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느냐 사느냐'... 기후위기 속 위태로운 여성의 생존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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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느냐 사느냐'... 기후위기 속 위태로운 여성의 생존권
  • 박교연
  • 승인 2022.08.11 11: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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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칼럼] - 박교연 / '페이지터너' 활동가
기후재난시 여성 사망율이 남성보다 14배 높아
여성과 소녀를 기후위기 해결책 중심에 둬야
폭우와 침수로 일가족 3명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한 서울시 관악구 신림동의 반지하 주택

관측 이래 115년 만에 서울·인천·경기 등 중부지역에 하루 400㎜의 기록적인 폭우가 내렸다. 이준이 부산대 기후과학연구소 교수는 “이번 폭우가 지구온난화라는 단일 원인 때문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지구온난화가 심화될수록 극한 현상의 빈도와 강도가 증가할 확률이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기후변화는 미래의 이야기가 아닌 지금 우리가 감당해야 하는 것이 됐다”고 강조했다.

지구온난화는 모두가 힘을 모아 해결해야 하는 공동 과제다. 하지만 그 영향을 모두가 똑같이 나눠받는 건 아니다. 부국보다는 기반 시설이 부족한 빈국에, 남성에 비해 여전히 사회·경제적 약자인 여성에게 더 큰 피해가 돌아간다. 영화 ‘기생충’이 보여주듯이 재난은 아래로 갈수록 거칠게 흐른다. 위에서 톡톡 내리던 빗줄기는 아래로 갈수록 거센 물줄기가 되어 주인공의 반지하를, 그리고 현실의 반지하를 가득 메워버린다. 서울 관악구 신림동 반지하 주택 일가족 참사 이면엔 발달장애인 언니와 어린 자녀를 돌보는 하청 노동자의 삶이 있었다.

반지하 거주자 등 주거약자를 중심으로 큰 피해가 발생한 이번 폭우처럼 폭염도 사회적 약자를 먼저 덮친다. 한국환경정책평가 연구원이 발간한 ‘2020 폭염영향보고서’를 보면 2018년 기준 고소득층(건강보험료 상위 20%)의 온열질환 발병률은 1만명당 7.4명인 반면 저소득층에 해당하는 의료급여수급자는 21.2명이 온열질환을 앓았다. 약 3배에 이르는 수치다. 이영경 에너지정의행동 사무국장은 “이번 폭우는 기후위기가 얼마나 심각한지 보여주는 동시에 그에 따른 피해가 모두에게 동일하지 않다는 사실을 극명히 드러냈다”며 “기후재난이 거듭될수록 취약계층의 피해는 커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역사상 규모가 큰 기상재해가 대부분 지난 20년간 발생했으며, 최근 10년간 기상재해는 연간 7.4%씩 증가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세계 141개국에서 1981~2002년 사이에 발생한 태풍, 지진 등 재해에 대한 통계를 분석하여 여성과 어린이 사망자가 남성의 14배에 달한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문화권에서 여성은 아이와 노약자를 돌볼 의무가 있고, 피난에 필요한 적절한 정보와 교통, 은신처와 같은 수단을 소유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러기에 여성 혼자 가족을 책임져야 하는 경우 생존율이 매우 낮았다.

 

 피난에 필요한 정보와 교통, 은신처가 없는 여성들의 재해 사망률은 남성보다 훨신 높다.

실제로 1991년 방글라데시에 사이클론이 닥쳤을 때 비교적 건강한 20~44살 사이의 사망자가 남성은 1000명당 15명이었다면 여성은 71명이었다. 여성의 사망 비율이 5배나 높았다. 여성들은 수영을 배우지 못했고, 입고 있는 옷이 신속한 이동에 적합하지 않은데다가, 관습절차상 남성들의 보호를 받을 때까지 기다리다가 피난을 너무 늦게 떠났다. 이는 선진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2003년 유럽에서 폭염이 발생했을 때 여성사망률이 남성보다 75%나 높았다. 1995년 런던 폭염 때도 여성 사망률이 더 높았다. 왜냐하면 여성은 남성보다 가난하며, 심리적 박탈상태에 있고, 60세 이상의 경우 집안 온도를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남성보다 여성이 자연재해 사망률이 높은 데에는 여성이 감당해야 할 사회적 책임과 낮은 경제적 지위와 연관이 있다. 141개 국가에서 1981~2002년 사이에 발생한 자연재해에 의한 성별특성을 분석한 결과, 여성의 권익이 잘 보장될수록 성별사망률이 균일해졌다. 즉, 성별불평등이 재난상황에서 여성의 목숨을 앗아가고 있다. 이는 구조상황에서도 마찬가지다. 위기 상황에서 아이들과 여성을 먼저 구조되는 건 ‘타이타닉’에서나 가능한 일이고, 실제 현장에서는 완력이 모든 도덕과 질서를 앞지른다. 대부분의 남성이 여성보다 먼저 구조의 손길을 낚아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기후변화 대응 논의에서 성평등 문제는 항상 뒷전으로 밀려나 있다. 영국 더 타임스는 전 세계 기금 중 고작 0.01%만이 기후·여성 문제 관련 프로젝트에 사용되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2030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는 여성 청소년 교육권에 대한 투자 방안, 그것이 국가적 기후 대응 전략에 미치는 영향을 다루지 않는다”며 “기후변화를 교육 문제와 연관지어 언급한 나라는 10곳 미만”이라고 지적했다. 노벨수상자이자 파키스탄 여성교육 운동가인 유사프자이도 “모든 어린이가 교육받지 않으면 향후 수십 년간 회복력을 기대할 수 없다. 특히 소녀들에게 그렇다. 교육은 여성들이 기후위기 해결책을 개발하고 친환경 일자리를 확보하도록 해 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후재난 발생 시 여성 사망률이 남성보다 14배 높고, 기후 난민 80%가 여성이라는 유엔의 연구 결과를 우리는 결코 무시해서는 안 된다. 이 참혹한 숫자들은 전 세계 빈곤층 70%가 여성인 것과 무관하지 않다. 가난하기 때문에, 사회적 안전망이 부실하기 때문에, 교육 기회가 적기 때문에, 완력이 약하기 때문에, 노약자를 돌볼 의무가 있기 때문에, 가부장제 아래에 있기 때문에 여성은 죽고 있다. 이를 일깨우기 위해 배우 에마 톰슨은 더 타임스에 기고문을 보내 강력하게 호소했다. “여성과 소녀를 기후위기 해결책 중심에 놓아 달라. 여성과 소녀를 위해 그들이 직접 고안한 기후 행동이 필요하다.”

“이건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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