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병인들 '인권'을 찾아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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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병인들 '인권'을 찾아주자!
  • 이혜정
  • 승인 2011.02.17 17: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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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동밥과 새우잠'에 각종 질병 … "보호자 없는 병원" 시행 시급


취재 : 이혜정 기자


"하루종일 24시간 환자 옆에 있다 보면 마음 편히 쉬지도 못하고, 잠도 제대로 잘 수 없어요. 더군다나 하루종일 환자  옆에 꼭 붙어 있어야 하니 하루 세끼 따뜻한 밥 먹는 건 더 어렵지요. 환자가 밥을 먹고 난 후 냉동밥을 끼니때마다 녹여 병원 한 구석에서 먹어야 하는 게 일상이에요" - 간병인 이용자(여. 60)씨

인천에서 8년째 간병인으로 일을 하고 있는 이용자씨는 하루 24시간 1주일에 꼬박 6일을 A병원에서 생활하고 있다. 그는 생계를 위해 병원에서 삶의 터전을 꾸릴 수밖에 없다고 한다.

이씨는 겨우 한 사람 누울 수 있는 보조침대에서 새우잠을 자고, 끼니는 집에서 싸온 냉동밥을 녹여 간신히 해결한다. 특히 밤새 잠을 못 자는 환자를 돌볼 때는 잠은 꿈도 못 꾼다.

또 탈의실이 없어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 입어야 한다. 병원에서 1주일간 생활하는 데 필요한 옷과 생필품 등은 보관할 곳이 없어 들고 다녀야 한다.

'근로환경'을 묻는 질문에 이씨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환자들 대부분이 새벽에 통증을 느끼는 경우가 많아 잠을 거의 못 잡니다. 자도 새우잠을 잘 수밖에 없지요. 우리 간병인들은 환자의 그림자처럼 생활을 해야 하다 보니 환자들이 일어나면 일어나야 합니다. 환자들이 잠들기 전까지는 잠을 못 자기 일쑤여서 늘 만성피로에 시달리지요."

"시간당 2천900원을 받고 하루 24시간 일하고 있는데, 하루 세 끼를 사먹으려면 적어도 월 36만원 정도는 본인이 부담을 해야 합니다. 쥐꼬리만한 월급에 식비까지 감당하는 게 부담돼 1주일치 밥을 비닐에 싸 냉동실에 넣었다가 꺼내 먹지요."

이 냉동밥마저 마음 편히 앉아서 먹을 곳이 없다. 환자 옆에서 '눈치밥'을 먹거나 병원 한 구석에 쪼그려 앉아 먹는다.

대부분의 간병인들이 하루종일 병원에 얽매여 있다 보니, 대체할 간병인이 없으면 1주일에 한 번도 쉬지 못할 때가 많다. 이씨는 올 설 명절을 병원에서 보냈다고 했다.


또 다른 병실에 교통사고로 전신마비가 된 환자를 돌보고 있는 간병인 김귀순(여. 60)씨 사정도 마찬가지다.

김씨의 하루는 오전 5시 30분에 시작된다. 김씨는 교통사고로 전신마비가 된 50대 환자를 돌보고 있다. 그는 일어나자마자 환자 기저귀를 갈고, 환자의 혈액순환을 돕기 위해  따뜻한 물수건으로 환자의 몸을 닦는다.

오전 7시30분께 환자의 배와 연결된 호수에 음식물(피딩, feeding)을 넣어 아침식사를 챙긴다. 환자를 씻기고 간단한 물리치료가 끝나면 9시가 넘어서 늦은 아침을 먹는다.

식사를 마치고 환자의 식기를 씻어 소독해 놓고, 환자를 또 씻기고 나면 곧 점심시간이다. 환자의 점심을 챙기고 휠체어에 환자를 옮겨 물리치료실로 향한다. 물리치료 후 환자를 병실에 옮겨놓은 뒤 늦은 점심을 먹고 환자를 돌보고 나면 오후 9시가 훌쩍 넘어간다. 이래저래 하다 보면 자정께야 간이침대에 겨우 눕는다. 

그는 하루종일 몸이 늘어진 환자를 돌보다 보면 과로, 불면증, 허리나 어깨 통증, 관절염 등으로 간병인들의 몸은 성한 곳이 없다고 말한다.

김씨는 "1주일에 한 번 집에 가서 쉬는 것 빼고 병원에서 한 달 내내 생활하다 보면, 온갖 병이 다 생긴다"면서 "허리, 어깨 통증은 기본이고, 피로가 겹쳐서인지 간이 나빠져 눈이 많이 나빠졌다"라고 말했다.

그는 음식물 투입(피딩, feeding)뿐만 아니라 하루에 5~6번씩 환자의 가래를 뽑아주기(석션;suction) 등 '의료행위'에 가까운 일까지 일상적으로 도맡아 하고 있다.

"남의 병을 보살펴주다가 과로사나 큰 병으로 고생하는 사람들도 허다합니다. 24시간 근무로 몸이 아파도 제때 치료도 받지 못하고, 4대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병원비 부담도 만만치 않지요." 김씨의 하소연이다.

