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편 향당(鄕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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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0편 향당(鄕黨)
  • 이우재
  • 승인 2010.06.14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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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재의 논어읽기]

제 10편 향당(鄕黨)

  향당편은 그 구성이나 내용이 논어의 다른 19편과 상당히 다르다. 즉 논어의 다른 편들이 공자와 제자들의 언행, 주로 공자의 말을 기록하고 있는데 반해, 오직 이 향당편만은 공자의 공사(公私)에 걸친 일상 생활을 기록하고 있다. 송(宋)의 소식(蘇軾) 같은 사람은 『논어해(論語解)』에서 이 향당편이 공자에 대해 기록한 것이 아니라, 곡례(曲禮) 즉 예의 세세한 규정에 대해 이것 저것 두서없이 기록한 것이라는 주장까지 하고 있다. 확실한 경위는 알 수 없으나, 내용 상 논어의 제일 마지막 편으로 편집했어야 옳았을 것이다.
  한편 향당편의 이런 특이한 구조 때문에 원래의 논어가 이 향당편을 마지막으로 하는 10편까지로만 구성되어 있었을 것이라고 하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이른바 논어의 상반 10편까지를 상론(上論), 그 나머지를 하론(下論)이라고 하는 것이 그것이다. 확인할 방법은 없으나, 하론, 즉 11편 이후부터 과연 공자의 말일까 의심이 가는 대목이 많이 눈에 띄는 것도 사실이다.
  원래 이 향당편은 전체가 한 장으로 되어 있으나, 여기서는 그것에 구애받지 않고 내용에 따라 편의상 27장으로 나누었다. 주자는 17장으로 나누고 있다.

1, 孔子於鄕黨 恂恂如也 似不能言者. 其在宗廟朝廷 便便言 唯謹爾.
  공자께서 향리에 계실 때에는 공순하셔서 마치 말할 줄 모르는 사람 같으셨다.
  종묘나 조정에 계실 때에는 분명하고 또렷하게 말씀하시되, 신중히 하셨다.

  <해설> 순순(恂恂)은 온화하고 공순한 모습이다. 似不能言者는 자신을 낮춰 말을 삼감으로써 겸손하게 처신하는 것이다. 편편(便便)은 분명하고 또렷하게 말하는 모양이다.
  향리에서는 일가의 웃어른도 계시기 때문에 겸손하게 처신한 것이다. 종묘와 조정은 국가의 정사를 의논하는 장소이므로, 자신의 의사를 분명하게 나타냈으나, 항상 신중히 하였다.
  
2, 朝與下大夫言 侃侃如也. 與上大夫言 誾誾如也. 君在 踧踖如也 與與如也.
  조회(朝會)에서 하대부와 이야기하실 때에는 온화하게 하셨으며, 상대부와 이야기하실 때에는 곧고 바르게 하셨다.
  임금이 납시면 공경하고 삼가시면서도 위의를 잃지 않으셨다.

  <해설> 조(朝)는 매일 아침 신하들이 모여, 국왕이 집무를 개시하기 위해 나오는 것을 기다리는 장소이다. 상대부는 대부 중 지위가 높은 자, 하대부는 낮은 자이다. 간간(侃侃)은 화락(和樂)한 모양이고, 은은(誾誾)은 곧고 바른(中正) 모양이다. 조회에서 임금이 나오기 전에 신하들끼리 말을 나눌 때의 모습을 기록한 것이다.
  君在는 임금이 조회에 나온 것이다. 축적(踧踖)은 공경하고 삼가는 모습이고, 여여(與與)는 위의(威儀)가 알맞는 것이다.
  이 장은 조회에 나아갔을 때의 공자의 모습을 기록한 것이다.

3, 君召使擯 色勃如也 足躩如也. 揖所與立 左右手 衣前後襜如也. 趨進翼如也. 賓退 必復命曰 賓不顧矣.
  임금이 불러 국빈 접대를 맡기시면, 얼굴빛은 긴장하셨고, 발걸음은 종종걸음이셨다.
  함께 서서 읍을 할 때에는 좌우로 하셨으며, 옷도 앞뒤로 가지런히 하셨다.
  빨리 나아가실 때에는 마치 새가 날개를 편 듯하셨다.
  손님이 물러가면 반드시 복명(復命)하시길 “손님이 뒤를 돌아보는 일도 없이 잘 갔습니다.”라고 하셨다.

