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t Christmas' 여름날의 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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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t Christmas' 여름날의 산타
  • 서진완
  • 승인 2017.05.24 0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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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여행의 끝자락에서

서진완 인천대 교수(행정학)는 지난 2013년 1월 3일부터 2014년 1월 2일까지. 365일 간의 세계 일주를 하고 돌아왔다. 중·고등학생이던 두 아이와 아내까지. 온 가족이 함께 1년이란 시간을 붙어 있었다. '24시간 365일'을 꼬박 함께 여행하며 경험하고 느꼈던 감정들의 기록을 <인천in>의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아찔하고 안타까운 로드킬의 현장


아웃백을 달리는 내내 로드킬 당한 동물들을 마주하는건 곤혹스런 일 이었다. ⓒ 서진완


해가 지고 어둠이 내린 한참 후 마운틴 이사(Mt. Isa)에 도착했다. 시차가 있기 때문에 이곳 시간으로 9시가 넘었다. 오늘 하루 동안 1,200km를 달리면서 4차례 기름을 넣고, 주유비로 무려 $400이 넘는 돈을 지출했다. 하루 종일 넓은 광야를 일직선으로 가로질러 달렸다. 모기향을 피웠다. 아이들도 피곤했는지 바로 잠이 들었다. 

모기향 때문에 캠프밴 내의 모기는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해가 뜨고 캠핑장을 떠나는 사람들이 보인다. 밤새 보이지 않았던 날파리가 다시 나타났다. 얼굴을 따라 다니는 이곳 날파리는 정말 끈질기다. 게다가 아주 작은 모기까지 주변을 웽웽거린다. 모기향을 피워둔 차 안으로 다시 들어왔다. 사진을 정리하던 아내가 아이들 사진을 보여주었다. 이렇게 지나고 보면 남는 건 정말 사진뿐이다. 작은아이가 다이어트를 시작하기 전과 후 꽤 많은 변화가 생겼다. 얼굴에 많았던 여드름도 현격하게 줄어들었고, 허리선(?)도 살아난 것 같단다. 함께 웃는다. 

아웃백은 다음날도 계속되었다. 이번에도 아내에게 다음 주유소까지 운전대를 맡겼다. 어제 잠을 설친 까닭에 뒷좌석에서 큰아이 무릎을 베개 삼아 눈을 감았다. 주유소에 정차하여 기름을 넣고 아내의 운전대를 넘겨받았다. 지겨운 아웃백 길이 다시 시작되는 순간 도로에 엄청나게 많은 수의 캥거루 사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내는 계속 눈을 돌렸지만 계속되는 사체들 때문에 완전히 눈을 감지 않은 이상 피할 도리가 없다. 아내는 바깥 창을 내다보면서 애서 피했다. 

주변은 똑같은 풍경이 이어지고 도로 위에 죽어 있는 캥거루 때문에 조심하면서 운전했다. 아내는 아예 눈을 감았다. 윈톤(Winton)을 지나자 점점 캥거루들의 사체가 더 늘어났다. 검은 새들이 도로를 뒤덮고 도로 옆은 물론 도로 위에까지 쓰러진 사체들 때문에 운전하는 나로서도 사체를 피하느라 곤혹스럽다. 작은아이도 눈을 감게 했다. 

윈톤을 지나 롱리치(Longreach)에 이르는 길에서 나무 밑에서 쉬고 있는 캥거루를 직접 보았다. 아웃백에서 캥거루를 보지 못해 아쉬워했는데, 직접 볼 수 있어서 아내는 아이처럼 좋아했다. “저기에도 있어요!” 한번 눈에 들어오자, 이후부터는 나무그늘 밑에 쉬고 있는 캥거루들이 쉽게 눈에 들어왔다. 

캠프밴을 보고 달아나던 캥거루를 확인하고 속도를 낮추고 갓길에 섰다. 이어지는 비포장도로로 들어서자, 우리를 경계를 하던 캥거루들이 일제히 뛰기 시작했다. “엄마, 사진 말고 동영상으로 찍어요!” 몇 마리를 확인하고 들어왔는데 주변 숲속에 있던 수 십 마리가 한꺼번에 달아난다. 너무나 많은 캥거루를 보고 아내는 당황한 나머지 동영상도, 그렇다고 사진도 제대로 찍지 못했다. 다시 차를 돌려 나오면서 아내는 못내 아쉬워했다. 


아웃백을 지나는 동안 에뮤를 자주 마주쳤다. 운전을 더욱 조심해야 했다. ⓒ 서진완


롱리치에서 바칼딘(Barcaldine)에 이르는 100Km 정도의 구간은 캥거루가 아웃백에서 뛰어다니는 모습을 직접 볼 수 있다. 로드킬을 당한 수천마리의 캥거루 때문에 마음이 너무나 불편했는데, 하마터면 우리도 도로로 뛰어드는 캥거루 세 마리를 도로 위에서 동시에 칠 뻔한 아찔한 순간을 경험했다. 캥거루가 도로를 건너는 모습은 쉽게 목격된다. 게다가 중간 중간 에뮤(Emu)들이 자유롭게 차도 옆과 심지어 차도 위를 걸어 다니기 때문에 이 길을 운전할 때는 조심해야 한다. 

