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공동체는 개별화된 주민들을 붙잡고 이어주는 이끼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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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공동체는 개별화된 주민들을 붙잡고 이어주는 이끼의 역할"
  • 안재연 객원기자
  • 승인 2024.08.30 19:2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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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 인천마을지원센터 폐지 반대를 위한 문화제 ‘마실가자’

 

인천시청 앞 광장이 사람들로 북적인다.
인천시청 앞 광장이 사람들로 북적인다.

 

지난 28일 인천시청 앞에서 인천마을 지원센터 폐지 반대를 위한 문화제 마실가자가 열렸다. 그 현장을 방문하여 2시간여 지켜보았다. 무더위가 아직 채 가시지 않은 8월의 여름밤. 그들은 무엇을 위해 그곳에 모인 것일까?

참여자들은 시청 앞 잔디광장에 너나 할 것 없이 돗자리를 가지고 와 펼쳤다. 빈손으로 가볍게 간 기자는 돗자리가 없다. 하지만 돗자리는 네 것, 내 것이 따로 없다. 내 엉덩이 한편 앉히면 그 돗자리와 함께. “같이 앉아도 돼요?”, “여기 자리 있어요?” 여기저기서 합석 가능 여부를 묻는다. 물음이 무색하게 어서 앉으라고 반긴다.

 

부평 마을공동체 네트워크의 멋진 난타 공연
인천시청 앞 광장이 힙합공연장으로 !
인천시청 앞 광장이 힙합공연장으로 !
중구 마을 공동체 네트워크에서 준비한 태평무를 함께 추고 있다
중구 마을공동체 네트워크에서 준비한 태평무를 함께 즐기고 있다

 

마을지원센터 폐지 반대를 위한 시위라고 들었는데 문화제라고 이름이 붙은 것도 생소했다. 그런데 이 시위는 왜 웃음이 끊이질 않는지 더욱 궁금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참여 부스까지 있다. 진짜 문화제가 맞긴 맞나보다. 가죽 팔찌, 목걸이를 만드는 부스, 예쁜 수세미까지 얻어왔다. 형광 스틱을 나눠주는 부스도 있었는데, 3분자유발언 사이사이 공동체원들이 자발적으로 꾸몄다는 공연을 보자니 형광 스틱을 흔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난타공연, 통기타공연, 갑자기 예능프로그램이었던 쇼미더머니가 펼쳐지나 싶더니 왕비가 추던 춤이라는 태평무까지. 평소 크게 흥 없는 기자도 환호하고, 박수 치며 구경했다

 

주황 가죽팔찌와 수세미도 얻었다.
주황 가죽팔찌와 수세미도 얻었다.

 

인천마을 지원센터 폐지 반대 문화제는 시간이 갈수록 찾는 인파가 늘었다. 동네 어린이들에게도 아주 인기였다. 인천시청 근처 사는 아이들의 놀이터가 됐다.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이 부스, 저 부스를 생기 넘치게 뛰어다녔다. 기자도 부스를 몇 군데 돌다가 자리를 잡고 앉아 3분자유발언을 들었다. 사연은 각기 다르고, 사는 곳도 다르지만 모두 한목소리로, 같은 의지로 외치고 있었다.

행정은 과연 공동체의 감수성을 이해할 수 있는가?”, “인천마을 지원센터는 수많은 공동체와 시민의 것이라고 말이다. 이들이 왜 그렇게 공동체를 사랑하게 된 것인지 점점 큰 궁금증이 일었다. 이들은 무엇을 이토록 평화롭고, 뜨겁게 외치고 있는가?

 

꽃다발이 있는 이토록 우아한 시위라니.
꽃다발이 있는 이토록 우아한 시위라니.

 

'마을'. 이제는 낯선 단어. 그러나 꼭 필요한 우리 동네의 가장 작은 공동체. 그들은 행정이 지키지 못하는 부분을 채우고 있다고 말했다. 난타, 사춘기 청소년, 통기타 연주, 마을신문, 공예 활동 등 공통점을 찾기 힘든 다양한 분야들에 걸친 5개 군·구의 1,300여 개 마을 공동체들.

이들의 발언을 듣고 있자니 일전에 읽었던 <이끼야, 도시도 구해줘!>라는 그림책이 떠올랐다. 무분별한 난개발로 그늘이 사라지자, 이끼는 쫓기듯 이사를 한다. 이끼의 뿌리는 끈끈이 발(헛뿌리)로 땅을 꽉 붙잡고 있었는데, 이끼가 사라지고 나니 산사태가 위험에 처한다. 결국 모두의 눈앞으로 흙더미가 확 덮쳐진다.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 되어버렸다.

 

이끼야! 도시도 구해줘 (와이즈먼BOOKS)
이끼야! 도시도 구해줘 (와이즈만BOOKS)

 

기자가 짧게나마 지켜본 마을 공동체는 개별화된 주민들의 연대를 간신히 꽉 붙잡고 이어주는 이끼의 역할과 같아 보였다. 때론 공기청정기가 되어주고, 마을의 정수기가 되어주고. 어떤 마을에는 연고가 되어주는 이끼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었다.

눈을 크게 뜨고 잘 살피지 않으면 작아서 잘 보이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대의 마을에는 그 이끼들이 더 많이 필요하다. 다양한 생태계로 풍성히 뻗어나가기 위해 서로를 향한 자발적 돌봄으로 끈끈한 연대를 자양분 삼는 공동체 정신은, 외로운 개인의 시대에 꼭 필요한 시대정신이 아닐까.

각각의 마을에 분명 필요하지만, 너무 작고 미미한 부분이다. 또 마을마다 필요한 공동체와 성질은 공통점을 찾기 힘들게 굉장히 다양하다. 그에 반해 낮밤, 주말 없이 긴 시간 공감대가 끈끈하게 형성되어야 하는 부분이 있다. 행정서비스로는 채 이뤄내기 힘든 분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역사회의 위기에 진정한 힘을 발휘하는 공동체. 평소에는 작고 작은 이끼 같지만, 끈끈한 헛뿌리로 조각난 마을을 꽉 붙잡고 있다. 난개발은 잠시 멈추고, 이끼가 자생하는 마을에 생태계가 번성하길 바라는 건 어떨까. 그들의 외침에 인천시가 귀 기울여주길 바라게 되는 한여름 밤의 꿈같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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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자 2024-08-30 11:40:11
기사를 읽고 댓글을 달아야겠다고 마음 먹기는 처음입니다.
로그인을 하려니 휴먼계정이라네요
전화를 하여 휴먼계정 풀고 이렇게 응원의 글을 올립니다.
마실가자 현장에 있던 사람으로써
안재연 기자의 글이 너무 공감되고 한발 더 나아가 '이끼야 도시도 구해줘'라는 그림책을 안내하며, 언론인이 어떻게 사실을 전달해야 하는지 정확히 알고 계신 것 같아 기뻤습니다.
본 기사에서 마을공동체의 서사를 담고 그 이야기의 의미를 잘 전달해주고 있습니다.
마을에서 기사를 읽고 눈물이 나본 건 처음이라는 분도 있더라구요
저도 울컥했습니다.
기사님 정말 응원하고
이런 기사가 행정의 마음에 닿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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