  <해설> 빈(擯)은 나라의 손님을 접대하는 일이다. 발(勃)은 얼굴빛이 긴장하여 변하는 것이고, 곽(躩)은 발굽을 들고 종종걸음으로 바삐 가는 것이니, 모두 임금의 명을 공경함을 나타낸 말이다.
  나라에 손님이 찾아오면 접대역을 맡은 빈(擯)들은 성문 안의 동쪽에, 손님들은 서쪽에, 남북으로 늘어서서 서로 인사를 나눈다. 그 때 손님 측에서 먼저 높은 사람이 낮은 사람에게로 차례로 말을 전하면, 맨 끝의 제일 낮은 사람이 다시 그 말을 주인 측의 제일 낮은 사람에게 전하고, 주인 측에서는 또 그 말을 차례로 위로 전하여 임금에게까지 이른다. 揖所與立 左右手는 그 때의 일로, 말을 듣고 전할 때마다 옆의 사람에게 읍을 하는 데, 좌측의 사람에게는 그 손을 왼 쪽으로, 우측의 사람에게는 그 손을 오른쪽으로 하여 읍을 하는 것이다. 衣前後襜如也는 읍을 할 때, 옷자락이 앞뒤로 가지런한 것을 나타낸 말이다.
  이러한 절차가 끝나면 주인 측에서 손님들을 종묘가 있는 마당으로 안내하게 된다. 趨進翼如也는 그 때의 일로, 익여(翼如)는 새가 날개를 편 듯이 단아한 모양이다.
  모든 절차가 끝나 손님이 물러갈 때 그를 전송하는 것도 빈(擯)의 임무이다. 손님을 전송하고 나면 빈(擯)은 그 사실을 임금에게 고한다. 賓不顧矣는 손님이 모든 일이 잘 끝난 데 대해 안심하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갔다는 뜻이다.
  이 장은 공자가 빈(擯)이 되어 국빈을 접대할 때의 일을 기록한 것이다.

4, 入公門 鞠躬如也 如不容. 立不中門 行不履閾. 過位 色勃如也 足躩如也. 其言似不足者. 攝齊升堂 鞠躬如也 屛氣似不息者. 出降一等 逞顔色 怡怡如也. 沒階 趨進翼如也. 復其位 踧踖如也.
  대궐의 정문을 들어가실 때에는 삼가고 두려워하여, 마치 들어가는 것이 용납되지 않는 듯이 하셨다.
  문의 가운데에 서지 않으셨으며, 지나가실 때에 문지방을 밟지 않으셨다.
  임금이 계시지 않을지라도, 그 자리를 지날 때에는, 얼굴빛은 긴장하셨고, 발걸음은 종종걸음이셨다. 그 말씀은 삼가셨다.
  옷자락을 거머쥐고 당에 오르실 때에는, 삼가고 두려워하여, 마치 숨을 쉬지 않는 것처럼 숨을 죽이셨다.
  물러 나오시어 계단을 하나 내려오시면, 얼굴빛을 푸시고, 환해지셨다.
  계단을 다 내려오시면, 빨리 가심이 마치 새가 날개를 편 듯하셨다.
  그 자리에 돌아오실 때는 삼가고 조심스러우셨다.

  <해설> 공문(公門)은 궁성의 정문이다. 鞠躬如也는 주자에 의하면 허리를 굽히는 것(曲身)이나, 황간의 『논어의소』에 인용된 정현의 해설에 의하면 삼가고 두려워하는 모양이다. 여기서는 정현의 주장을 따랐다. 如不容은 마치 용납되지 않는 듯한 것이니, 공경함이 지극한 것이다.
  역(閾)은 문지방이다. 문의 가운데는 임금이 지나 다니는 곳이며, 문을 지날 때에는 문지방을 밟지 않는 것이 예이다.
  위(位)는 임금이 공식 행사 때 서는 자리다. 여기서는 그 자리에 임금이 없을 때를 말하고 있다.  공자가 임금을 공경함이 비록 그 빈 자리를 지날 때에도 지극했음을 알 수 있다.
  섭자(攝齊)의 섭(攝)은 치켜드는 것이요, 자(齊)는 옷자락이니, 당에 오를 때, 옷자락을 밟지 않기 위하여, 거머쥐는 것이다. 屛氣似不息者는 당(堂)에 올라 임금을 가까이하게 됨에 따라, 마음가짐을 엄숙히 하여 마치 숨을 쉬지 않는 것처럼 숨을 죽이는 것이다.
  逞顔色 怡怡如也의 영(逞)은 방(放)으로 푸는 것이고, 이이(怡怡)는 환한 모양이다. 임금으로부터 멀어지게 되자 긴장을 푸는 것이다.
  復其位의 其位는 앞서 지나간 임금이 없는 그 빈 자리다.
  이 장은 공자가 조정에 있을 때의 모습을 기록한 것이다.

