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의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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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의 기적
  • 조기쁨
  • 승인 2024.04.17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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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조기쁨 / 수봉도서관 창작동아리 ‘쓰는 순간’ 회원
(문화관광부 ‘도서관 이용수기 공모' 은상 수상작 )

2년 전 여름의 초입이었다. 나는 당시 인천 미추홀구를 휩쓴 전세 사기의 중심에 놓여 있었다. 겨우 마련한 신혼집이 어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사람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해 집에서 숨어 지낸 지 수개월. 답답한 마음에 컴컴한 방 안에서 검색했던‘소설 쓰기’라는 단어에 수봉도서관의 프로그램이 걸렸던 거였다. 이미 마감됐다는 글에도 무작정 전화를 걸어 참여하고 싶다며 연락처를 남겼다. 그렇게 몇 주 후, 결원이 생기면서 간신히 참여 기회를 얻었다. 글쓰기 수업과 여러 번의 피드백 등 수많은 과정을 거쳐 11월, 직접 쓴 단편소설이 책으로 출간되었다. 소설에는 나의 상처와 슬픔이 담겨 있었지만, 왠지 모르게 마음이 후련했다. 그리고 나를 대신 해준 소설 속 주인공들이 부디 진심으로 행복하길 바랐다. 그 이후로 더는 새벽에 혼자 울지도 않았고, 사람을 만나는 것이 힘들지도 않았다. 어쩌면 홀로 숨어 지냈던 시간 동안 내내 힘들다. 아프다. 괴롭다. 그래서 죽고 싶다. 그런 말들을 홀로 곱씹는 게 아니라 세상에 털어놓고 싶었던 것 같다. 소설을 쓰며 내 이야기지만 내 이야기가 아닌, 허구의 세상 속에 어둡고 아프고 우울한 것들을 모두 두고 올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글 쓰는 일이 마음을 위로할 수 있는 위대한 힘이 있단 걸 깨달았다.

수봉도서관
수봉도서관

 

도서관에서 단편 소설을 쓰면서 많은 이들과 만나고 헤어졌다. 비록 프로그램은 끝났지만, 나는 여기서 멈추고 싶지 않았다. 큰 용기를 내어 사서님과 글을 썼던 동료들에게 제안했다. ‘이곳에서 계속해서 글을 쓰는 것이 어떻겠냐고’ 모두의 마음이 모여‘쓰는 순간’은 도서관 소속 소설 쓰기 동아리로 재탄생했다. 첫 회의 때 감사하게도 회장을 맡게 되면서 성격도 점점 변해갔다. 예전의 활기찬 모습을 되찾았고, 사람들과 소통하고 글을 쓰며 삶의 희망을 엿보았다. 학창 시절 이후 참 오랜만에 작가라는 꿈도 가지게 되었다. 단 한 줄이라도 나처럼 힘든 이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줄 수 있는 글을 쓰고 싶다고 결심했다. 그렇게 동아리 부원들과 한 달에 한 번씩 도서관에서 만나 서로 창작한 소설을 피드백 했다. 6개월은 주제 찾기를, 나머지 6개월은 하나의 주제로 단편소설로 완성하는 계획이었다. 1년 동안 도서관은 우리가 모일 수 있는 공간과 작가님 수업, 책 출판까지 제공해 주었고, 그 과정에서 담당 사서님께서 동아리 운영에 관련된 조언과 발생하는 모든 문제를 다정한 시선으로 도와주셨다. 그 덕분에 시행착오 없이 무사히 동아리를 이끌어 갈 수 있었다.

하지만 즐거운 동아리 활동과는 별개로 현실의 시간은 다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손써 볼 새도 없이 집이 경매에 넘어가고 말았다. 그때는 마치 잘게 부서진 유리 조각 위를 걷는 것만 같았다. 매일 날 선 아픔이 지독하게 이어졌다. 겨우 아문 상처가 터지고, 우울과 무기력에 넘어지기도 했다. 그때마다 함께 글을 써 왔던, 같은 목표를 가진 동료들에게 받은 격려와 지지가 큰 힘이 되었다. 지칠 때마다 내 앞에 놓여있는 뚜렷한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희망이 나를 붙들었다. 내 옆에서 함께 걸어주는 이들이 없었다면 아마 나는 어딘가에 쓰러져 세상과 멀어졌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게 한 해 동안 소중한 인연들의 소통과 관심으로 완성한 따스한 두 번째 책을 품에 안았다.

​그 사이, 꿈은 더욱 구체적으로 그려졌다. 웹소설 분야에 관심이 생겼고, 우연한 기회로 계약 제의를 받아 글을 쓰기 위해 매주 시간이 날 때마다 수봉도서관을 찾게 되었다. 산 위에 우뚝 솟은 도서관의 3층 테이블에 앉아 글을 쓸 때면, 유리창 너머 멀리 내려다보이는 풍경이 나의 좁았던 시야를 넓혀줬고, 막히는 부분이 있을 때면 새로운 책을 읽으며 생각의 전환을 이뤄냈다. 함께 마음을 나누며 글을 쓰는 친구도 생겼고, 오랜 시간 함께 하며 만날 때마다 반겨주시는 사서님과 웃으며 이야기도 나누게 되었다. 어느새 도서관으로 오는 시간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생각해 보니 처음부터 아무런 조건도 없이 나를 품어준 건 바로 도서관이었다. 그냥 내가 그곳에 가고 싶다는 한마디를 했을 뿐이었는데, 내 발로 찾아온 것뿐인데. 내 곁에서 끝없이 지지해 주고, 긍정적인 에너지로 위로해 준 모든 존재와 꿈이 그곳에 있었다. 덕분에 지금까지 이리저리 휘청거렸을지언정, 쓰러지지 않고 삶을 견뎌낼 수 있었다. 이 모든 것이 결국 도서관이란 공간에서 시작된 기적이었다.

​올해도 어김없이 시작된 동아리 활동으로 세 번째 책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이제 제법 남들에게 인정받는 글도 쓸 수 있게 되었고, 꿈에도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다. 가끔 상처를 마주해도 이젠 울지 않는다.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바라보며 웃기로 마음먹었다. 지금도 수봉 도서관에서 이 글을 쓰며 생각한다.

​“오늘도 도서관에 오길 잘했다. 가장 아팠던 그날, 그 순간, 사라지지 않고 이곳에 찾아오길 참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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