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로 태어난 윤동주문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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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로 태어난 윤동주문학관
  • 전갑남 객원기자
  • 승인 2024.09.28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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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 속의 영혼의 터'에서 윤동주의 혼을 만나다
윤동주문학관 건물. 인왕산 자락에 버려져 있던 청운수도가압장과 물탱크가 의미 있게 변모하였습니다.
 
서울 종로구 서촌에서 부암동으로 넘어가는 고갯길에 윤동주문학관이 있습니다. 시인 유동주 이미지처럼 하얗고 소박한 모습의 비움을 담은 문학관이라 합니다.
 
윤동주(1917~1945)는 일제강점기 시대 살았던 시인으로 학창시절 교과서 만나 익히 알고 있습니다. 주옥같은 그의 시는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고, 특히 청년층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습니다. 시인은 27세의 짧은 생을 마쳤지만, 70여 년 전에 쓰인 시가 오늘날에도 해맑은 영혼을 일깨워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별을 노래한 영원한 청년 윤동주
 
시인은 <별 헤는 밤>, <자화상>,<새로운 길> 등과 같은 시로 우리 말 우리글로 일제에 맞섰습니다. 우리는 그를 민족의 감성을 잘 표현한 시인으로 또 독립운동가라 부르는데 주저하지 않습니다.
 
윤동주의 시 <새로운 길>이 입구에 전시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윤동주를 불같이 행동하는 실천적 인간형이라기보다는 고요히 자아를 응시하는 내면적 인간형에 속한 사람이었다 평합니다. 그의 시에서 알 수 있듯이 밤하늘의 별을 헤며 예전에 알던 이국 소녀들, 순하디 순한 동물들, 그리고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와 같은 시인들의 이름을 불러보던 순결한 영혼을 가진 청년이었습니다.
너무도 유명한 <서시>에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다"라는 시구를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윤동주는 해방을 불과 여섯 달 앞둔 1945216, 차디찬 이국의 감옥에서 원인도 밝히지 못한 채 목숨을 거두었습니다.
 
윤동주의 죄명은 무엇이었을까? 일본어가 아닌 조선어로 시를 쓴 죄, 조선 문화의 유지 향상에 힘썼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라를 빼앗긴 비애와 아울러 분노가 치밀어 옵니다.
종로구 서촌에 있는 윤동주 하숙집 옛터. 문우 정병욱과 함께 소설가 김송의 집에서 하숙을 했습니다.
 
시인 윤동주는 연세대학교 전신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다닐 때 문우 정병욱(1922~1982)과 종로구 누상동에 있는 소설가 김송(1909~1988)의 집에서 하숙생활을 하였습니다. 옥인동 수성동계곡 아랫동네 서촌에 가면 그의 하숙집 옛터가 남아있습니다. 시인은 아름다운 인왕산에 올라 호연지기를 기르며 자연 속에서 시정을 다듬었을 것 같아요.
 
그의 대표시라고 하는 <별 헤는 밤>, <서시>, <또 다른 고향> 등은 젊은 학창 시절에 쓰였다고 알려졌습니다.
 
윤동주문학관은 우리의 말과 글을 지켰던 시인의 공간으로 지어졌습니다. 그리 크지 않은 문학관 건물이 이색적입니다. 2012년 문을 연 윤동주문학관은 인왕산 자락에 버려져 있던 청운수도가압장과 두 개의 물탱크가 의미 있게 변모한 곳이라 합니다.
 
윤동주의 숨결을 재현한 문학관
 
문학관이 화려하다기보다는 동선과 팥배나무가 드리우진 건물이 인상적입니다. 건물은 3개 전시실이 있습니다.
 
하얀색으로 된 제1전시실 시인채는 순백의 공간으로 윤동주의 작품과 시간적으로 배열된 사진자료와 친필 원고 영인본 전시되어 순수한 시인의 체취가 묻어있습니다. 실내에 윤동주 생가에 있었던 우물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앞에 새겨진 <자화상>이란 시에서 우물에 자신의 얼굴을 비춰보았을 시인을 상상해 봅니다. 끊임없는 자기 성찰을 했던 시인의 면모가 읽힙니다.
 
자화상(自畵像) - 윤동주
 
산모퉁이를 돌아 논 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 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시에서 어두운 식민지시절 부끄러운 자신의 성찰을 표현한 시인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일본 유학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해야 했던 창씨개명은 눈물 어린 참회와 서정을 한 편의 시로 끄집어냈습니다. 한 젊은 지식인이 겪었던 괴로움을 큰 아픔으로 느낄 수 있는 대목입니다.
우물목판 원본. 시인의 생가에서 우물을 수리하는 과정에서 나온 목재 널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시 <자화상>이 전시되고 있습니다.
제1전시실 시인채. 시인의 작품과 관련 책을 전시되어 있습니다.<br>
제1전시실 시인채. 시인의 작품과 관련 책을 전시되어 있습니다.
<쉽게 쓰인 시> 육필원고 영인본.
 
만년필로 쓰인 육필원고에서 청년 윤동주의 정결한 필체가 생생하게 전해집니다. 그가 세상을 뜬 뒤 194830여 편을 모아 나온 유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 눈길이 갑니다.
 
제2전시실 열린우물. 물탱크 지붕을 걷어내 하늘이 보입니다. 물이 흐른 흑적이 벽체에 그대로 남아 있고, 하늘과 바람과 별이 함께하는 공간이 인상적입니다.
 
드르륵 문을 열고 2전시실로 발길을 옮기는데 이곳은 열린 우물을 연상케 하는 공간이라 합니다. <자화상>에 나오는 우물에서 모티브를 얻어 원래 있었던 물탱크 지붕을 뜯어내 하늘과 바람과 별이 함께하는 공간으로 꾸며졌습니다. 하늘이 보이고 팥배나무가 드리워 묘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뜰 공간 자체가 하나의 우물을 형상화했습니다. <자화상> 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이 듭니다.
 
제3전시실 닫힌 우물. 마지막 생을 마감한 후쿠오카형무소의 감방을 연상하게 합니다. 시인의 일생과 시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영상을 상영합니다.
 
닫힌 공간인 제3전시실로 들어갑니다. 여기는 그가 숨을 거둔 후쿠오카형무소의 차가운 감방을 연상케 하였다 합니다. 사색하는 공간이 되어 윤동주 시인의 일생과 시 세계를 담은 영상을 감상합니다. 시인의 번뇌와 고뇌, 치열했던 삶을 영상을 통해 엿볼 수 있습니다.
 
근래 상영된 영화 <동주>에서는 빛나던 미완의 청춘,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이름 동주라 했습니다. 윤동주는 살아생전 한 번도 시인이라 불리지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일제 칼날이 거센 때 우리말 우리글로 맑고 청정한 삶을 서정적으로 묘사하여 마음을 울린 시를 남겼습니다.
 
한국인의 가슴에 별이 되어 빛나는 시인 윤동주! 나는 세상을 향한 젊은 청년의 맑은 시선을 윤동주문학관에서 어렴풋이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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