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 남동구 운연동 일대 - 유광식/ 시각예술 작가
도망치듯 시간이 빠르다. 낮 기온은 무척 높아졌다. 반소매 옷차림이 전혀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어색한 것은 다른 데 있다. 최근 또 한 명의 전세사기 피해자가 생을 마감했다. 기사로 소식을 접하고는 먹먹함을 걷어내기가 쉽지 않았다.
전쟁의 화마를 끄는 소방서는 없는지 도저히 꺼지지 않는 전쟁 판국이다. 1년 365일이 파헤쳐보면 슬픔의 기념투성이다. 퍽! 하고 터지지는 않겠지만, 급작스러운 사건‧사고들이 부디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만의골에서 발원하는 운연천을 따라 뒷동산에 올랐다.
남동구의 동쪽에 운연동이 있다. 인천대공원 아래, 수인로가 관통하며 시흥과 맞붙어 있다. 그 중앙으로 운연천이 흐른다. 제2경인고속도로 남인천 요금소가 있으며, 그 위로 인천지하철 2호선 운연 종점역과 차량기지가 있다. 운연천은 4년 전 찾았을 때와 달리 하천 정비가 이뤄진 모양으로, 보행로 및 자전거 도로가 갖춰져 있었다. 운연역은 인근 서창지구와 연결되는 매사리고개 옆에 위치한다.
운연삼거리에서 하천을 따라 걸어 내려오면 운연역에 다다른다. 역전 운연공원에서 삼삼오오 쉬고 계시는 분이 많다. 역 승강장이 지하에 위치하는데, 전동차가 매소홀로 아래를 통과해 차량기지로 곧장 진입할 수 있는 점이 특색이다. 승객을 다 내려놓고는 굉음을 내며 홀로 깜깜한 동굴로 들어가는 뒷모습이 알게 모르게 짠하다.
운연동에는 연락산과 뒷동산(43.7m)이 있다. 음(≒운)실과 연락골의 앞 음을 따 운연동이 되었다. 뜻으로 보면 ‘구름 위의 향연’ 정도가 될까? 상서로운 기운이 흐르는지 마을에서는 매년 음력 7월 1일, 당제를 지내고 있다. 마을의 안녕과 번영을 기원하는 마을 도당제가 뒷동산에서 개최되고 있었던 것이다. 인근에는 농업 현장이 많다. 어느 집에는 옛 축사의 흔적도 남아 있어 예전에는 동네에서 소를 키웠음을 알 수 있었다. 음실마을은 이제 소규모 공장의 생산기지나 다름없다.
이전에 저렴한 창고를 찾아 이곳을 작업실로 이용하던 예술가도 있었다. 지금이야 인간의 음音이 아닌 기계음이 만연한 곳이 되어 건조함을 덜어내기 어렵게 되었다. 공장 사이사이로 오래된 집이 공장 건물과 대비를 이룬다. 집들의 향방을 알 수는 없고, 파꽃을 보며 크게 한 번 웃어 볼 따름이다.
뒷동산 둘레의 밭길을 오르고 걷는 마음이 가볍고 시원하다. 따듯하고 푸른 참나무 아래 졸졸 출렁이는 빛의 시냇가를 느끼니 옛 시절이 번뜩이기도 했다. 소생하는 모든 것들의 앞에서 바다보다 넓은 평화의 온기를 느끼게 됨을 말이다. 뒷동산이 파헤쳐지지 않고 꾸준하게 운연동 일대의 녹음 버튼이 되어 주면 좋을 것 같다.
공장들 사이로 순환54번 버스 기점이기도 한 운연경로당이 있다. 자동차와 기계의 데시벨이 높은 가운데, 옛 청년들이었을 어르신들의 모습과 이야기는 메아리가 없다. 그 대신 낮잠을 주무시는 모양으로, 경로당 앞 사륜 오토바이에 올려져 있는 수선화 한 다발에 온갖 상상을 하게 된다. 마을은 무척 해가 잘 드는 정남향이다. 무엇이든 잘 마를 것 같다는 생각에 빨래도 내어 오고, 마늘과 양파도 내어오고, 잠자던 동물이 기지개를 켜고, 김매기 하는 어르신의 허리가 더 굽는 구름 한 점 없는 오후의 풍경이 평화의 꿈을 꾸게 한다.
이름대로 간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본인의 성명을 바꾸는 사례도 최근 들어 많아졌다. 신분을 숨기기 위해 이름을 바꾸기도 한다. 일제 강점기에 많은 부락 명을 조합하면서 장소의 마음을 오롯이 알 수 없게 만든 것이 많다. 조금 헷갈리는 부분이지만, 앞동산이니 뒷동산이니 맛동산이니 하는 이름부터가 운연동으로 향하고 싶어지는 이유가 되어 주기도 한다. 한편 어느 고관대작의 토지가 있다는 이야기에, 마을의 안녕과 번영은 과연 어느 방향으로 기울지 염려도 된다. 비록 높은 산은 아니지만, 운연동 뒷동산에서 바라본 따스한 그림의 오후가 종점이 아닌 재차 출발점이 된 기분이다. 운연동 구름사다리로 5월, 평화에 올라 다수의 슬픔을 말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