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와 명상, 힌두 전통춤 - 나를 만든 미술 여행 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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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와 명상, 힌두 전통춤 - 나를 만든 미술 여행 11년
  • 조우
  • 승인 2024.03.15 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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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화가의 인천 이야기]
(1) 조우 작가 - ③ 작가의 길에서 만난 사람들

제물포에서 만난 「뉴에이지 뉴이미지」와 함께

90년대 제물포는 북적북적했다. 선인재단 학생들 중심으로 많은 사람이 오고 갔다. 그중에 예술가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장소였다. 저렴한 먹거리와 쓰러져가지만 작업하기 훌륭한 작업실들이 많았다. 북적북적 왁자지껄 술 처 마시며 예술의 침을 온 천지에 튀겨가며 논했던 장소였다.

그렇게 나는 조금씩 가족에서 벗어나 친구들과 함께했다.

 

'가족' 162.2×130.3cm 캔버스 위에 유화 1999 아버지 차를 타고 첫 작품 운송하는 날이었다. 비바람 쳤지만 나는 하나도 두렵지 않았다.
'가족' 162.2×130.3cm 캔버스 위에 유화 1999.
아버지 차를 타고 첫 작품 운송하는 날이었다. 비바람 쳤지만 나는 하나도 두렵지 않았다.

 

학교와 집밖에 몰랐던 나에게는 「뉴에이지 뉴이미지」 사람들은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그들이 있어 지금 내가 여기에 있을 수 있었다.

 

뉴에이지 뉴이미지 따라 구월동 가다.

90년대 <NEW AGE NEW IMAGE> 전시를 기획하신 민운기 선생님은 배다리에서 '스페이스빔'과 '인천문화양조장'을 운영하고 계시는데 나와의 인연은 구월동에 오픈할 때였다. 제물포에서 뉴에이지 친구들과 모여 놀다가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에서 단체전을 준비하며 새롭게 오픈한 '스페이스빔'을 중심으로 작가들이 모였다. 우리는 제물포에서 구월동으로 철새처럼 이동했다.

인천에 사는 전국의 대학 졸업생들은 구월동에 모여 작업에 관해 이야기하고 전시 진행을 같이했다. 그때 만난 양승수 작가님께서 월세 10만 원에 작업실을 빌려주셨는데 그 덕분에 개인 작업실을 관교중학교 옆에서 시작했다. 살짝 어두움이 있었지만 혼자 쓰기에는 딱 좋은 크기였다.

 

1999년 'NEW AGE NEW IMAGE' 도록스페이스빔 자료제공
1999년 'NEW AGE NEW IMAGE' 도록.(스페이스빔 자료 제공)

 

뉴에이지 뉴이미지 덕분에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과 스페이스빔이 있는 구월동에서 인천 작가가 되어갔다.

 

다시 희망이 넘쳐나는 희망작업실

월세를 내는 자식이 걱정되셨는지 부모님께서 전세로 희망백화점 뒤에 작업실을 구해주시고 마음 편하게 작업하라고 하셨다.

1편 조우 기사(https://www.incheonin.com/news/articleView.html?idxno=99267)에 썼지만 나는 우리 집의 공주이었기에 넉넉하지 않은 살림에도 딸을 위해 구해주신 거였다.

 

'SHE WANTS SOMETHING SWEET' 300x400cm 벨벳 천 설치 2000.동화 속 공주님처럼 나는 무언가 특별한 것을 원했다.
'SHE WANTS SOMETHING SWEET' 300x400cm 벨벳 천 설치 2000. - 동화 속 공주님처럼 나는 무언가 특별한 것을 원했다.

 

작업실 오픈 기념하며 <SHE WANTS SOMETHING SWEET>이라는 제목으로 생애 첫 개인전을 열었다. 나의 아름다운 작업실에서 뉴이미지 친구들과 놀려고 불판도 사고 옥상에 고추와 상추도 키우고 먹고 자고 작업하며 너무나 즐겁게 지냈다.

1999년 만난 뉴에이지 뉴이미지 사람 중에 박미나, 김홍희, 차경섭, 최재훈, 한준희 그리고 전시 참여는 안 했지만 술값 내러 날라와 준 조B (친오빠보다 더 가까운 조근직)은 지금까지도 내 옆에 있다. 특히, 미나와 홍희 오빠는 희망작업실 근처에 살아서 자주 만나서 놀았는데 지금 사는 자유공원 중턱 집도 그들이 있어 이사와 살게 되었다.

 

NEW AGE NEW IMAGE 1999년 도록에 기록된 사람들디지털 이미지 합성 2024
NEW AGE NEW IMAGE 1999년 도록에 기록된 사람들디지털 이미지 합성 2024
<SHE WANTS SOMETHING SWEET> 200x400cm 벨벳천 설치 2001.
인천종합예술회관 뉴에이지 뉴이미지 단체전

 

2002년 한국에서 월드컵을 하고 있을 때까지 나는 희망백화점 옆 희망작업실에서 청춘을 불사르며 작업하고 미술학 석사 공부를 마쳤다. 그때 나는 뭔가 특별한 것을 원했다. 지금이라고 별다르지 않지만 새로운 것을 접하고 경험하는 것을 좋아했다. 고등학교 때 작가가 되겠다는 꿈을 키우고 미술 공부를 하던 중에 미술책에서 카주라호의 관능적인 조각상 보았는데 그때부터 인도에 가서 꼭 내 눈으로 보겠다고 다짐을 했었다.