5, 執圭 鞠躬如也 如不勝. 上如揖 下如授. 勃如戰色. 足蹜蹜如有循. 享禮有容色. 私覿愉愉如也.
  규를 받으시면, 삼가고 두려워하시어, 마치 감당할 수 없는 것처럼 하셨다.
  규를 든 손을 올리실 때에는 마치 읍을 하는 것처럼, 내리실 때에는 마치 물건을 주는 것처럼 하셨으며, 얼굴빛은 마치 무엇을 두려워하는 듯 긴장하셨다. 걸음걸이는 짧게, 땅을 스치듯이 하셨다.
  예물을 드리실 때에는 얼굴빛이 부드러워지셨다.
  사사로이 배알할 때가 되자 더욱 화기가 돌으셨다.

  <해설> 규(圭)는 옥을 위는 뾰족하거나 둥글게, 아래는 직사각형 모양으로 깎은 것으로, 천자가 제후를 봉할 때 하사하는 것이다. 사신이 공식으로 다른 나라를 방문할 때 가져간다. 따라서 규를 받았다 함은 공식으로 사신이 되어 타국을 방문하게 되었음을 말한다. 如不勝은 마치 감당하지 못하는 것처럼 하는 모습으로, 사신으로서의 직무가 중대하기 때문이다.
  上如揖 下如授는, 규를 가슴높이로 받쳐들고, 올릴 때에는 읍을 하는 것처럼, 내릴 때에는 물건을 주는 것처럼 한다는 뜻으로, 규를 정중히 취급하여, 올리고 내릴 때에 삼가는 모습을 말한다. 고래로 해석이 분분하나 여기서는 주자를 따랐다.
  전색(戰色)은 두려워하는 모습이다.
  축축(蹜蹜)은 발걸음을 좁게 하는 것이고, 순(循)은 발꿈치를 땅에 대고 끄는 것이다.
  향례(享禮)는 사신으로서의 공식적인 빙례(聘禮)가 끝난 후, 임금이 보내준 선물을 마당에 늘여놓고 상대 임금에게 전달하는 의례이다. 용색(容色)은 얼굴빛을 부드럽게 하는 것으로, 사신으로서의 어려운 절차를 한고비 넘긴 것에 안도하는 모습이다.
  사적(私覿)은 사신이, 나라의 공식적인 사자(使者)로서가 아니라, 개인의 자격으로 상대 임금을 만나는 것이다. 모든 공식적인 임무를 마쳤으니, 마음이 홀가분하게 되어, 얼굴이 더욱 밝아짐(愉愉如)은 당연하다.
  이 장은 공자가 사신이 되어 다른 나라를 방문하였을 때의 일을 기록하고 있다.
 
6, 君子不以紺緅飾. 紅紫不以爲褻服. 當暑袗絺綌 必表而出之. 緇衣羔裘 素衣麑裘 黃衣狐裘. 褻裘長 短右袂. 必有寢衣 長一身有半. 狐貉之厚以居. 去喪 無所不佩. 非帷裳 必殺之. 羔裘玄冠 不以弔. 吉月 必朝服而朝.
  공자께서는 군청색이나 보라색으로 옷깃을 만들지 않으셨다.
  진홍색이나 자주색으로 평상복을 만들지 않으셨다.
  더울 때에도 칡베로 만든 홑옷 위에 반드시 겉옷을 걸치시고 외출하셨다.
  검은 옷에는 검은 새끼 양의 가죽옷을, 흰 옷에는 흰 새끼 사슴의 가죽옷을, 노란 옷에는 노란 여우의 가죽옷을 안에 받쳐입으셨다.
  평소에 입는 가죽옷은 길게 하시되, 오른쪽 소매는 짧게 하셨다.
  반드시 이불은 있으셨는데, 그 길이는 한 길 반이었다.
  여우나 담비의 두꺼운 털가죽으로 방석을 삼으셨다.
  상복을 입으실 때를 제외하고는 꼭 패옥(佩玉)을 띠에 차셨다.
  조회와 제례 때의 예복 외에는 폭을 좁게 마름질하셔서 입으셨다.
  검은 양 가죽옷과 검은 관을 착용하시고서는 조문가지 않으셨다.
  매달 초하루에는 반드시 조복(朝服)을 입으시고 조정에 나아가셨다.   

