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4대문 안에 아직도 이런 예스러운 마을이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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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4대문 안에 아직도 이런 예스러운 마을이 있다니!
  • 전갑남 객원기자
  • 승인 2024.09.12 06: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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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북동 북정마을... 도심 속 공기 좋고 정감이 남아있다
서울 성북동에 있는 북정마을,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흔히 달동네라 하면 도시나 그 주변 산등성이나 산비탈 높은 곳에 집이 빽빽하게 들어차 형편이 좀 넉넉지 못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동네를 말합니다. 성북동 북정마을은 서울 4대문 안에 남아있는 마지막 달동네로 60~70년대 정서가 남아있는 아름다운 마을로 소개됩니다.

 

북정마을 낡은 지붕. 낮은 담이 인상적이다.
북정마을 좁은 골목길.

 

무엇이 사람들이 북정마을을 찾게 하는 걸까? 만해 한용운 선사의 심우장을 구경하고 걸어서 마을 깊숙이 들어가 봅니다. 후미진 골목길을 조금 오르자 시인 김광섭 선생을 기리는 '성북동비둘기쉼터'가 보입니다.

 
쉼터 벽에 비둘기 조형물이 있고 운동기구와 쉴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었습니다. 공중전화박스에 '비둘기책방'이란 간판이 붙은 작은도서관이 인상적입니다. 문을 열고 시집 <성북동비둘기>를 꺼내 벽에 장식된 비둘기를 벗 삼아 읽어봅니다.
 
 
성북동비둘기쉼처에 있는 작은도서관, 전화박스에 이용하였다.
성북동비둘기쉼터. 비둘기 조형물과 운동기구가 있다.
김광섭 시인의 <성북동 비둘기>를 읽어본다.

 

<성북동비둘기>는 자연 파괴와 비인간화되어 가는 현대문명에 대한 비판을 비둘기를 통해 드러냈습니다. 사랑과 평화의 상징인 비둘기가 무분별한 개발로 갈 곳을 잃어 떠돌이가 된 것을 안타까워하는 것을 우회적으로 표현하였습니다.

성북동 비둘기 / 김광섭
 
성북동 산에 번지가 새로 생기면서
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
새벽부터 돌 깨는 산울림에 떨다가 가슴에 금이 갔다.
그래도 성북동 비둘기는 하느님의 광장 같은
새파란 아침 하늘에 성북동 주민에게
축복의 메시지나 전하듯 성북동 하늘을 한 바퀴 휘돈다.
성북동 메마른 골짜기에는 조용히 앉아
콩알 하나 찍어 먹을 널찍한 마당은커녕
가는 데마다 채석장 포성이 메아리쳐서 피난하듯 지붕에 올라앉아
아침 구공탄 굴뚝 연기에서 향수를 느끼다가
1번지 채석장에 도로 가서 금방 따낸 돌 온기에 입을 닦는다.
 
사람 가까이서 사람과 같이 사랑하고
사람과 같이 평화를 즐기던 사랑과 평화의 새 비둘기는
이제 산도 잃고 사람도 잃고
사랑과 평화의 사상까지 낳지 못하는 쫓기는 새가 되었다.
 
한양도성 아래 올망졸망한 마을이 있다
 
북정마을은 올망졸망 수백 가구가 서로 어깨를 맞대어 정답게 마을을 이룹니다. 집과 집 사이 사람 하나 지날 수 있는 꼬불꼬불 좁은 골목으로 이어집니다. 오래된 골목길과 낡은 집들은 옛 모습 그대로입니다.
 
북정마을 모습. 한양도성 아래 자리잡았다.
아기자기한 멋이 있는 북정마을.

 

북정마을은 조선시대 군사가 진을 치면서 북적북적거리는 소리, 또는 조정에 바치는 메주 쑬 때 북적북적 끓는 소리를 따서 '북적마을'이라 불렀는데, 나중 '북정마을'이 되었다 합니다.

 
일제강점기 때는 만해 한용운, 상허 이태준 등의 가난한 예술가들이 살고, 6.25한국전쟁 이후 피난민과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들이 한양도성 성곽 아래 판자촌을 이루고 살면서 마을이 점점 커졌다고 합니다. 서울로 몰려든 사람들이 거친 땅을 깎고 돋우어 저마다 집을 짓고 골목에 모여 이웃이 된 마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느 집 대문 앞 작은 화분에 예쁜 꽃이 피었습니다. 어떤 집은 문전옥답 부럽지 않은 화분 텃밭에서 고추 몇 포기와 야채가 자라고 있습니다. 정성 어린 손길이 느껴집니다.
 
북정마을에서는 어떤 사람들이 오손도손 살아갈까? 담장이 어깨높이 정도로 낮아서 걷다 보면 집안 살림살이가 들여다 보입니다. 낮은 담에서 이웃에 대한 믿음이 있는 것 같아요. 남들이 뭐라 한들 하늘 가까운 곳에 내 손으로 집 장만하고 정붙이고 사는 마을이라 생각됩니다. 지금 사는 내 집이 최고라 여기면서요.
 
 
공기 좋고 정 많은 사람이 산다
 
가파른 골목길 끝에 오르니 땀이 차고 숨이 가쁩니다. 가게에서 아이스크림 하나를 사 먹습니다. 주인에게 언덕길 오르내리는 일이 힘들겠다고 하자 의외의 말을 꺼냅니다.
 
"수십 년 다닌 길이라 익숙해져 괜찮아요. 그보단 여긴 공기 좋고 인심이 좋아 살기 편한걸요. 요즘은 젊은 친구들이 많이 들어와 개성 있는 가게들을 차려 새로운 변화도 일으키고요."
 
마을버스가 다니는 길을 따라 내려오자 마을쉼터로 보이는 데서 까르르 웃음꽃이 피었습니다. 아주머니 몇 분이 음식을 나눠 잡수고 계십니다. 삭막한 도회지에서 살가운 온정이 오가는 모습이 보기 좋아 보입니다. 좀처럼 보기 힘든 소박한 모임이 여기서는 일상처럼 즐기는 듯싶습니다.
 
 
마을쉼터에서 주민들이 음식을 나눠먹고 있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낡음에서도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세상의 속도와는 무관한 존재로 남아있는 북정마을. 600여 년 지난 세월과 시간이 멈춘 듯한 풍경이 함께 머무는 것 같은 착각이 듭니다.

 
북정마을은 2015년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구릉지 지형을 따라 구축된 한양도성과 일체화를 이룬 북정마을이 독특한 경관과 멋을 지니고 있어 이를 지키고 가꾸어야 할 유산이 된 것입니다. 현재 마을 공동체 활동을 통해서 지역 활성화를 꾀하고 있다고 합니다.
 
북정마을을 천천히 걸으면서 도심 속 시골 마을 같은 포근함이 느껴집니다. 비록 높은 빌딩 숲에 밀려 낡고 옹색해 보이지만, 아련한 옛 추억을 불러들이기에 충분합니다. 잊고 지낸 시간이 새록새록 피어나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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