간병인 처우개선 절실


전국공공서비스노동조합 의료연대소분과(이하 의료연대)와 부설기관인 병원노동자희망터(이하 희망터)가
지난 2009년9월~10월 간병인 205명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자료제공: 병원노동자희망터)

최근 핵가족화와 고령화  현상으로 '노인돌봄'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간병인들의 역할도 중시되고 있다. 하지만 그들에 대한 처우가 너무 열악해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전국공공서비스노동조합 의료연대소분과(이하 의료연대)와 부설기관인 병원노동자희망터가 지난 2009년 9월~10월까지 간병인 20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간병인들은 하루 24시간, 주 6일 연속근무를 하면서도 월평균 100만원 미만의 저임금에 시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식사시간과 휴식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있었다.

간병인들은 근무환경 개선을 위해 식사공간과 식사시간 (48%)을 가장 크게 요구했으며, 다음으로 탈의실(20.4%), 휴식시간 보장(16.4%), 휴게실(9.2%), 샤워실(2%) 등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간병인이 잠깐씩 쉬거나 병문안 등으로 환자가 잠깐 나가달라고 요청할 경우 잠시 이용할 공간이 병원 내에 없어 병원복도에서 서성이고(41.2%), 의자도 없는 배선실(25.7%)이나 보호자 휴게실(7%)에 잠시 머무는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화장실에서 쉰다(4.3%)는 응답도 있었다.

또 담요와 여벌 옷 등 간병인의 개인물품은 별도 공간이 없이 입원실 구석(65.8%)이나 환자침대 밑(3.5%)에 놓아두는 경우가 많았다.


배선실에서 식사하는 간병인 모습(왼쪽), 냉동실 가득 들어 있는 밥과 떡 등 식사(오른쪽).
자료제공 : 병원노동자희망터.

간병근무 중 부상을 당하거나 가장 아픈 부위는 허리 40.7%고, 팔과 팔목 27.6%, 어깨 22%, 무릎 4.1% 등의 순이었다. 

간병인의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병원과의 근로계약 체결(직접고용) 이 38.9%를 차지했고, 근로기준법 및 최저임금법 적용 26.1%, 산재보험 등 5대 보험 적용 25.5%, 3교대 등 교대근무 7.6% 등의 순으로 답했다.

취약계층 돌봄 서비스 사업을 펼치고 있는 사회적 기업인 (사)다사랑간병서비스 황헌주 대표는 "최근 고령화와 핵가족화 등으로 노인서비스 수요가 급증하고 있어 간병인의 필요성은 필연적"이라며 "한 병원에 1천명의 환자가 있다면 적어도 800여명의 간병인이 필요함에도, 이들은 제도 안에서 벗어나 근로자로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 간병 서비스제도를 그대로 둘 경우 간병인들의 열악한 처우도 개선할 수 없고, 환자나 보호자들의 경제적 부담도 줄일 수 없다"면서 "간병인 개별고용에 따른 환자들의 비용부담도 너무 크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치료비가 100만원선이라고 하면 간병비까지 200만원 이상 들 수도 있어 개인적 부담이 크다"며 "이로 인해 가족 간 갈등이 발생하거나 저소득층 환자들의 경우 경제적 부담으로 간병을 포기해 환자들이 방치되기도 한다"라고 덧붙였다.

'보호자 없는 병원' 시행 시급하다

황 대표는 간병인들의 처우를 개선하고 환자들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선 '사회적 일자리 예산을 투입한 지방정부형 보호자 없는 병원 시행'을 현실적인 대안으로 내놓았다

그는 "보호자 없는 병원은 24시간 1대1 간병형태가 아닌 6인실 기준으로 4조3교대 8시간 근무가 가능한 간병시스템으로 간병인들의 근로환경 개선과 보호자들의 간병부담을 줄일 수 있다"면서 "현재 서울, 경남, 충북, 광주 등에서 예비사회적기업이나 사회적일자리 예산을 지원받아 운영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황 대표는 "지난해 5월 후보시절 송영길 인천시장이 보호자 없는 병원 실현을 위한 공약협약을 맺은 뒤, 올초부터 인천의료원과 인천적십자병원 등 2곳에서 시범운행을 하기로 했으나 아직 실행되지 않고 있다"면서 공약 이행을 촉구했다.

이에 대해 인천시 관계자는 "적은 예산으로 효율적인 '보호자 없는 병원'을 시행하기 위해 어떤 방법으로 진행할 것인지 병원과 보건의료노조 등의 관계자들과 논의 중"이라며 "늦어도 이달 말이나 내달초부터는 시가 선정한 공공의료기관 2곳에서 본격적으로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보건의료노조 인천부천지역본부 유숙경 본부장은 "보호자 없는 병원을 시행할 때 최저임금과 근로기준법을 준수해 간병인이 노동 사각지대에서 벗어날 수 있는 복지제도로 자리잡아야 한다"면서 "간병인들의 처우개선을 통해 질 좋은 일자리로 정착해야 환자들에 대한 서비스 질도 향상될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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