  <해설> 여기서의 군자(君子)는 공자를 가리킨다. 그러나 소식(蘇軾)은 군자 일반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럴 경우 이 내용은 군자가 옷을 입을 때 지켜야 할 예법을 풀이한 것이 된다.
  감(紺)은 검정에 가까운 짙은 청색, 즉 군청색이고, 추(緅)는 보라색이다. 식(飾)은 동정이나 소매의 테두리를 장식하는 것이다. 감(紺)은 재계(齋戒)할 때 입는 옷의 색이고, 추(緅)은 상복(喪服)의 장식에 쓰는 색이므로, 옷깃을 만드는 데 쓰지 않는다.
  설복(褻服)은 평상복이다. 홍색(紅色)이나 자색(紫色)은 간색(間色, 赤黃靑白黑의 다섯 가지 색이 아닌 색)이기 때문에 피한 것이다. 고주의 왕숙, 형병의 『논어주소』의 설(說)이다. 주자는 간색이면서 또한 아녀자의 색에 가깝기 때문에 피한 것이라고 한다. 
  진(袗)은 홑옷, 치(絺)와 격(綌)은 칡베(葛布)로, 치는 실이 가늘고 촘촘한 것, 격은 굵고 성긴 것이다. 必表而出之은 칡베로 만든 홑옷이 속이 훤히 비치므로, 반드시 겉옷을 그 위에 걸치고 외출한다는 말이다. 여름에는 날씨가 더우므로 평상시에는 칡베로 만든 홑옷을 입으나, 외출할 때에는 반드시 겉옷을 걸치고 나선 것이다. 주자는 必表而出之를 안에 속옷을 입고 칡베옷을 겉에 입은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으나 찬성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치(緇)는 검은 색이다. 양구(羔裘)는 새끼 양의 가죽으로 만든 갖옷으로 그 색깔이 검다. 예(麑)는 새끼 사슴으로 그 가죽이 흰 색이고, 여우의 가죽은 노란 색이다. 緇衣羔裘 素衣麑裘 黃衣狐裘는 각기 그 겉옷의 색깔에 맞게 갖옷을 골랐음을 말한다. 모두 겨울옷에 관한 이야기다.
  평상복의 길이를 길게 한 것은, 고주의 공안국에 의하면, 몸을 따뜻하게 하기 위해서이고, 오른쪽 소매를 짧게 한 것은, 활동하는 데 편리하게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청(淸)의 유월(兪樾)은 『군경평의(羣經平議)』에서 短右袂를 오른쪽 옷소매를 짧게 한 것이 아니라, 접은 것이라고 해설하고 있다.
  침의(寢衣)는 고주의 공안국에 의하면 이불(被)이다. 주자는 잠옷으로 해석한다.   
  狐貉之厚以居의 거(居)는 청(淸)의 염약거(閻若璩)의 『사서석지우속(四書釋地又續)』에 의하면, 좌(坐)로 앉는 것이다. 여우나 담비의 털가죽으로 방석을 만들어 앉는 데 사용한 것이다. 고대 중국인들은 오늘날과는 달리 의자 생활을 하지 않았다. 중국인들이 일상 생활에서 의자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당(唐)대 이후부터이다.       
  거상(去喪)의 거(去)는 제(除)이다. 패(佩)는 허리띠에 차는 패옥(佩玉)으로, 남자는 상중을 제외하고는 항상 패옥을 몸에서 떼지 않는다. 
  유상(帷裳)은 황간의 『논어의소』에 인용된 정현의 해설에 의하면 조회나 제사 때에 입는 예복이다. 윗도리를 의(衣)라 하고 아랫도리를 상(裳)이라 한다. 원래 유상은 천을 몸의 형태에 따라 미리 마름질하지 않고, 몸의 길이만큼 자른  천 여러 장을 그대로 이어 허리 부근은 주름을 잡고 아래는 죽 늘여Em려 만든다. 그 모양이 마치 휘장(帷)과 같아 유상이라 한다. 그러나 품이 많이 들고 천의 낭비가 심해, 평상복은 허리 부근을 미리 좁게 마름질한 천 여러 장을 이어 만든다. 必殺之는 그 때 허리 쪽의 폭을 다리 쪽의 절반으로 미리 마름질하는 것을 말한다.
  상(喪)에는 흰 색(白)을, 길(吉)한 일에는 검은 색(黑)을 주로 사용한다. 따라서 검은 양 가죽옷과 검은 관을 착용하고서는 조문가지 않는다.
  길월(吉月)은 매달 삭일(朔日), 즉 초하루이다. 매달 초하루에는 고삭(告朔)이라는 중요한 의식이 있으므로, 공자가 조복을 입고 참가한 것이다. 고삭에 대해서는 팔일 17을 참고하기 바란다. 정수덕(程樹德)은 『논어집석(論語集釋)』에서 청(淸)의 하흔(夏炘)을 인용하여 길월이 정월(正月)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장은 모두 공자의 의복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7, 齊必有明衣 布. 齊必變食 居必遷坐.
  재계하실 때에는 반드시 깨끗한 욕의를 갖추셨는데, 삼베로 만든 것이었다.
  재계하실 때에는 평소와 식사를 달리하셨으며, 거처하시는 곳도 옮기셨다.

