숏컷 논란, 그리고 스포츠 속 성차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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숏컷 논란, 그리고 스포츠 속 성차별
  • 박교연
  • 승인 2021.09.0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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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칼럼] 박교연 / '페이지터너' 활동가

 

지난 7월 30일 안산 선수는 한국 하계올림픽 최초로 단일대회 3관왕을 차지하며 스포츠 역사를 새롭게 썼다. 하지만 기자회견에서 안산 선수를 기다리고 있었던 건 역사적인 기록에 대한 질문이 아닌 ‘숏컷 논란’이었다. 이미 안산 선수는 금메달 2관왕을 달성했을 때 본인의 SNS 계정에서 숏컷을 하는 이유에 대해 “그게 편하니까요”라고 답한 적이 있다. 하지만 질문은 질문으로 그치지 않았고, 온라인상에서는 안산 선수를 필두로 숏컷을 한 여성 전반에 대한 비난이 확산됐다.

여성에게 특정 헤어스타일을 강요하는 게 황당하지만, “숏컷하면 높은 확률로 페미니스트다. 따라서 숏커트한 여성은 걸러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직까지 남초사이트를 중심으로 통용되고 있다. 이에 대한 반발로 트위터에서는 ‘#여성_숏컷_캠페인’ 해시태그 운동이 등장했고, 7월 25일 캠페인 운동이 시작한지 반나절 만에 6천개 이상의 트윗이 올라왔다. 아직도 많은 트위터 이용자들은 숏컷 지지선언과 함께 자신의 숏컷 사진을 덧붙이며 호응하고 있다.

칼럼리스트 위근우는 이번 숏컷 논란에 대해 “아무리 혐오 정서라도 어느 정도 볼륨이 있는 목소리는 공론장에서 귀 기울이고 논의해볼 필요가 있다고 안일한 소리를 하던 사람들” 덕분이라는 평을 남겼다. 덧붙여 GS25 사건을 언급하며 ”답해줘선 안 될 일에 답하고 사과한 탓에 뭐가 됐든 자기네 말을 들어줄 거란 효능감에 취한 혐오주의자들이 지금 여기까지 왔다”며, 이것이 “올림픽 영웅에게 저런 말도 안 되는 여성혐오 테러로까지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영국 BBC도 8월 9일 ‘숏컷 논란’이 GS25의 ‘손가락 논란’과 연결점이 있다고 보도했다. BBC는 기업의 공개 사과 때문에 배후에 있던 이들이 대담해져 공세가 숏컷 논란으로까지 확산했다고 진단했다. 또한, BBC는 이번 논쟁에 가세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젊은 남성이지만, 나이든 남성과 일부 여성도 포함돼 있다면서 이들은 여성의 성공이 남성의 희생을 바탕으로 이뤄졌다는 신조를 지키고 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이들 주장과 다르게 BBC는 한국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가 임금불평등이라고 평가했다. 현재 한국의 여성임금은 남성의 63%에 불과하고, 선진국 중 성별에 따른 임금격차가 가장 크다.

8월 12일 방송된 KBS <다큐멘터리 국가대표>는 스포츠 판도를 바꾼 여성 스포츠 선수 6명을 다뤘다. 도쿄올림픽이 끝난 후 방영된 방송은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달성했으며, 스포츠 속 성차별에 대해 의미 있는 질문을 던졌다. <국가대표>는 2020년 대한체육회에 등록된 체육 지도자 성별을 인용한다. 남자 2만2213명, 여자 4386명. “여자 핸드볼이 메달을 더 많이 땄는데, 여자 지도자는 없나요?”라는 질문에 핸드볼 국가대표 김온아 선수는 자신도 같은 의문을 갖고 있다고 답한다. “지금 핸드볼 실업팀에서는 남자 선생님들이 대부분이고, 여성 지도자의 길이 좁아요. ‘왜 메달리스트 언니들이 지도를 안 할까? 자리가 없는 걸까?’라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차이가 나는 건 지도자 수만이 아니다. 같은 종목에서 똑같이 활약을 해도 대부분의 여자 선수들은 남자 선수들보다 더 적은 연봉과 지원을 받는다. 한국 골프를 상징하는 박세리 국가대표팀 감독은 골프투어 상금의 남녀격차를 꼬집었고, 김연경 선수는 남자 선수들에겐 꾸준히 인상되었던 샐러리캡이 여자 선수들에게만 동결된다고 말했다. 이런 구조적이고 조직적인 차별의 뿌리에는 ‘선수’이기 전에 ‘여자’로 바라보는 시선이 있다.

