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계약서 쓰기 전에 당신이 해야 할 일
안일했다. 계약서를 쓰기 전에 모르면 이해될 때까지 물어보고 따져야 한다는 것을 너무 늦게 알았다. 하지만 내게는 너무 낯선 전문영역일 때 뭘 물어야 할지조차 모를 때가 있다. 한없이 작아져서 전문적인 기술과 지식으로 무장한 사람 앞에 무조건적인 신뢰와 기대를 하게 되지 않던가? 변명의 여지가 없다. 위로가 되지 않는다. 그냥 바보 같다.
B누수탐지업체로부터 메일이 왔다. 법률소견서라는 타이틀로 H법무법인 직인이 찍혀 있었다. 내용은 낯선 언어들로 이해가 쉽게 되지 않았다. 그치지 않는 기침과 끊임없이 이어지는 일들로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깊은 밤 조용한 시간이 되어서야 정신을 차리고 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사실 내용을 확인하고 그 내용이 정확하게 무슨 뜻인지 이해하는 데는 여러 날이 걸렸다.
도급계약서는 뭐고
공사는 총 3차례 이루어졌다. 1차 누수공사를 맡았던 B누수탐지업체로부터 하자보수를 해줄 수 없다는 내용증명을 받은 것이 8월 5일이었다. 계속되는 누수 피해로 더 이상 미룰 수 없어 8월 8일 다른 누수업체(이후 C업체)에 누수탐지를 의뢰해야 했다. 드디어 누수가 잡혔다!
C업체의 누수소견서(수리업체 작성)에는 아래와 같이 적혀 있다.
< 진단 빛 소견 >
-가스 탐지 및 압력 검사 결과 온수 배관 노후로 인한 배관 불량 확인.
-씽크대 바닥 굴착, 배관 보수 작업 후 미장 마감함.
C업체는 누수탐지 후 씽크대를 들어내지 않는 방법을 안내하고 탐지를 포함한 공사비에 대한 견적을 얼마가 나오는지 알렸다. 이후 공사를 진행하면서 누수가 난 곳을 직접 확인시켜 주고 근거 자료를 영상으로 남겼다. 필자는 공사 과정에서 의심나는 부분마다 물었다.
C업체로부터는 총 3부의 서류를 받았다. 누수소견서, 견적서 그리고 공사 후 시공확인서였다.
C업체에 공사를 맡기면서 새로 알게 된 것이 있었다.
첫째, 누수탐지는 열해상카메라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둘째, B업체가 발행한 도급계약서는 누수탐지 소견이 빠진 계약서였다는 사실이었다.
B업체에서는 누수탐지 기기인 가스 및 압력을 이용한 검사 기기를 사용하지 않았다. 열해상카메라로만 누수탐지를 할 수 없는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또 하나는 누수탐지 공사 계약서에는 반드시 누수탐지와 누수탐지 소견이 들어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B업체에서 제시한 도급계약서는 누수탐지에 대한 소견이 들어 있지 않았다.
다음은 B업체가 작성한 도급계약서의 내용이다. 전체 내용 중 도급계약의 범위 부분을 발췌했다.
< 도급계약의 당사자 및 계약의 범위 >
-나동 204호 부동산등기부 소유자 또는 소유자의 가족
-나동 204호 주방 싱크대 탈착 이후 50mm PVC 배관 교체작업
-나동 204호 주방 옆 베란다 세탁실 쪽 바닥굴착 이후 방수작업
B업체 대표는 상수도 배관 문제는 도급계약서에 없으니 하자보수 대상이 아니라고 했다. 필자는 맨처음 의뢰할 때 통화에서 누수문제로 의뢰한다는 점을 밝혔고 B업체 대표는 누수탐지를 반드시 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누수탐지를 약속했다.(녹취록이 있다)
공사 전 민원 발생 방지를 위해 B업체가 작성한 공사 안내문에도 ‘긴급누수공사안내문’으로 누수공사임을 밝혔다.
적절한 비유가 될지 모르겠다. 배가 아파서 병원에 갔다고 하자. 신장(콩팥)에 이상이 있다고 해 수술을 했는데 아픈 부위 통증이 멈추지 않았다. 나중에 응급실에 다시 실려가 알고 보니 맹장이 터진 것이어서 수술을 해서 겨우 낫다고 하자. 너무 나간 비유인가?
그렇다면 누구의 잘못인가? 적절한 진료도 하지 않았으면서 신장 수술을 하기 전 수술동의서에 사인을 했으니 졸지에 콩팥을 떼인 것은 환자의 책임이란 말인가?
우리의 홍반장은 어디에
다음은 계속된 누수에 답을 하지 않는 B업체 대표에게 답답하여 질문을 정리해서 보낸 문자 내용이다.
204호 누수탐지했는지?
하수관 공사 전 균열과 하자가 있다는 하수관 증거 자료를 받을 수 있는지?
하수관 공사 중 수도관이 터졌다고 해서 계량기 옆 수도꼭지 잠근 적이 있는데 이것은 영향이(계속되는 누수)에 영향이 없는 건지?