  <해설> 재(齊)는 제사를 앞두고 재계(齋戒)하는 것이다. 명의(明衣)는 목욕이 끝나고 입는 욕의(浴衣)다.
  변식(變食)은 주자에 의하면 술을 삼가고, 마늘, 파, 부추와 같은 냄새나는 채소(葷)를 먹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청(淸)의 전점(錢坫)의 『논어후록(論語後錄)』에 의하면 매 끼니마다 음식을 새로 만들어 먹는 것이라고 한다.
  천좌(遷坐)는 청(淸)의 호배휘(胡培翬)의 『연침고(燕寢考)』에 의하면 잠자리를 외침(外寢), 곧 정침(正寢)으로 옮기는 것이라고 한다. 평상시에는 내침(內寢)에서 처첩과 함께 잠자리를 한다.
  이 장은 모두 공자가 재계할 때 삼가고 조심하는 모습을 기록한 것이다.
   
8, 食不厭精 膾不厭細. 食饐而餲 魚餒而肉敗 不食. 色惡不食 臭惡不食. 失飪不食 不時不食. 割不正不食 不得其醬不食. 肉雖多 不使勝食氣. 唯酒無量 不及亂. 沽酒市脯不食. 不撤薑食 不多食.
  밥은 흰 것만 좋아하시지 않으셨으며, 회도 잘게 썬 것만 좋아하시지 않으셨다.
  쉬어서 냄새가 나는 밥과 상한 생선, 썩은 고기는 드시지 않으셨다. 빛깔이 나쁜 것, 냄새가 나쁜 것도 잡숫지 않으셨다.
  알맞게 익지 않은 것은 드시지 않으셨으며, 제 철이 아닌 것은 잡숫지 않으셨다.
  도축이 올바르지 않은 것은 드시지 않으셨으며, 간장이 맞지 않으면 잡숫지 않으셨다.
  고기가 아무리 많이 있어도, 곡기를 이길 정도로 많이 드시지 않으셨다.
  술은 양을 한정하지는 않으셨으나, 취해 몸가짐이 흐트러질 정도로 드시지 않으셨다.
  저자에서 파는 술이나 포는 드시지 않으셨다.
  생강을 마다하시지 않으셨으나, 많이 드시지는 않으셨다.

  <해설> 정(精)은 도정(搗精)한 곡식이다. 회(膾)는 짐승이나 생선을 날로 먹는 것이다. 염(厭)은 유보남의 『논어정의』에 의하면 족(足)으로 만족하는 것이다. 즉 공자가 흰 밥이나 잘게 썬 회만 찾지 않고 다 잘 먹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주자는 흰 밥과 잘게 썬 회를 싫어하지 않은 것으로 해석한다. 즉 공자가 그런 것을 좋아는 하였으나, 꼭 그것만 고집한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일찍이 공자는 거친 밥에 물만 먹고도 즐거움이 그 속에 있으며(飯疏食飮水 曲肱而枕之 樂亦在其中矣―술이 15), 선비가 밥이 거칠다고 부끄러워한다면 더불어 상대할 것조차 없다(士志於道 而恥惡衣惡食者 未足與議也―이인 9)고 한 바 있다.
  의(饐)와 애(餲)는 밥이 쉬어 냄새가 나고 맛이 변한 것이다. 뇌(餒)는 생선이 썩은 것, 패(敗)는 육류(肉類)가 썩은 것이다. 쉰 밥과 상한 생선, 썩은 고기, 빛깔과 냄새가 나쁜 것을 먹지 않은 것은 건강을 해치기 때문이다.
  실임(失飪)은 알맞게 익지 않은 것을 말한다. 알맞게 익지 않은 것은 건강을 해칠 위험이 있다. 不時不食은 주자에 의하면 제철이 아닌 과일이나 곡식 따위를 먹지 않는 것이다. 이것 또한 건강을 위해서이다. 그러나 고주의 정현은 끼니 때가 아니면 식사하지 않은 것으로 해석한다.
  割不正은 명(明)의 왕부지(王夫之)의 『사서패소(四書稗疏)』에 의하면 가축을 격식에 맞게 각을 뜨지 않은 것이다. 동진(東晉)의 강희(江熙)는 황간의 『논어의소』에서 법도에 맞게 죽이지 않은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주자는 반듯하게 썰지 않은 것이라고 하고 있다. 장(醬)은 간장으로, 不得其醬은 음식에 따라 써야 할 간장이 제각기 다른데도, 그 간장을 제대로 쓰지 않은 것이다. 구차히 음식에 연연하여 아무 음식이나 먹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고기를 밥보다 많이 먹지 않은 것은 식사가 밥을 주로 하기 때문이다.
  술은 즐겨하였으나, 취하면 추태를 보이므로 절제한 것이다.
  고주(沽酒)는 저자에서 파는 술, 시포(市脯)는 저자에서 파는 포(脯)이다. 무엇으로 어떻게 만들었는지 알 수 없는 까닭에 몸에 해로울 수 있다.
  철(撤)은 거(去)로 마다하는 것이다. 강(薑)은 생강이다. 생강은 방향성(芳香性)의 건위약(健胃藥)이다. 그런 까닭에 생강 먹는 것을 마다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많이 먹지는 않았다. 염약거의 『사서석지(四書釋地)』의 주장을 따라 不撤薑食과 不多食을 한 문장으로 연결하여 읽었다. 그러나 고주의 공안국과 신주의 주자는 별개의 문장으로 보아, 不多食을 일반적으로 과식하지 않은 것이라고 해석한다. 
  모두 공자의 식생활에 관한 기술(記述)이다. 위생 상의 문제 때문에 그러기도 했겠지만,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자신을 절제하는 공자의 진면목이 눈에 선하다. 

