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부두의 '찐역사', 1943년 개통된 항미단길(중구 항동1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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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부두의 '찐역사', 1943년 개통된 항미단길(중구 항동1가)
  • 허회숙 객원기자
  • 승인 2024.06.30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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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연안부두로 옮겨가기 전까지 어시장 '성시'
조은경 '도자기공방 민' 대표 "신구가 공존하는 세계적인 명소로 만들 것"

 

 

경인선 종착역이라는 안내에 따라 개찰구를 빠져나오며 마주하게되는 「인천역」은 어느 시골의 조그마한 간이 역사(驛舍)와도 같은 모습이다.

하얀 단층 건물로 된 인천역을 보노라면, 타임머신을 타고 60년 세월을 훌쩍 뛰어 넘어 1964년쯤으로 되돌아온 듯하다.

아담한 역사 밖 조그마한 광장 오른 편으로 몇 그루 서 있는 큰 나무 밑 그늘진 자리에는 아직 오전 중이었음에도 원근에서 오신듯한 어르신들과 누군가 일행을 기다리고 있는듯한 아주머니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있는 모습이 한가롭다.

 

 

눈을 돌리면 길 건너 웅장한 차이나타운 패루가 눈길을 끈다.

 

 

그 옆으로 이어지는 200m 남짓한 거리가 항미단(港美團)길이다.

항미단길 (인천역~해안동 로터리)

 

 

필자가 항미단길 이야기를 처음 들은 것은 2023년 9월 12일 인천문화재단에서 개최된 토론회에서였다.

그날의 토론회는 “인천만의 정체성과 차별성을 담은 축제와 상징물을 만들자”라는 주제였다.

토론자 중 한명이었던 조은경(도자기공방 민) 대표가 “최근 항미단길을 조성하여 쇠락해 가는 거리 살리기에 노력하고 있으며, 신구(新旧)가 공존하는 세계적인 명소를 만들어 가려고 한다”고 말하였다.

떨리는 목소리의 여릿한 모습과는 다르게 당찬 포부를 말하는 조 대표의 모습은 필자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 주어 그 후 항미단길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 길은 인천항 물류를 위해 1943년경에 개통되었다. 그 시절에는 자유공원에서 올림포스호텔이 있는 언덕까지 이어지는 웅봉산 자락이 있던 곳이다.

 

 

인천역에서 해안동으로 가려면 밴댕이골목 우측의 작은 고갯길을 넘어 한중문화관에 닿거나 철길을 가로질러 올림포스호텔과 8부두 사이를 지나 한국기독교100주년기념탑으로 이어지는 우회로를 이용해야 했다.

카페 '앵커1883' 자리(항동1가 1-10)는 1910년경까지 보세창고가 서 있었다. 1969년에 꽃게냉동 창고로 지금의 건물이 지어졌다. 옛날 왕실 석빙고를 만들던 방식 그대로 벽은 물론 바닥까지 70cm나 되는 두꺼운 쌀겨로 채워져 있다. 지금도 그 흔적이 카페 1층에 남아 있다.

 

 

앵커1883 앞 로터리는 1966년 ‘9.28 서울수복기념 제3회 국제마라톤대회’ 출발지였다. 선수들은 중구 해안동 로터리를 출발해 경인가도를 따라 서울 광화문까지 42.195km를 달렸다.

 

 

마라톤이 시작되던 해안동 로터리 화단에 피어있는 코스모스

                                                               

1974년 연안부두로 어시장이 옮겨가기 전까지 이곳 인천부두에는 서해안에서 걷어 올린 생선을 경매하는 수협 위탁판매장이 있었다. 어시장 좌판과 어물전 수십 곳이 성시를 이루었다. 수산물은 인천시장뿐 아니라 노량진 수산시장까지 팔려 나갔다. 서울을 오가던 ‘다라이’ 생선아줌마들은 1970년대 경인선 기차속의 진풍경을 만들었다.

1965년에 개업하여 2019년까지 인천 호텔의 상징과도 같았던 항미단길의 올림포스호텔은 인천에서 처음으로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건물이었다. 1967년부터는 우리나라 최초로 외국인 전용 카지노를 운영했다. 1970년대 초까지 호텔 바로 옆까지 바닷물이 들어온 올림포스 호텔은 그 시절, 우리나라 최고급 바다 전망 호텔이었다.

 

 

그렇게 번성하던 시절 자연스럽게 조성된 그물거리에는 배에서 쓰는 노·닻·키 등 기구를 파는 선구점, 일일이 손으로 바늘을 옮겨가며 짜던 그물가게 그리고 이들의 끼니를 책임졌던 밥집 등 20여곳이 성업을 이루었다. 80여년의 역사를 품고 있는 이 거리는 인천부두가 연안부두로 옮겨가면서 쇠락의 길로 들어섰다.

중구에서 초·중·고를 다니며 성장한 조은경 대표가 옛 추억과 향수가 어려 있는 이곳이 사람들의 왕래가 드물어진 한적하고 초라한 모습으로 변한 것에 안타까움을 느끼고 무작정 돌아와 자리를 잡은 것은 2018년 3월이었다.

 

 

기존의 터줏대감인 그물상회, 선구점, 유통상회, 주민들과 몇 분의 공예작가들이 다시 이곳을 가꾸어보자고 뜻을 함께하여 옛 추억과 예술이 공존하는 항미단길이 되살아나기 시작하였다. 

이곳의 장인들과 공방작가들에 의해 점차 이 거리가 새로운 명소로 알려지게 되면서 조금씩 활력을 찾기 시작하자 주민들은 뜻을 모아 이 거리를 항미단(港美團)길이라고 명명하였다(2021.5 커팅 식).

 

 

사라져가는 이 거리의 역사를 정리하자는 뜻이 모아져 2022년 7월 7일 항미단길 연대기가 작성되고, 인천in과 세계일보에도 기사가 실렸다.

항미단 길 연구팀은 인천도시역사관과 인하대학교와 연계하여 1년여의 자료수집과 연구 결과를 「인천 선구점 거리」라는 보고서로 발간했다(2023.8.11).

 

 

그 해 8월 19일에는 KBS ‘다큐 온’에 항미단길이 소개되었고, 11월 13일에는 채널 A에 '행복한 아침 항미단길'이 방영되었다.

 

 

조은경 대표가 주축이 되어 새롭게 가꾸어 다듬어가는 항미단길은 “혼자서 꾸는 꿈은 꿈일 뿐이지만 함께 꾸면 현실이 된다”는 것을 보여준 제물포 르네상스의 멋진 시작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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