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양산이 건강하게 키워내는 햇빛촌, 박촌역 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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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양산이 건강하게 키워내는 햇빛촌, 박촌역 일대
  • 유광식
  • 승인 2024.08.18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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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유람일기]
(134) 박촌역 일대 - 유광식/ 시각예술 작가

 

박촌 아주아파트(1991~) 전경, 2024ⓒ유광식
박촌 아주아파트(1991~) 전경, 2024ⓒ유광식

 

이번 여름을 겪는 게 쉽지 않다. 수돗물 손잡이를 냉수 방향으로 한껏 돌려 틀어도 미지근한 걸 보면 얼마나 뜨거운 이야기가 쏟아지고 있는지 느껴진다. 그저 건강에 유의하며 실외 활동을 줄이고 자주 휴식을 가지는 것밖에 도리가 없다. 파리 센강의 기억을 뒤로하고 다시금 일상으로 돌아왔다. 아직 여름휴가를 즐기는 사람도 많다. 동물들도 나름의 여름을 겪어내고 있고, 산과 바다가 선사하는 안도감이 있는 듯하다. 가까운 계양산 자락의 박촌동 일대를 부채질 하며 둘러보기로 한다.  

 

토란밭, 2024ⓒ유광식
토란밭, 2024ⓒ유광식

 

계양산은 천혜의 자연 에어컨이다. 아무리 더워도 숲과 개울이 주는 시원한 일상이 여름을 미워하지 않게끔 한다. 지난 1999년 가을에 개통한 인천지하철 1호선. 처음 두 달간 박촌역은 북부권의 종착역이었다. 이후 연장 역이 생기고서는 경유 역이 되었다. 박촌동은 지난 역사를 통해 박씨 집성촌으로 알려져 있다. 전국 곳곳에 집성촌이 많은데 이곳도 동네 이름이 밀양 박씨 마을이다. 제법 큰 묘역도 있고 몇몇은 거주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계양 신도시로 대표되는 인근 논에는 아파트 건설과 테크노 밸리(TV) 조성이 계획되어 있어, 전반적으로 에어컨 성능이 약화되어 가는 형국이 아닐 수 없다. 

 

골목길, 2024ⓒ유광식
골목길, 2024ⓒ유광식
빌라 계단 옆 호박과 들깨, 2024ⓒ유광식
빌라 계단 옆 호박과 들깨, 2024ⓒ유광식

 

마을 뒷산의 이름이 재밌다. 운연동에도 있는 ‘뒷동산’이다. 낮은 산이지만 계양산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곳인 듯싶다. 산 아래 소양昭陽공원이 있다. 소양공원 정자에는 주민 어르신들이 때마침 피서 중이었다. 워낙 불볕더위의 기세가 강한지라 그늘 없이는 버티기 어려운 상황이니 정자 밑은 딱 좋은 장소였다. 풀숲 사이사이 고양이들 또한 여름을 나고 있었고 푸른 토란잎은 더위에 축 처져 있다. 매미의 떼창 연주회가 열리는 가운데, 주민 관중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소양공원 입구, 2024ⓒ유광식
소양공원 입구, 2024ⓒ유광식
소양공원 전경, 2024ⓒ유광식
소양공원 전경, 2024ⓒ유광식

 

박촌동 성당이 신축 중이다. 바로 앞 문구점에서는 이때다 싶은 여름 채집 용품이 지나가는 아이들을 유혹한다. 방앗간도 보인다. 빌라 벽 맨드라미의 성장도 엿보고 빌라들 사이사이 연식을 달리하는 주택의 모습을 바라보며 박촌의 퍼즐을 맞춰보는 상상을 한다. 말복 더위인 여름 오후에 거니는 것 자체가 곤혹스러운 일이라 금세 몸이 땀으로 흥건해졌다. 한 바퀴 돌았다고 생각했을 때 박촌역이 나타났다. 특색은 없지만 마을의 자랑이 아닐 수 없는 교통의 중추다. 인근에는 박촌체육문화센터가 2년 전부터 운영 중이다. 

 

박촌동 성당 건설 현장(좌)과 여름 물품이 진열된 문구점(우), 2024ⓒ유광식
박촌동 성당 건설 현장(좌)과 여름 물품이 진열된 문구점(우), 2024ⓒ유광식
맨드라미가 자라는 주택, 2024ⓒ김주혜
맨드라미가 자라는 주택, 2024ⓒ김주혜

 

박촌역 출구 앞에는 농협 로컬푸드 직매장이 있다. 안 그래도 인근에는 농작물 재배 현장이 많다. 하천이 흐르고 평야가 있어 예로부터 농작물이 풍성하다. 직매장에 들러 시원한 바람도 쐴 겸 상품들을 구경했다. 요즘엔 가지와 호박(잎), 고구마 줄기 등이 여름 과일과 더불어 많이 진열된다. 야외 과일 진열대 앞에서 어르신 일행이 아이스크림콘을 먹고 계셨다. 길 건너엔 자동차 운전 전문학원이 하나 있다. 20년 전에 그곳에서 실기시험을 본 기억을 되살려 보았다. 딱히 연관 지을 이유가 강하진 않지만, 한 번 지나친 곳의 흔적이 사라지기보다는 반짝이니 신기할 노릇이다. 

 

박촌역 3번 출구와 건너편 자동차 운전 전문학원, 2024ⓒ유광식
박촌역 3번 출구와 건너편 자동차 운전 전문학원, 2024ⓒ유광식
여름 과일이 수 놓인 로컬푸드 직매장, 2024ⓒ김주혜
여름 과일이 수 놓인 로컬푸드 직매장, 2024ⓒ김주혜

 

잠시 카페에서 아이스티를 마시며 휴식을 취했다. 오후 땡볕에 몽롱도 했지만 언제 다시 찾아올까 싶은 생각을 다지며 박촌을 그리는 시원한 시간이었다. 옆 테이블의 아주머니 네 분 또한 속 시원한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계양구에는 농경지가 많다. 그냥 놔두기에는 어떤 이의 심기가 불편했던지 토지 개발의 현장으로 뒤바뀌어 가는 형국이다. 논에서는 더 이상의 쌀농사가 어렵고 주거지를 키우는 것에 전력을 다한다. 

 

주택가 골목(고추를 말리는 재주가 뛰어남), 2024ⓒ유광식
주택가 골목(고추를 말리는 재주가 뛰어남), 2024ⓒ유광식

 

다시 소양공원으로 돌아갈 때는 구름우산 덕에 햇볕을 피할 수 있었다. 동네의 향기가 진하게 풍겨 온다. 대체로 작물 성장을 위해 뿌린 계분의 냄새였는데, 박촌의 환경이 작물의 성장판이나 다름없어 보이는 대목이다. 박씨 일대의 마을은 이제 여러 계층과 문화권 사람들이 각자의 희망을 심고 가꾸는 볕이 무척 잘 드는 소양 땅, 우리 땅으로 거듭날 것 같다. 한편으로는 볕이 잘 들어 해바라기-씨 전입이 늘어날지 모를 일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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