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크택스의 불공정함 - 여성이라 비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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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크택스의 불공정함 - 여성이라 비싸다?
  • 박교연
  • 승인 2021.11.10 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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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칼럼]
박교연 / '페이지 터너' 활동가

 

지난 10월에 한 여성은 미용실에서 여자라는 이유로 숏컷 비용을 더 지불했다며 커뮤니티에 불합리함을 성토하는 글을 올렸다. 그는 남동생과 함께 미용실에 가서 똑같은 머리 모양으로 컷트를 했지만 남동생과 치른 비용이 달랐다. 남동생은 2만원이었지만 그는 여성이란 이유로 2만 5천원을 지불해야했다. 업체에게 왜 같은 헤어컷인데 여자만 더 비싸냐고 이유를 물었지만, 업체는 “여성 커트는 원래 가격이 다르다”는 말만 쳇바퀴처럼 반복했다. 사건이 이슈가 되자 업체에서는 뒤늦게 차별을 인지했다며 시정하겠다고 말했다.

이처럼 ‘핑크택스’란, 동일한 상품일지라도 여성용이라는 이름이 붙으면 더 높은 가격을 지불해야 되는 현상을 일컫는다. 기업들이 여성용 제품에 주로 분홍색을 사용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미용실 가격뿐만 아니라 여성이 사용하는 다양한 제품군에서 ‘핑크택스’는 존재한다.

2015년 뉴욕시 소비자보호국은 24개의 온오프라인 소매점에서 판매하는 800개 제품을 조사했는데, 가장 가격차가 큰 품목은 샴푸나 컨디셔너, 데오도란트, 면도기 등의 미용용품으로 여성용이 남성용보다 평균 13% 더 비쌌다. 영국 언론들도 제조업체, 성능과 규격이 같은 제품을 조사했는데, 여성용 제품이 남성용보다 최대 2배까지 비싸게 팔렸다는 결과가 나왔다. 의류를 구입할 때도 여성들은 동일한 제품에 평균 8%의 웃돈을 낸다.

실제로 프랑스의 여성부 장관이었던 파스칼 부아스타르는 “분홍색이 사치의 색입니까”라는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이러다보니 비싼 여성용보다 남성용을 구매하라는 조언과 남성용 제품이 가성비가 더 낫다는 후기도 잇따르고 있다. 하지만 남성용으로 대체할 수 없는 물품도 있다. 대표적인 게 생리대다.

여성 신체구조상 반드시 써야만 하는 제품에 과세하는 건 그 자체로도 핑크택스다. 이런 논의가 활발해지자 주요 선진국들은 여성용품에 부과된 세금을 인하했다. 캐나다의 경우 2015년 위생패드와 탐폰에 붙던 5% 세금을 폐지했고, 미국은 10개주에서 6.85%의 여성용품 세금을 없앴다. 우리나라는 여성용품에 따로 과세하지 않지만, 생리대 가격은 OECD 중 개당 331원으로 다른 나라 평균가격의 2배 이상이다. 국민의 복지를 위해 라면의 물가상승을 제한하는 것처럼 생리대와 같은 필수품도 가격상한선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핑크택스는 단순히 제품에만 붙는 게 아니다. 혼자 사는 여성을 노리는 범죄가 잇따르면서 필수적으로 지출하게 된 방범비용도 핑크택스의 일종일 수 있다. 여성은 혼자 살 때 어려움 1순위로 성폭력과 범죄를 꼽은 것에 반해, 남성의 0,8%만이 이를 어려움으로 생각했다. 실제로 남성에 비해 여성의 주거 침입 피해 가능성은 약 11배나 높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이처럼 범죄취약성을 대비하고자 여성이 안전을 위해 지출하는 비용은 적지 않다. 경보기, CCTV, 창문잠금장치, 방범커버 등 각종 안전장치를 따로 구비하거나, 비싼 월세를 주더라도 안전장치가 마련된 장소에 거주한다.

개별로 보면 핑크택스가 별 문제가 될 것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누적된 비용 차이는 여성에게 평생 재정적 부담으로 작용하며 가처분 소득과 저축 등 경제적 활동에 악영향을 끼친다. 2015년 뉴욕시 소비자 보호국은 여성용이 남성용의 비슷한 품목보다 평균 7% 비싸다고 연구조사를 발표했다. 남녀임금격차가 아직도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더 많은 생활비용을 지출하는 건 필연적으로 여성의 가난을 야기한다.

이에 문제를 느낀 미국 뉴욕주에서는 올해 9월 30일에 핑크택스 금지법안을 발효했다. 쿠오모 뉴욕주지사가 해당 법 도입을 올해 여성 의제의 핵심 안건으로 내걸고, 지난 4월 2021 회계연도 예산안에서 법제화한지 6개월만이다. 쿠오모 주지사는 “핑크택스를 폐지함으로써 여성과 소녀는 더 이상 유해하고 불공정한 가격차별을 받지 않게 됐다”고 말하며, “성별에 기반한 가격정책을 없애는 것은 여성의 재정적 성공을 보장하고 불필요한 장벽을 무너뜨리는 일”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2018년 한 해 동안 여성들은 이미 온라인에서 ‘여성소비총파업’으로 핑크택스를 고발한 적이 있다. 익명의 여성 소비자들은 매월 첫 번째 일요일마다 소비를 중단하며 기업들의 재무지표의 유의미한 결과를 만들려고 노력했다. 또한, 파업 바로 전날에는 ‘#38적금인증’ 운동도 함께 진행하여 여성을 가난하게 만드는 핑크택스를 거부하는 메시지도 보냈다. 하지만 아직 정부는 여성들의 메시지를 수신하지 않고 있다. 하루라도 빨리 여성의 생애 전반에 유해한 영향을 끼치는 핑크택스를 핵심 여성의제로 규정하는 날이 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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