 

'누드 002' 20x20x30cm 폴리코트에 채색 1994
'누드 002' 20x20x30cm 폴리코트에 채색 1994

 

인천에서 작업하며 남자 사람을 만났는데 그도 인도에 가고 싶어 했다. 나는 희망이 가득한 희망백화점과 부모님의 곁을 떠나 그와 인도 여행을 갔다. 새로웠고 신기했고 냄새까지 내 뼛속으로 스며들었다. 2001년 인도 여행을 시작으로 나의 핑크빛 20~30대는 빛나고 또 빛났다. 그 후 여러 나라를 여행하는 11년간 나의 인생은 크게 바뀌었다.

 

잠시 돌아온 인천에서

2006년부터 3년 동안 네팔에서 요가·명상과 힌두 전통춤을 추면서 작업을 했다. 처음 네팔은 인도에서 한국으로 들어가는 길에 잠시 머무는 곳이었다. 여행지였지만 네팔 미술이 궁금해서 카투만두 미술대학에 구경 갔었다. 거기서 만난 사람이 타멜(여행자 거리)에 한국인이 운영하는 아트갤러리가 있다고 소개해줬다. 그때부터 나의 또 다른 신세계가 벌어질 줄 꿈에도 몰랐다. 그는 “너 정도면 카트만두 미대에서 강사가 될 수 있어.”라며 얼른 한국에 들어가 준비해서 다시 들어오라고 비자 다시 받는 방법까지 알려주었다. 갤러리 운영하는 한인은 나를 참 잘 이용했다. 곱게 자란 난 모든 사람을 믿었다. 젠장!!!

나는 카트만두대학 교수가 되고 싶었고, 좀 더 특별한 곳에서 작업하고 싶었다.

덕분에 특별했고…

덕분에 나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잠시 나는 네팔 비자와 돈을 마련하기 위해 잠시 한국에 왔다. 마침 그때 2007.08~09 <Public studio-배다리의 꿈>이라고 민운기 선생님께서 배다리로 '스페이스빔'을 옮기면서 하신 프로젝트 중 하나에 참여하게 되었다. 젊은 작가들이 모여서 같이 작업하고 이야기하면서 만들어가는 것이었다. 지금이야 흔하디흔하지만 17년 전에는 너무나 재미있는 작업이었다. 그때 만나 주희란 작가는 아직도 안부를 주고받는 사이이고 백승기 감독은 신포동 어딘가에서 마주친다. 그때는 몰랐는데 오혁재, 장한섬 등 지금의 지인들이 신기하게도 그 공간에 같이 있었다. 지금도 민운기 선생님께서는 스페이스빔을 운영하며 작가들과 시민들을 위해 즐겁게 일하고 계셔서 너무 감사하다.

 

'Public studio-배다리의 꿈' 사진일기 설치 2007.- 공동작업을 같이했던 작가들과 배다리에서
'Public studio-배다리의 꿈' 사진일기 설치 2007.- 공동작업을 같이했던 작가들과 배다리에서
그림일기 설치 2007배다리에서 그림 일기장을 사서 프로젝트 하는 동안 그림일기를 썼다. 2012년부터 12년째 그림일기를 작업을 꾸준히 그리고 있는데 배다리 프로젝트부터 시작된 거 같다.
'Public studio-배다리의 꿈 '그림일기 설치 - 2007배다리에서 그림 일기장을 사서 프로젝트 하는 동안 그림일기를 썼다. 2012년부터 12년째 그림일기를 작업을 꾸준히 그리고 있는데 배다리 프로젝트부터 시작된 거 같다.

 

네팔에서 빨리 들어오라고 연락이 왔고, 전시 철수까지 마무리도 못 하고 급하게 나는 나를 찾아 다시 새로운 길을 떠났다. 같이 작업한 작가들에게 죄송했다. 민운기 선생님 덕분에 인천 초창기 레지던시에 참여하게 되었고 지금도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다.

민운기샘~ 고맙습니다.

배다리여~~ 영원하여라!

다시 나는 한국을, 인천을 떠났다. 그 후에도 여러 나라의 많은 사람을 만났고, 많이 배웠고, 많이 느꼈다. 특히, 네팔에 3년쯤 있으면서 일주일에 5번씩 요가·명상을 하고 좋아하는 춤을 배우며 나를 찾아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한 달에 한 번 엄마와의 통화에서 엄마는 “네가 행복하면 나도 행복해!”라는 말을 해주셨다. 그때부터였던 거 같다. 나는 이 세상에 중심이고, 내가 행복하며 사랑하는 나의 낭자(엄마)씨도 행복하구나! 네팔의 생활은 정신적인 여행이었고 마치 사후여행과 같았다. 행복했고 사랑을 많이 받았던 시간이었다.

엄마의 말 한마디로 나는 낭자의 딸로 다시 태어났다.

 

“WOMB” '엄마의 방' 90.9×72.7cm 캔버스 위에 아크릴 2024엄마의 방에서 잠시 쉬고 싶었다. 그림을 그리며 엄마의 품속으로 들어간다.
“WOMB” '엄마의 방' 90.9×72.7cm 캔버스 위에 아크릴 2024엄마의 방에서 잠시 쉬고 싶었다. 그림을 그리며 엄마의 품속으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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