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 추모공원 조속히 복원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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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 추모공원 조속히 복원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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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3.09.13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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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칼럼]
[여성칼럼] 박교연 / '페이지터너' 활동가
서울시가 5일 남산 위안부 추모공원 '기억의 터'의 임옥상 작품 2개를 철거했다.

 

서울시가 9월 5일 일본군 위안부 추모 공원 ‘기억의 터’에 있는 임옥상의 작품 2개를 철거했다. 임씨는 2013년 8월 강제추행을 저지른 혐의로 지난 6월 불구속 기소됐고, 1심에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판결이 나자마자 서울시는 추모 공원에 성추행 작가의 작품이 있는 것은 국민정서에 반하는 일이라며 급하게 철거를 단행했다. 하지만 ‘기억의 터’ 설립추진위원회는 이렇게 급하게 처리할 일이 아니라며 대안을 마련한 후에 철거할 것을 요구했다. 왜냐하면 기억의 터는 서울시가 조성한 공원이 아니라, 2만 여명의 각계각층의 시민이 모금으로 만든 장소라 시민들의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에 서울시는 지난달 초 시민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65%가 임씨의 작품에 대해 ‘철거해야한다’고 답했기에 충분히 시민의 의사를 반영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근거로 들은 논의가 얄팍한 것도 문제고, 작품적으로도 ‘대지의 눈’과 ‘세상의 배꼽’이 임옥상만의 작품은 아닌 것도 문제다. ‘세상의 배꼽’에는 여성주의 작가 윤석남의 큰 그림과 서명이 새겨있고, ‘대지의 눈’은 다섯 권의 증언록에서 발췌한 ‘할머니들의 증언’, 처절한 삶을 딛고 인권운동가로 거듭나신 피해자들의 명단, 김순덕 할머니의 작품 ‘끌려가는 소녀’가 새겨져 있다. 결국, 임옥상의 개인적인 과오 때문에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의 그림과 이름, ‘잊지 말아 달라’는 아픈 증언이 충분한 대안도 없이 부서졌다.

 

 

조지 오웰은 <1984>에서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과거를 지배한다”라고 말했다. 모든 권력은 지나간 과거사를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해석하기를 원한다. 그리고 그러한 역사 해석은 미래 권력을 보장하는 지름길이기도 하다. 최근 논란이 된 홍범도 장군 지우기에서도 위안부 추모 지우기와 똑같은 정권의 독립운동사 말살 정책이 시행되고 있다.

독립 운동사를 부정하는 게 중요한 이유는 친일파가 독립 이후 다시금 권력을 잡은 것이 반공정책 덕분이기 때문이다. 이승만 정권 이래 친일파는 기꺼이 독재 권력에 충성을 바침으로써 살아남는 길을 선택했다. 그러면서 반공은 대한민국 1순위 군사외교정책이 되었다. 1980년 광주 민주화운동은 그러한 생각에 균열을 내었으나, 2008년 이명박 정권 출범 이후 ‘뉴라이트’는 다시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다.

이명박 정권은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건국’ 원년으로 삼자는 뉴라이트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이명박 정권이 발간한 <건국 60년>이라는 홍보 책자에는 “임시정부는 자국의 영토를 확정하고 국민을 확보한 가운데 국제적 승인을 바탕을 둔 독립 국가를 대표한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을 건국한 공로는 1948년 8월 정부 수립에 참여했던 인물들의 공으로 돌리는 것이 마땅하다”라고 적혀 있다. 즉, 대한민국은 독립운동과는 무관한 건국 운동의 결과라는 반 헌법적 발상이 이명박 정권에 의해 공식화됐다.

광복절을 아예 건국절로 바꾸자고 하는 뉴라이트는, 1945년의 광복을 역사에서 지워버리고 그 자리에 1948년의 정부 수립 곧 친일파가 주도한 건국을 끼워 넣었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반공에서 찾기를 바라고 있다. 이승만 기념관의 건립도 그 일환이다. 홍범도 장군에게 ‘빨갱이’라는 낙인을 찍고, 위안부 할머니에게 100억을 받고 사과를 받아들이라고 종용하고, 위안부 추모를 이쯤하면 됐다고 없애는 것 모두 반공을 강화하기 위한 정책의 결과다.

2023년 3·1절 기념식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세계사의 변화에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 국권을 상실하고 고통받았던 우리의 과거를 되돌아봐야 한다”느니 “변화하는 세계사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미래를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다면 과거의 불행이 반복되게 될 것은 자명하다”고 말했다. 이는 일제강점기에 우리 민족이 겪은 고통은 자초한 것이며 불법 식민지배와 전쟁범죄 가해자에게는 책임이 없다는 말이다. 일제가 만들어낸 식민사관의 재현이었다. 3·1운동에 반대하던 이완용 등 친일파의 논리와도 똑같다.

하지만 우리의 아픈 과거는 이렇게 지워져서는 안 된다. 특히 위안부 문제는 국가문제를 넘어 여성혐오와 맞닿아있는 아주 중요한 문제다. <위안부는 여자다>의 저자 캐롤라인 노마는 “나는 위안소 제도의 심장은 민간 성착취라고 보며, 우리는 위안소 역사를 기억함으로써 위안소의 조상이자 후손인 평시 성노예제 해결로 한 발짝 더 나아가야만 한다”고 말했다. 여성학자 모리타 세이야 역시 “위안소는 사회적 위기나 전쟁처럼 특수한 시기라 ‘어쩔 수 없이’ 생겨난 것처럼 보이는 성폭력이 아니라, 남자들의 일상적인 성착취 습관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성폭력”이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일본군 위안부 추모 공원은 빨리 다시금 복원되어야한다. 캐롤라인 노마의 말처럼 “남성 지배 체제 하에서 여성이 남성에게 성적으로 사용되기 위해 동원되고 이용되며 버려지는 구조를 직시”하게 만드는 위안부 역사는, 민족적 정체성을 위해서도 여성 정체성을 위해서도 결코 잊혀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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