<국가대표>는 2016년 리우올림픽 중계 영상을 인용한다. 결혼과 비슷한 시기에 성적이 향상된 수영선수의 플레이를 보며, 해설진은 “코치인 남편과의 사랑의 힘”이 아니겠냐는 말을 서슴없이 한다. 선수의 피나는 노력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모든 건 남성 조력자가 도운 결과라고 해설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건 비단 해설만의 문제가 아니다.

공식적인 스포츠 단체조차 성차별이 정당하다는 입장문을 거침없이 발표한다. 2015, 2019월드컵에서 연이어 우승한 미국 여자축구 대표 선수들은 성별 임금격차에 따른 손해배상액 6천600만 달러(804억 원)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2020년 6월에 미 법원은 소송을 기각했으며, 뒤이어 미국축구연맹은 남녀대표팀의 임금 격차는 “성차별이 아닌 과학”이라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남녀 대표선수에게 요구되는 신체적, 기술적 역량의 격차가 크고 시장 규모 면에서 본질적으로 다르기에 임금격차는 정당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반대의 경우에는 결코 적용되지 않는다. <국가대표> 속 스포츠 선수들이 증언했듯이 여자 스포츠팀이 남자 스포츠팀에 비해 압도적으로 좋은 성적을 거두고, 더 많은 관객유치에 성공해도 임금 역차별은 발생하지 않는다. 스포츠계 입지적 인물인 김연경도, 박세리도 모두 남자 선수보다 낮은 연봉과 대우를 받았다. 그리고 이런 임금차별은 선수들의 사기와 투지를 깎아먹는다. 2005년 윔블던 여자 단식에서 우승했던 비너스 윌리엄스는 한 인터뷰에서 “윔블던은 내게 ‘넌 그저 2위 챔피언일 뿐이다’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다행히 2007년을 마지막으로 윔블던은 남녀상금을 차별 없이 지급하기 시작했다. 물론 이것은 거저 주어진 것이 아닌 선수들의 피나는 투쟁의 결과물이었다. 1970년 테니스 슈퍼스타였던 빌리 진 킹은 처음으로 스포스 속 임금차별에 대해 입을 열었다. 이탈리아에서 열린 대회에서 그가 받은 상금은 고작해야 600달러였지만, 같은 대회의 남자 단식 우승자는 3,500달러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는 “모두들 여자가 단순히 케이크 부스러기 정도 되어야 좋다고 생각지만, 나는 여자들이 케이크 가장 위에 올라간 체리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성차별 파문은 테니스 역사상 가장 유명한 ‘성 대결’로 이어졌다. 1973년 윔블던에서 빌리 진 킹과 바비 릭스의 ‘성 대결’이 펼쳐졌고, 빌리 진 킹은 바비 릭스를 세트스코어 2-1로 완파하고 남자 단식 선수의 우승 상금을 거머쥐었다. 당시 남자 선수의 우승 상금이 여성 선수보다 8배 가까이 높았기에 더욱 갚진 승리였다. 하지만 모든 종목의 임금차별을 테니스처럼 ‘성 대결’로 해결할 수는 없는 일이다. 또한, 스포츠선수를 독려하는 상금과 지원이 성적에 따라 차등 분배되는 것도 옳은 방향이 아니다.

스포츠는 세간의 시선과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도전의 연속이다. 매일매일 성실하게 묵묵하게 고된 연습을 해온 선수들의 멋진 퍼포먼스를 보며 대중은 삶에 대한 영감과 투지를 얻는다. 인류의 한계에 대한 도전에 성차별은 불필요하다. 더 이상 양궁 3관왕이라는 경이로운 성취를 거뒀음에도 머리 스타일을 근거로 온라인 폭력에 시달려야 했던 안산 선수와 같은 일이 벌어져서는 안 된다. 문제는 숏컷이 아니라 성차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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