에서의 안전사고는 회전부위에 손이 낀다든지 원인이 명확한 게 많다. 그 경우에는 안전장치를 교체하면 된다. 컴퓨터를 오래하는 사람에게 목 질환이 발병했을 때 업무 때문이라는 걸 어떻게 증명하나? 왜 그런 일이 발생했는지 공학적으로 연구하고 해석하는 게 내가 하는 학문이다.

- 교수님과 관련된 일을 하는 제자들도 있나.

학계에는 없다. 민주노총에 노동과학연구소 출신 제자가 있고 대기업 안전관리 차장이나 부장을 하고 있는 사람도 있다. 박사학위 받고 안전공단이라든지 국가기관에 근무하는 제자도 있고.

- 특별히 기억에 남는 노동자가 있나. 이주노동자도 돕는다고 들었다.

동남아나 네팔에서 온 노동자들은 영어를 하지 않나. 그들에게 영어로 교육하기도 했다. 산재 관련법, 노동자의 권리, 발생원인, 예방 활동, 현장방문 사례 등을 강의했다.

나도 직업병판정위원회 위원으로 있지만 근로복지공단에 산업재해를 신청하면 승소율이 낮다. 12년 전이었나. 강화에 사는 공무원이 도움을 청했다. 엄마가 탄광촌에서 옷을 빠는 일을 하고 있는데 손목증후군으로 산재를 신청했지만 심사에서 탈락했다는 거다. 자료를 받아서 아주머니 하는 일을 분석했는데 너무 힘든 일이더라. 공단에 다시 자료를 보강해서 재소했지만 또 탈락했다.

외국의 자료와 사례를 다 뒤져서 세탁노동자의 노동 강도를 분석했다. 미국이나 캐나다 등은 세탁업이 가장 힘든 수작업으로 분류돼 있다. 그걸 번역해서 법원에 갖다 줬고 2년 만에 승소해 치료받고 보상받고 했다.

또 다른 예는 인천인데, 한 아주머니가 남자들도 하기 힘든, 쇠를 밀고 당기는 일을 하다가 허리에 무리가 왔다. 그런데 산재신청이 안 된다는 거다. 이 아주머니는 노조를 조직하려다 눈 밖에 나서 이 부서로 발령이 났는데 위험수당도 주지 않고 노동착취를 했다.

노동과학연구실에서 실제 그 무게를 밀고 당기고 하면서 그 일을 할 때 근육이 얼마나 당기고 부하가 걸리는지를 조사해서 행정법원에 제출 제출했다. 법원에 직접 가서 전문가 증언도 했다. 그 아주머니는 산재예방특집에 출연해서 방송도 탔다. 이후 건강한노동세상 회원이 돼서 같이 싸우고 있다.

사례야 셀 수 없이 많다. 많을 때는 1년에 6, 700건의 상담이 들어왔다. 요즘에는 많이 줄어서 2, 300건 정도 된다. 사실은 국가가 해야 할 일인데...

- 건강한노동세상에서 한 일 중에 기억나는 게 있다면.

인천대가 원래 제물포에 있지 않았나. 인천대 건물에 석면 1600톤이 들어 앉아 있었다. 알다시피 석면은 1급 발암물질이다. 그걸 제거하고 폭파해야 하는데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폭파 일주일 전 인천지역 50개 단체를 모아 범시민석면안전위원회를 만들어서 내가 대표를 맡았다. 언론에 릴레이 기고문을 발표하고, 토론회를 하고 주민에게 알렸다. 그 덕분에 석면을 완벽하게 제거하고 철거할 수 있었다. 4, 5만 가구가 발암물질을 뒤집어쓸 뻔했다.

삼성반도체 백혈병도 우리 단체에서 처음 활동을 시작했다. 삼성을 상대로 뭔가 싸워보고 싶었는데 아무도 하지 못했다. 우리한테 의뢰가 왔을 때 해보자고 결심했다. 수원 삼성전자 앞에서 첫 집회를 열었다. 직업병일 수밖에 없는 원인이 많으니 조사하라고 요구했다. 싸움이 될 것 같다고 판단했는지 여러 단체가 달려들더라. 가족이 포함된 대책위가 만들어졌다가 ‘반올림’이라는 전문단체가 생겼다. 우리가 불씨를 지폈다.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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