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천주교회 성지 '배론'을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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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천주교회 성지 '배론'을 찾다
  • 홍광선
  • 승인 2012.08.05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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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초 신학교와 최양업 신부 묘소 등 '천주교 역사'

지난 3일 충북 제천시 봉양읍 구학2리 644-1에 있는 한국 천주교회 성지 '배론'을 찾았다. 1831년 설정된 조선교구장 직무대행 메스트로 신부에 의해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신학교(1855, 2 ~ 1866. 3)가 세워진 곳이다.

메스트로 신부는 1843년부터 배론에 와 살던 장주기(요셉) 초가집을 빌려 1855년 초 신학교를 설립하고, 신학교 이름은 1861년 10월 교구장 베르뇌 주교에 의해 '성 요셉신학교'로 명명되었다. 당시 신학교에는 라틴어과와 신학과가 개설되었고, 신학과에서는 수사학, 철학, 신학을 가르쳤다.

'성 요셉신학교' 출신 신학생으로는 병인박해 당시 순교한 김사도 요한, 유 안드레아, 권 요한, 박 필립보, 이 토마스 등이 있다. 이 신학교는 안타깝게도 1866년 대원군에 의한 병인박해로 문을 닫았으며 학교의 책임을 맡았던 푸르티에 신부와 프티니콜라 신부는 같은 해 3월 11일 새남터에서 순교를 했다.

또한 이곳에는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사제가 된 최양업(토마스 1821~1861) 신부 묘소가 있다. 그는 1836년 12월 김대건, 최방제 등과 함께 신학생으로 선발되어 마카오에 가서 유학생활을 하며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칼르리, 데플레슈, 르그레주아 등의 신부에게 신학교육을 받고 1949년 중국 상해에서 사제 서품을 받았다. 그는 귀국 후 12년간 주로 교유촌 신자들을 위한 사목순방을 했으며, 1850년 1월 부터 1861년 6월까지 서양 선교사들이 갈 수 없는 지역만을 담당했다. 특히 그는 교리공부와 신앙을 북돋기 위해 교리서 한글번역(셩교요리문답, 텬쥬셩교공과)과 선종가 등 천주가사를 많이 저술했다. 그는 1861년 6월 15일 경상도 전교를 마치고 상경 중 과로로 문경에서 선종하였고, 그해 11월경 교구장 베르뇌 주교에 의해 당시 신학교가 있었던 이곳에 묻혔다.
 
이곳에는 1801년 신유박해를 피해 서울에서 내려와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천주교 신자인 김귀동 집 뒤에 있던 옹기굴을 가장한 토굴에 은신하여 신유박해로 인해 거의 무너지다시피한 교회의 재건을 위해 백서를 쓴 황사영(알레시오)의 순교비가 있다. 그의 백서에는 가로 62Cm, 세로 38Cm 가량 되는 명주천 위에 122행, 13,384자로 된 신유박해 진행과정과 주문모 신부를 비롯한 30여명의 순교사적들이 자세히 기록되었다.

그러나 그는 불행하게도 이 백서가 구베이 주교에게 전달되기도 전에 체포되었고, 백서도 압수되어 황사영은 물론 그를 숨겨 주었던 김귀동과 함께 많은 신자들이 죽음을 당했거나 유배되었다. 그의 백서에는 한국교회 초기 역사와 신자들의 삶, 특히 30여명 신자들의 순교적 삶의 모습과 순교사실이 담겨 있다. 또한 당시 정치적이고 사상적인 내용도 밝혀져 있다. 현재 백서 원본은 교황청 민속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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