누수가 계속되고 있음을 재차 알리며 위의 질문에 답해 줄 것을 요청했으나 B업체 대표는 휴가 중이니 담당직원과 통화하라고 전화번호를 알려 준 이후로 답이 없었다. 대표가 알려준 직원(공사작업자)과 통화해 하수관에 누수 원인이 있다는 근거 자료를 달라고 하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정작 자신은 직원도 아니고 하청업체도 아니며 B업체 대표가 하수관 교체하라고 해서 하수관 교체하러 왔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누가 뭐라 했나? 일을 받아서 했으면 하청업체 아닌가? 작업자와의 통화 내용도 이상했다. 25일, 연락이 안되니 하수관 공사하신 분과 통화한 내용 보낸다는 문자와 함께 카카오톡으로 통화한 내용을 보냈다.
“공사 이후에도 누수가 계속된다니 여러 날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담당 직원을 통해 원인을 알아보겠습니다.”
최소한 이러한 답변을 예상했다. 그러나 법적대응하겠단다! 통화 상대자에게 녹취자료 제3자 제공 동의를 받았냐는 질문과 함께 통화대상자(작업자)가 동의한 적인 없다고 하니, 자문변호사의 법률 검토 후 형사법적대응을 하겠다는 답변이 왔다.
대표와 연락이 안 되고 있어 관계자(작업자)와 통화한 내용을 전달한 것인데 법적대응이라니. 만약에 필자에게 위법의 소지가 있다면 처벌을 받겠다고 했다. 그건 그렇고 공사 이후 누수가 계속되는 것을 어떻게 할 것인지 알려 달라고 문자를 보냈다.
며칠 뒤 자문변호사의 법률자문의견서가 7월 25일 날짜가 찍혀 도착한 메일을 확인했다.
법률소견서에는 공사도급 계약의 범위를 확인하고 추가공사 대금의 입증책임이 의뢰인에게 있으며 도급계약 상 하자담보책임을 묻기 위한 요건 등이 적혀 있었다.
: 도급계약서 공사 범위를 확인하고 의뢰인(도급계약서에는 도급인이라고 되어 있음) 원도급계약의 변경으로 수급인은 도급인이 요구하는 추가, 변경 공사의 완성을 약정하고, 도급인은 추가, 변경 공사의 완성에 대해 보수를 지급할 것을 약정하여야 성립할 수 있습니다.
평소에 들어보지 못한 용어들이 난무하는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들여다 보고 또 들여다 보았다. 이젠 법까지 공부해야 할 판이다.
내가 이해한 것이 맞다면 도급계약서에 없는 내용은 공사할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원도급 계약서의 내용 이외의 것은 추가, 변경 공사가 되니 다시 계약서를 작성하고 추가 돈을 지불해야 공사가 가능하다는 내용이었다. 즉, 누수가 나든말든 공사를 해 줄 수 없다는 말이었다.
법률소견서에는 ‘도급인이 요구하는 추가공사’라는 항목이 조목조목 나열되어 있었다. 누수 원인이 밝혀지면 필요한 추가공사들인 모양이었다. 필자는 공사를 했는데 왜 누수가 계속되는지 밝혀 달라고 했지 추가, 변경 공사를 해달라고 언급한 적이 없다. 사실은 몰라서 요청할 수도 없었다.
누수가 처음인데
생전 태어나서 누수라는 일을 처음 겪었다. 필자가 무슨 재주로 누수의 원인을 짚어 공사를 의뢰를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어떻게 누수 원인이 하수관에 있다고 하수관을 교체해야 한다고 도급계약서를 작성할 수 있나. 지금 누수가 왜 계속되고 있는지도 모르는데 추가공사가 필요한 지 어떤 지도 모르는데, 추가공사에 어떤 공사가 필요한지 조목조목 요청할 수 있다는 말인가?
필자는 그저 누수가 났으니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밝혀 달라고 의뢰했던 것이다. 공사했음에도 누수가 계속되고 추가 누수까지 발생하니 왜 그런지 확인해 달라고 요청했던 것뿐이다.
몰라서 전문가라니 더 믿었다. 이웃에 피해를 최대한 줄이려고 애를 썼다.
만약 당신 집에 누수문제가 생긴다면
제일 먼저 당황하지 말고, 서두르지 말고 여러 업체에 견적을 받아보라고 권한다. 그 다음 받은 견적서를 꼼꼼하게 살펴 보기를 바란다.
견적서에 누수탐지에 대한 소견이 있는지, 누수탐지에 대한 오류로 공사가 잘못되었을 경우에 추가 하자보수 공사 항목이 들어있는지 반드시 확인해 보기를 바란다. 누수탐지에 대한 기기들이 제대로 구비된 업체인지 실제 탐지에 사용되는지도 살펴볼 일이다.
만약 주택을 소유하고 있다면 일상생활배상책임보험에 들어있는지 꼭 확인해 보기를 바란다. 일상생활배상책임보험은 따로 드는 것이 아니라 기존 보험에 특약으로 들어있다고 하니 잊지 말고 확인해 보고 가입하기를 권한다.
하자담보책임을 묻기 위한 입증책임이 도급인에게 있다니...
독자들은 필자처럼 어려운 말에 겁먹지 말고 아무리 급해도 따져 물어가며 일을 해결해 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다음편 예고-법알못의 슬기로운 주거생활 (3); 누가 이웃인가?
필자 프로필 : 2015년 『계간 예술가』에 시로 등단. 시집 《미안하다 산세베리아》, 《고양이시금치라고 불러》 가 있다. 인천시인협회, 인천작가회의, 새얼문학에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