9, 祭於公 不宿肉. 祭肉不出三日. 出三日 不食之矣.
  나라에서 제사를 지내, 고기를 하사받으면, 그날 밤을 넘기지 않으셨다. 집에서 제사 때 쓴 고기는 사흘을 넘기지 않으셨으며, 사흘이 넘으면 잡숫지 않으셨다.

  <해설> 숙(宿)은 밤을 넘기는 것이다. 나라의 제사는 이틀에 걸쳐 진행된다. 첫날은 희생(犧牲)을 바치며, 그 이튿날도 제사는 계속된다. 이 둘째 날의 제사를 역제(繹祭)라 한다. 제사가 모두 끝나면 임금은 제사에 참여한 신하들에게 고기를 나누어준다. 그런데 그 고기는 이미 이틀이나 되었기 때문에 하룻밤을 더 넘기면 사흘이 되는 셈이다. 그러기에 그날 밤을 넘기지 않는 것이다. 고기가 상할 것을 우려해서이다.
 
10, 食不語 寢不言.
  식사를 하실 때 대화를 나누지 않으셨고, 잠자리에서 말씀하시지 않으셨다.

  <해설> 어(語)는 남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고, 언(言)은 자기 혼자 말하는 것이다.

11, 雖疏食菜羹 瓜祭 必齊如也.
  비록 거친 밥과 채소 국이라도 반드시 고수레를 하셨으며, 정성껏 하셨다.

  <해설> 소사(疏食)는 거친 밥, 채갱(菜羹)은 야채로 만든 국이다. 과(瓜)는 주자에 의하면 필(必)이 잘못된 것이다. 제(祭)는 음식을 먹기 전에, 각 음식을 조금씩 떼어, 그 음식을 처음으로 먹게 해 준 사람에게 올리는 제사로, 우리의 고수레와 같다. 재여(齊如)는 경건한 모양이다.     

12, 席不正 不坐.
  자리가 바르지 않으면 앉지 않으셨다.

  <해설> 자리가 바르지 않으면 먼저 자리를 정돈한 후 앉는 법이다.

13, 鄕人飮酒 杖者出 斯出矣.
  마을 사람들과 술을 마실 때에는, 노인들이 물러난 후에야 물러 나셨다.

  <해설> 장자(杖者)는 지팡이를 짚은 노인이다. 예(禮)에 오십이 넘으면 집에서 지팡이를 짚고 다니고, 육십이 넘으면 마을에서도 지팡이를 짚고 다닌다고 한다. 노인들이 물러간 후에 물러나는 것은 노인을 공경하기 때문이다.

14, 鄕人儺 朝服而立於阼階.
  마을 사람들이 구나(驅儺) 의식을 하면, 조복을 입고 동쪽 계단에 서 계셨다.

  <해설> 나(儺)는 구나(驅儺), 즉 역귀(疫鬼)를 쫓는 의식이다. 조계(阼階)는 사당(祠堂)에 오르는 두 계단 중 동쪽의 것으로, 주인이 오르는 계단이다. 조계에 서 있는 것은 역귀 쫓는 소리에 혹시 조상신이 놀랄까 염려해서이다.
 
15, 問人於他邦 再拜而送之.
  사자를 보내, 다른 나라에 있는 사람을 방문케 하실 때에는, 그에게 두 번 절하고 보내셨다.

  <해설> 주인이 사자에게 두 번 절하는 것은, 방문할 사람에 대한 공경의 표시이다.
 
16, 康子饋藥. 拜而受之曰 丘未達 不敢嘗.
  계강자가 약을 보내왔다. 공자께서는 절을 하고 받으시면서, 말씀하시길 “제가 약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는 까닭에, 감히 맛보지 못하겠습니다.”