캠핑장에 도착해서 입구에 들어서자 여기서도 캥거루들이 잔디밭에 자유롭게 뛰놀고 있다. 오는 길에 "이렇게 캥거루들이 많은데, 캠핑장에도 있지 않을까?” 웃으면서 말을 했는데, 실제로 캠핑장에 캥거루들이 많다. 드디어 해가 지기 시작했다. 이곳 바칼딘은 아웃백이 끝나는 마지막 마을이라고 했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다. 넓은 잔디밭에 스프링클러가 열심히 물을 뿜고, 잔디밭 사이로 캥거루들이 뛰어 다닌다. 시원한 바람이 분다. 날파리는 여전히 귀찮게 하지만 그래도 이곳에서는 개체수가 훨씬 줄어 견딜만하다. 

어젯밤에도 그렇게 많이 보였던 캥거루가 아침에는 어디로 갔는지 모두 사라졌다. 바칼딘에서 아침을 맞았다. 바람은 훨씬 시원해졌다. 이곳만 해도 우리가 경험했던 아웃백과는 조금 다르다. 다시 도로를 나서자 어제까지 그렇게 많이 보았던 캥거루의 사체들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주변 경치가 아웃백의 모습과 조금씩 달라졌다. 낮은 산들과 들판, 그리고 푸른 나무들이 보였고, 차를 세우고 밖으로 나오자 부는 바람도 다르고, 무엇보다도 날파리가 없어서 사람이 살 것 같아 좋다. 


다 같이 자고 싶었는데, 나만 그런가?


록햄턴 캠핑장. 그리고 문제의 텐트 ⓒ 서진완

록햄턴(Rockhampton) 캠핑장에 도착했다. 짐을 풀고 나니, 해가 지기 시작했다. 캠핑장 주변에는 온갖 새들이 날아들면서 요란해졌다. 바람소리에 흔들리는 야자수 나무 그늘 밑은 시원하다. 나와 작은아이는 캠프밴 옆 잔디밭에 텐트를 쳤다. 잔디밭 위인데다 텐트바닥에 이불을 깔았더니 포근하다. 아이들과 이곳에서 게임을 할 수도 있고, 모기가 있더라도 텐트 안에서 모기장이 있어서 함께 편안하게 잘 수도 있다. 가족과 함께 텐트를 치고 캠핑을 해보고는 싶었는데, 아내는 추위를 많이 타는 체질인지라 텐트에서 자는 것을 불편해하여 한번도 못했다. 

한번 제안했다 거절당하고, 결국 나 혼자 텐트에서 자기로 했다. 밤 12시가 넘어 아내가 텐트 안으로 살며시 들어왔다. 침낭으로 들어오는 아내를 보면서 내 마음은 편하지 않았다. 억지로 내 고집만을 피운 것 같아서 미안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해보지도 않고 싫다고 하는 그런 성격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잠자지를 차 안으로 옮겼다. 혹시 자고 일어나서 추워서 힘들었다는 말을 듣는 것보다는 텐트에서 자는 것을 포기하는 편이 낫겠다 싶었기 때문이다. 아내는 내가 실망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 텅 빈 텐트를 바라보며 의자에 앉았다. 다시는 텐트를 치고 잘 수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물론 오죽 추위를 많이 타면 그렇게 싫어할까 하는 생각도 했다. 사실 나는 아이들에게 더 큰 실망을 했었다. 몇 번을 텐트에서 자자고 제안했는데, 이 녀석들은 모두 싫다며 거절했었다. 나 같으면 텐트에서 하루 정도 함께 자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고 할 것 같은데 말이다. 나만 그런가?

아이들을 깨웠다. 그리고 텐트를 접었다. 이 텐트는 누군가 이용할 수 있도록 어딘가에 두고 가기로 했다. 아내는 미안해 한다. 작은아이가 아빠 속도 모르고 기분 좋게 아침인사를 했다. “아빠, 안녕!” 이 녀석은 분위기를 바꾸는데 소질이 있다.  


여름날의 크리스마스
 


골드코스트 해변 ⓒ 서진완

아웃백에서 완전히 빠져나오자 기름값이 다시 저렴해졌다. 브리스베인(Brisbane)으로 가까워지자 도로도 넓어지고 차들도 많아졌다. 작은아이가 제안한대로 해변이 바로 옆에 위치해 있는 캠핑장에 도착했는데 이곳 선샤인 코스트(Sunshine Coast)와 골드 코스트(Gold Coast) 일대 전체가 크리스마스 연휴를 즐기려는 사람들로 캠핑장은 꽉 찼다. 캠핑장 비용 또한 어제 머물렀던 곳의 두 배에 해당하는 정도로 비쌌다. 

