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먼 라이브러리'가 필요한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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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 라이브러리'가 필요한 시대
  • 안태엽
  • 승인 2024.04.17 07: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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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과 나눔의 글마당]
안태엽 / 인천노인종합문화회관 소통의 글쓰기

 

얼마 전 덴마크에서 ‘휴먼 라이브러리‘라는 이벤트가 열렸다. 사회의 만연한 편견과 오만, 혐오의 해결이라는 취지로 열린 이벤트는 이제 미국 등 전세계 75개국으로 그 소식이 퍼지면서 크게 성공을 거두었다. ’휴먼 라이브러리‘는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빌려 인생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장소이다. 2000년 덴마크의 사회운동가 로니 에버겔이 뮤직 페스티벌에서 창안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람 도서관'에서는 생각과 신념이 다른 사람이 관심이 있는 주제에 대해 다른 누군가와 마주 앉아 가면을 벗어버리고, 차분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일방적인 소통만 가능한 책과는 달리 이 곳에서는 쌍방향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지식과 생각의 교환뿐 아니라 위로와 공감까지 나눌 수 있으니 이처럼 훌륭한 도서관이 또 어디 있겠는가.

 

덴마크 휴먼 라이브러리
덴마크 휴먼 라이브러리

 

필자는 세상을 살면서 책을 통해 배운 것도 많았지만 사람을 통해 배운 것도 많았다. 꽤 오랜 기간 영업을 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그 관계들을 소중히 하며 살아왔다. 기업인들, 직장 동료들, 학교 선후배, 친구들과 가족들... 이렇게 많은 관계 속에서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겉으로는 웃고 친절한 외향적인 성격 탓에 사교성이 좋은 사람이라는 소리도 들어왔다. 

요즘 지하철을 타면 열이면 열 모두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각자의 눈은 스마트폰에, 귀는 이어폰에 꽂혀 있어 수 많은 섬들이 가깝게 모여있는 듯하다. 아침에 눈을 뜨고, 잠을 자기 직전까지 사람들은 눈과 귀를 전자기기로 틀어막고 산다. 이제 사람들과 얼굴을 마주하는 정겨운 대화는 옛날 공중전화나 우체통처럼 사라져 갔다. 전자기기의 충전이 떨어지면 마치 친한 친구를 잃어버린 듯 불안해 한다.

우리는 이제 핸드폰 분실이나 충전을 못 하면 몹시 초조해하는 시대를 산다. 디지털 시대에 모든 지식과 정보의 입력을 핸드폰 하나로 해결하는 편리한 생활인이 되었지만, 그만큼 핸드폰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다. 그 만큼 사람과의 관계는 축소되고 변화해 가고 있다.

사람은 에너지가 고갈되면 무엇으로 충전을 하나? 성과주의 사회 분위기 속에서 일을 하다 보면 피로와 압박감으로 번 아웃이 되기도 한다. 사람의 에너지가 방전되는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럴 때 사람들은 사람으로 충전하였다. 그래서 수시로 사람 배터리가 필요했다. 상처도 사람에게 받지만 치유와 회복도 사람에게 받을 수 있었다.

관계 속에서 경험하는 좋은 감정들은 질 좋은 삶의 정신적인 자양분이 되었다. 지금은 어떠한가. 육체적인 삶은 풍요로워졌지만 정신적인 삶은 빈곤해졌다. 그야말로 풍요 속에 빈곤이다. 다시 만나 재충전될 수 있는 사람들이 멀어져 간다.

지금의 우리 '관계', 이대로 두어도 좋은가? 한국적 '휴먼 라이브러리'라도 대폭 확대되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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