  <해설> 강자(康子)는 앞에서도 나온 바 있는 계강자(季康子)이다. 궤(饋)는 보내는 것이다. 미달(未達)은 약에 대해 알지 못한다는 말이다.
  임금이 음식을 하사하면, 좌석을 바로 하고 먼저 맛을 보는 것이 예이다(君賜食 必正席先嘗之―향당 18). 그러나 약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는 까닭에 맛을 볼 수가 없는 것이다.

17, 廏焚. 子退朝曰 傷人乎 不問馬.
  마구간에 불이 났다. 공자께서 조정에서 돌아오셔서 말씀하시길 “사람이 다치지는 않았느냐?” 하시고, 말에 대해서는 묻지 않으셨다.

  <해설> 구(廏)는 마구간이다. 사람의 생명을 무엇보다 귀중히 여겨, 말에 대해서는 물어 볼 경황이 없는 것이다.

18, 君賜食 必正席先嘗之. 君賜腥 必熟而薦之. 君賜生 必畜之.
  임금이 음식을 내리시면, 반드시 좌석을 바로 하고, 먼저 맛보시었다.
  임금이 날고기를 내리시면, 반드시 익힌 다음 조상에게 받치셨다.
  임금이 산 짐승을 내리시면, 반드시 기르셨다.

  <해설> 좌석을 바로 하고, 먼저 음식을 맛보는 것은, 마치 임금을 직접 대면하는 것 같이 하는 것이다.
  성(腥)은 날고기이다. 날고기를 익혀 조상에게 받치는 것은, 임금의 선물을 영예로 여기기 때문이다.
  생(生)은 산 짐승이다. 산 짐승을 죽이지 않고, 기르는 것은 임금의 은혜를 깊이 생각하는 것이다. 

19, 侍食於君 君祭 先飯.
  임금을 모시고 식사를 하실 때에는, 임금이 고수레를 하시면, 먼저 맛을 보셨다.

  <해설> 제(祭)는 본 편 11장에서 말한 고수레이다. 임금보다 먼저 음식 맛을 보는 것은, 임금과 대등한 입장이 되는 것을 피하고 신하로서 처신하는 것이다.

20, 疾. 君視之 東首 加朝服 拖紳.
  병환으로 누워 계실 때, 임금이 문병을 오시면, 동쪽으로 머리를 두시고, 조복을 몸 위에 덮으신 후, 띠를 그 위에 펼쳐 놓으셨다.

  <해설> 임금과 대면할 때는 조복(朝服)을 입는 것이 예이다. 그러나 병으로 인해 조복을 입을 수가 없으므로, 조복을 몸 위에 덮고, 그 위에 띠를 펼쳐 놓는다. 병 중에서도 임금에게 예를 갖추려는 것이다.

21, 君命召 不俟駕行矣.
  임금이 부르시면, 수레가 준비되기를 기다리지 않고 먼저 떠나셨다.

  <해설> 무릇 군자가 외출할 때는, 수레가 준비되는 것을 기다려 타고 나간다. 그러나 임금이 부르면, 그 부름을 중히 여겨, 수레가 준비되는 것을 기다리지 않고 먼저 출발한다. 수레가 준비되어 뒤쫓아 오면 그때 비로소 타고 간다.
 
22, 入大廟 每事問
  태묘에 들어가서는 매사를 물으셨다.

  <참고> 팔일 15에 같은 말이 있다.
 
23, 朋友死 無所歸. 曰 於我殯. 朋友之饋 雖車馬 非祭肉 不拜.
  벗이 죽었으나, 돌아갈 곳이 없자, 말씀하시길 “내 집에 빈소를 차려라” 하셨다.
  벗이 보내주는 것은, 제사를 지낸 고기가 아니면, 비록 수레나 말이라 할지라도 절하지 않으셨다.

  <해설> 돌아갈 곳이 없다는 것은 빈소를 차릴 데가 없다는 말이다. 벗은 의(義)로 맺어진 사이이므로, 빈소를 대신 차려주는 것이다.
  벗은 재물 또한 함께 하는 사이이므로, 아무리 귀중한 선물이라 하더라도 절까지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제사를 지낸 고기는, 그 벗의 조상에 대한 공경심에서 절을 한다.

24, 寢不尸 居不容.
  주무실 때, 죽은 사람처럼 사지를 뻗지 않으셨으며, 집에 계실 때 손님과 같은 태도를 취하지 않으셨다.

