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남성 표심을 잡기 위한 여성가족부 폐지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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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남성 표심을 잡기 위한 여성가족부 폐지 주장
  • 박교연
  • 승인 2021.07.14 0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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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칼럼] 박교연 / '페이지터너' 활동가

 

국민의 힘 이준석 당대표는 그동안 여성할당제를 폐지하자는 주장을 하는 등 페미니즘을 부정적으로 언급해오며, 반페미니즘 성향이 강한 2030 남성들에게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왔다. 이런 인물이 거대 야당을 대표하는 인물로 선정되자마자 여성가족부 폐지를 언급한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국민의 힘 대선출마를 선언한 유승민 전 의원 역시 여성가족부 폐지를 대선공약으로 내걸며, 그와 함께 제대군인보상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대놓고 반페미니즘적인 성향을 드러내는 거대 정당의 모습에 여성들은 허탈감을 내비쳤다. 왜냐하면, 이는 앞으로의 선거에서 보수정당이 중요하게 고려하는 게 여성이 아닌 남성의 민심이라는 걸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성별 갈등이 극대화되고 있는 요즘, 남성에 대한 역차별을 강조하는 전략은 실제로 남성의 시선을 끌기에 유효하다. 2030 남성들이 이용하는 대다수의 남초 커뮤니티에서는 이준석과 국민의 힘에 대해 찬양일색의 반응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지난 9~10일 전국 만 18세 이상 성인남녀 1,01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성가족부 폐지’에 관한 의견조사에서도 잘 드러난다. 조사 결과 응답자의 48.6%는 여가부 폐지가 “적절하다”고 답했고 39.8%는 “부적절하다”고 응답했다. 성별, 연령별, 지역별, 정치 성향별로 보면 남성(59.1%), 30대(60.5%), 대구·경북(53.1%), 보수성향(63.5%), 국민의 힘 지지층(71.0%)에서 여가부 폐지가 적절하다는 응답률이 높게 나타났다. 반면, 부적절하다는 응답은 여성(47.7%), 50대(44.2%), 광주·전라(53.4%), 진보성향(58.3%), 더불어민주당 지지층(60.3%)에서 많이 나왔다.

여성가족부 폐지를 표심을 얻기 위해 쉽게 논할 수 있는 건, 누적된 차별과 혐오가 어떻게 현재 작용하고 있는지 들여다보지 않기 때문이다. 여성할당제가 여성의 대표성을 확립하기 위해 법으로 마련한 몇 가지 사례에만 집착하다보면, 사회 전반에 적립된 차별을 무시한 채 외려 역차별만을 부르짖기 쉽다. 하지만 이는 결코 역차별이 아니다. 역차별이 얼마나 잘못된 용어인지는 미국의 소수집단 우대 정책법(Affirmative Action)의 시행과 폐지를 보며 알 수 있다.

1964년 린든 존슨 미국 대통령은 민권법에 서명했다. 민권법은 기념비적인 법안으로 인종, 민족, 종교, 출신 국가 그리고 여성을 차별하는 주요한 것들을 불법화시킨 법이다. 이 법은 인종차별이 공식적으로 불법이라고 선언한 법이며, 학교와 직장 그리고 편의시설에서의 인종 분리를 종식시킨 법이다. 처음에는 법을 강제하는데 부여된 공권력은 미약했지만, 이후 하위 법안을 마련하며 서서히 보강되었다. 하지만 이런 기념비적인 법안으로도 모든 차별이 철폐되진 않았다.

법이 생긴 후로 누구도 대놓고 차별할 자유를 주장하진 않았지만, 차별과 혐오는 관행이란 미명하에 꾸준히 자행되었다. 2012년에 시작된 ‘Black Lives Matter’ 운동은 만연한 인종차별에 저항하는 대표적인 운동이다. ‘BLM’은 2014년에 에릭 가너와 레이콴 맥도널드가 사망하며 불이 붙었는데, 그 동안 흑인이란 이유로 차별받던 사람들은 거리에 나와 행진하며 차별과 혐오에 대해 성토했다. 하지만 언론은 백인 경찰의 흑인 범죄자 과잉진압에 초점을 맞추기보단 당시 그 범죄자의 행동이 위협으로 오인 받을만한가 아닌가에만 초점을 맞췄고, 결국 몇몇 개인의 문제로 귀결되어 인종차별 문제는 흐지부지되어 끝났다.

인종차별 문제는 외려 미시간주에서 새로운 국면을 맞았는데, 백인들이 민권법의 하위법인 소수집단 우대정책이 백인에게 심각한 역차별이라며 법에 계속 호소했기 때문이다. 특히 백인남성들의 불만은 미시간주에서 정치세력화가 되었고, 대법원까지 미시간주의 결정을 지지해달라고 전달되었다. 결국 2003년 인종 할당제를 합헌으로 결정했던 미 대법원은, 2014년 소수인종을 우대하는 입학 사정을 폐지한 미시간주의 결정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현재 미시간주는 소수인종이 가장 적은 입학률을 보이는 주가 되었다.

미시간주의 사례처럼 누적된 차별을 고려하지 않고, 몇몇 사례만을 거론하며 여성가족부의 존폐를 논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여성가족부는 정부 각 부처의 여성정책을 총괄 및 조정하는 기능을 하고, 전국적인 차원의 남녀차별 실태조사와 시정을 위한 행정업무를 맡는다. 물론 권한이 있을 뿐이지, 실제로 여가부는 각 부처의 여성관련 정책에 일일이 관여할 권한이 미비하고, 외려 한정된 예산으로 여러 부처의 여성 관련 업무를 떠맡는 경우가 왕왕 있다. 하지만 여가부가 있음으로 해서 각 부처는 적더라도 여성정책을 반드시 고려해야하고, 여가부와 소통하며 여성혐오에 대해 되짚게 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자서전에서 여가부를 신설하며, “역설이지만 여성부는 여성부가 없어지는 (평등한) 그날을 위해 일하는 부서였다”라고 말했다. 진정한 평등이 도래할 그날을 고대하며 신설한 부서가 아직 평등의 끝자락에도 도달하지 못했는데, 20년만에 양성평등으로 개명당하거나 폐지당할 위기에 놓인 걸 보면 기가 막힌다. 김 전 대통령은 생전에 “21세기는 여성의 세기라는 점을 인식하고 세계 일류국가로 나가기 위해 여성이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러기 위한 첫걸음 중 하나는 여성가족부이며, 여가부는 현재에도 만연한 남녀차별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역사성을 배제하고 성급히 폐지를 논하는 자체가, 남성의원이 손쉽게 여성가족부의 존폐를 언급하는 것 자체가 역설적으로 얼마나 남녀차별이 심각한 지를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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