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헌 중구청장 "문화재의 가치 등 조사하겠다"
고려시대 유적으로 관리가 제대로 안돼 안타까움을 주는 영종도 두경승 사당과 묘역은 1960년대 정비된 것으로 두경승 후손이 관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후손 개인이 이들 유적을 관리하기 어려운 환경이라서 대책이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 9일 기자는 사당을 다시 찾아 이를 관리하고 있는 두경승 장군의 후손 두금암 씨를 만날 수 있었다. 영종도에서 역사문화 해설사를 하고 있는 전수철씨와 어머니가 두씨인 양재길씨가 자리를 함께 했다.
관리인 두씨는 83세로 귀가 어두어 잘 듣지를 못했다. 그는 건설분야에서 일을 하여왔고 지금은 인천공항에서 버드 스트라이크를 막기위해 소음탄을 쏘아 비행장에 접근하는 새를 쫒아 내는 일을 한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연령도 많지만 귀가 잘 안들린다고 한다. 인터뷰를 하기가 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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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먼저 두경승 사당을 관리하기 위하여 거주하기에 여건이 좋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사당에 전기는 들어오지만 수도가 없어서 농수용 지하수를 사용하고 있었다. 도시가스도 바로 앞 빌라에는 사용하고 있지만 사당 관리소에는 설치가 안돼었다.
두경승 사당은 묘역에 있는 비석에 새겨진 대로 1965년의 정비를 하며 적은 연대로 유추해 볼 때 사당도 그 즈음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인천in을 통해 두경승 사당의 형편이 알려진 후 익명의 한 사학자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 강화도 전적지 유적을 복원하던 무렵에 묘역과 사당을 정비한 것으로 보여진다고 전했다.
그 이후 이 마을에 빌라촌(더원빌리지)이 형성되면서 길도 정비되었지만 실제로 사당을 유지하기 위한 도시가스도 없고 수도시설도 없다고 한다. 주변에 연탄재 등의 쓰레기도 그런 이유로 생겨난 것으로 보였다.
사당은 60년에 잘 건축된 모습이다. 후에 이를 관리하기 위해 담을 설치하고 관리를 위한 사택도 지은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그 집은 비가 오면 비가 새고 상당히 낡고 허름해 거주할 수 없는 상태라고 한다.
앞서 집 관리를 하던 두 사람이 사당에서 심근경색 등 질병으로 사망했으며 현재 관리자인 두금암씨는 세 번째 관리인이라고 한다.
그는 인천공항 유해 조수 퇴치를 하며 사당을 관리 숙소로 사용하면서 생활을 유지하고 있었다. 사당 안에 있는 4마리의 개는 낡은 사당을 지키고 공항에서 유해 조수를 퇴치할 때 동행하는 사냥견이다. 사당 집에 아무도 없다면 고양이 등의 출입으로 집이 더욱 엉망이 되었을 것이라고 관리인 두씨는 말한다. 그는 집안 내부를 공개하지는 않았지만 대문 안에 들어가 촬영하는 일은 허락하였다.
한편 지난 4일 중구가 주관한 ‘별빛 반상회’에서는 두경승 사당의 방치문제에 대해 건의하는 시간이 있었다. 지저분한 사당주변의 관리상태와 안내판 설치, 문화재 등록 등을 건의하였다.
이에 문화관광과에서 답변을 하고 김정헌 구청장은 문화재 관리상태를 조사하고, 사당 주변 지역을 청소할 것이고, 문화재의 가치 등을 조사하여 문화재 관리가 되는 수준이라면 문화재 등록을 건의하겠다고 답변했다.
두씨는 종친회에서는 두경승의 고향인 ‘만경’(전북 김제)으로 이전하자는 주장을 하는 사람도 있다고 하였다. 이곳의 땅을 정리하면 군산에 시설을 설치하여 관리를 더 잘 할 수 있다는 주장이라고 한다.
고려시대의 무신인 두경승[杜景升․?~1197]은 ‘만경 두씨’의 중시조다. 그는 무신정변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았고 이때 수도 내에서 장졸들이 약탈을 벌였지만 그만은 홀로 자리를 지키며 군인의 본분을 다하자 그 휘하의 부대도 재물을 약탈하는 일이 없었다고 전한다.
1197년 9월 최충헌이 명종을 폐위시킴과 동시에 두경승을 붙잡아 그대로 영종도로 유배보냈다. 신종이 즉위한 후 11월 두경승은 유배된 섬에서 울분으로 죽었다고 전해진다. 경대승을 제외한 무신정권 권력자들이 대개 <고려사> 에 ‘반역열전’에 기록된 반면 두경승은 ‘제신열전’에 기재되었다.
대한민국의 후손들을 위하여 두경승 묘역의 정비는 시급하고 필요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