  <해설> 시(尸)는 죽은 사람처럼 사지를 쭉 뻗는 것이다. 용(容)은 주자에 의하면 용의(容儀), 즉 용모를 엄숙히 하는 것이다. 그러나 당(唐)의 육덕명(陸德明)의 『경전석문(經典釋文)』에는 용(容)이 객(客)으로 되어 있다. 청(淸)의 유보남(劉宝楠) 또한 『논어정의』에서 당석경(唐石經)을 인용하여 육덕명의 주장에 동조하고 있다. 일본의 오규소라이(荻生徂徠)도 같은 입장이다. 객(客)은 손님과 같이 엄숙한 태도를 취하는 것이다. 정수덕(程樹德)의 『논어집석(論語集釋)』에는 “寢不尸는 삶이 죽음과 같아지는 것을 싫어한 것이요, 居不客은 주인이 손님과 같은 동류가 되는 것을 미워한 것이다”라는 청의 단옥재(段玉裁)의 말이 인용되어 있다. 여기서는 이 주장을 따랐다.

25, 見齊衰者 雖狎必變. 見冕者與瞽者 雖褻必以貌. 凶服者式之 式負版者. 有盛饌 必變色而作. 迅雷風烈必變.
  상복을 입고 있는 사람을 보시면, 비록 친한 사이라도 반드시 자세를 고치셨다.
  관복을 입은 사람이나 소경을 보시면, 비록 자주 본 사이라도 반드시 용모를 바로 하셨다.
  흉복을 입은 사람에게는 수레 위에서 식(式)의 예를 하셨으며, 비록 등짐장수라 하여도 그렇게 하셨다.
  훌륭한 음식을 대접받으면, 반드시 얼굴빛을 고치고 일어나셨다.  
  천둥, 번개가 심하거나, 바람이 맹렬할 때에는, 반드시 자세를 고치셨다.

  <해설> 자최(齊衰)는 어머니나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입는 상복이나 여기서는 그냥 상복을 뜻한다. 압(狎)은 친밀한 사이, 변(變)은 몸가짐을 고치는 것이다.
  면(冕)은 신분이 고귀한 자가 입는 관복이고, 고(瞽)는 소경이다. 설(褻)은 자주 보는 사이를 뜻한다. 모(貌)는 용모를 바로 하는 것이다.
  흉복(凶服)은 상복(喪服)이다. 식(式)은 수레 위에서 그 횡목(橫木)에 손을 짚고 몸을 숙여 하는 절이다.
  부판자(負版者)는 고주(古注)의 공안국, 신주(新注)의 주자에 의하면 나라의 호적과 지도를 등에 짊어진 자이다. 그러나 청(淸)의 유월은 『군경평의(羣經平議)』에서 부판(負販), 즉 등짐장수로 풀이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凶服者式之와 式負版者는 서로 연결되는 문장으로 “흉복을 입은 자에게는 수레 위에서 식(式)의 예를 하였으며, 비록 등짐장수라 하여도 그리하였다.”로 해석된다. 여기서는 이 주장을 따랐다.
  천둥, 번개가 심하거나, 바람이 심하게 불 때, 자세를 고치는 것은 일기(日氣)의 변화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자연과학이 발달하지 않았던 고대의 사람들에게는 당연한 일이었으리라.  

  <참고> 見齊衰者 雖狎必變 見冕者與瞽者 雖褻必以貌는 비슷한 내용이 자한 9에도 있다.

26, 升車 必正立 執綏. 車中不內顧 不疾言 不親指.
  수레에 오르실 때에는 반드시 똑바로 서서 손잡이 줄을 잡으셨다. 수레 안에서는 뒤를 돌아보지 않으셨으며, 큰 소리로 말씀하시지 않으셨고, 손가락으로 무엇을 가리키지 않으셨다.

  <해설> 수(綏)는 수레의 손잡이 줄이다. 내고(內顧)의 내(內)는 황간의 『논어의소』에 의하면 후(後), 고(顧)는 회두(廻頭)로, 뒤를 돌아보는 것이다. 질언(疾言)은 큰 소리로 말하는 것이며, 지(指)는 손가락질하는 것이다.
  수레 안에서 뒤를 돌아보지 않는 것은 뒤에 탄 사람이 불편해 하지 않도록 배려하는 것이다. 큰 소리로 말하지 않는 것은 사람을 놀라게 하지 않기 위해서이고, 손가락질을 하지 않는 것은 사람들을 당혹하게 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27, 色斯擧矣 翔而後集. 曰 山梁雌雉 時哉時哉. 子路共之. 三嗅而作.
  새가 사람의 기척을 살피더니 날아 올라, 한 바퀴 빙 돌다가 다시 내려앉았다.
  공자가 말씀하시길 “산기슭의 까투리가 때를 아는구나, 때를!”
  자로가 그 꿩을 받쳤으나, 공자께서는 세 번 냄새를 맡으시고 일어나셨다.

  <해설> 대단히 난해한 글로, 여러 가지 의견이 분분하나, 누구도 조리있게 해석하지 못하고 있다. 주자(朱子)는 혹 빠진 글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널리 통용되는 해석을 소개하는 것만으로 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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