캠핑장에 겨우 한자리가 비어있는 것을 확인하였다. 비싸지만 이곳에 머무를 수 밖에 없다. 지금까지 텅 빈 캠핑장에서 여유롭게 부엌을 사용하고 산책도 즐겼는데, 오늘같이 가득 찬 캠핑장은 모든 것이 낯설다. 파도소리가 들리지만 그것보다도 옆 텐트와 캠프밴에서 떠드는 사람들의 소리가 더 크게 들린다. 부엌에도 사람들이 붐볐다. 

저녁을 먹고 해변으로 나갔다. 아내와 작은아이의 손을 잡고 캠핑장 옆길을 따라 걸었다. 구름에 가려있던 달이 나타나자 하얀 백사장이 드러나면서 짙은 바다가 선명하게 보인다. 파도가 부서지면서 하얀색 이를 드러내고 백사장까지 몰려오다 다시 밀려간다. 샌들을 벗었다. 파도가 발목을 감싸면서 따뜻한 느낌이 전해진다. 서울에는 눈이 내렸다고 하는데, 이곳에서는 이렇게 따뜻한 바닷물에 발을 담글 수 있다. 캠핑장에는 크리스마스 트리가 반짝이고 사람들의 떠들썩한 소리에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다음날 우리는 캠핑장을 떠났다. 브리스베인 시내를 관통해서 골드 코스트를 향해 달렸다. 토요일인지라 시내는 한산한 느낌마저 들고, 곳곳에 크리스마스 할인을 알리는 안내판들이 곳곳에 눈에 띄었다. 햇살이 뜨겁고 온도는 점차 높아 가는데 크리스마스 시즌이라는 것이 신기했다. 골드 코스트로 이어지는 길에 접어들자 차량이 늘어났다. 

이곳은 크리스마스 주말은 물론 연휴를 즐기려는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곳인지라, 아내와 아이들이 제안한대로 캠핑장을 먼저 찾아 자리를 차지해 두기로 했다. 작은아이가 선택한 캠핑장은 비싼 만큼 시설도 훌륭했다. 캠핑장에 이렇게 한 낮에 일찍 들어오기는 처음이다. 덕분에 더 여유가 생겼다. 


수영장이 있는 캠핑장 ⓒ 서진완

뜨거운 햇살을 가릴 수 있는 그늘아래에 의자를 놓고 앉았다. 푸른 잔디밭에 야자수와 유칼립투스나무들이 어울려 눈까지 시원해진다. 작은아이는 수영장 시설이 좋다며 좋아했다. 아이는 수영장이 있는 곳에 가면 항상 엄마 아빠와 함께 수영을 하고 싶어 했는데, 오늘은 그 소원을 들어줄 수 있을 만큼 여유가 있다. 수영장은 워터슬라이드와 스파까지 있어서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도 함께 놀 수 있다. 내가 수영장에 나타나자 작은아이가 가장 좋아했다. 워터슬라이드를 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내가 직접 타려고 하자 아이는 더 신이 났다. 

“아빠, 오늘 텐트를 치고 자면 어떨까요?” 엄마가 시켰는지 모르지만, 작은아이가 기습적으로 제안했다. 해가 지고, 작은아이랑 캠프밴 옆 잔디밭에 텐트를 쳤다. 큰아이에게 함께 자자고 했지만 이 녀석은 냉정하게 차안에서 자겠다고 했다. 엄마와 유진이가 뭔가 대화를 나눈 듯했지만 물어보지는 않았다. 작은아이는 이불까지 가져와서 바닥에 깔고 따뜻하게 덮을 수 있도록 했다. 물론 아내를 위해서 침낭까지 준비했다. 오늘따라 이곳에 모기가 많아서 텐트에서 자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렇게 잘 수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가격이 좀 비싸긴 했지만, 시설이 좋았던 캠핑장 ⓒ 서진완
 

밤이 깊어지면서 모두 잠자리에 들었는지 캠핑장 전체가 조용하다. 아내는 새벽녘에  춥다고 했다. 작은아이와 나는 전혀 추위를 느끼지 않고 오히려 따뜻하기만 했는데 말이다. 차 안으로 아내를 들여보내고, 작은아이와 나만 텐트에서 아침을 맞았다. 햇살이 비치면서 텐트 안이 더워졌다. 작은아이가 생리가 시작되었다면서 나에게 도움을 청했다. 오빠가 자고 있는 침구 아래에 작은아이 옷을 넣어둔 가방이 있기 때문에 차 안에 자고 있던 큰아이를 깨워야 했다. 물놀이를 좋아하는 작은아이를 위해 이곳에서 하루를 더 머물려고 했던 계획을 아쉽지만 취소했다. 나 또한 텐트에서 하루를 보낸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골드 코스트를 따라 이어지는 도로는 어느 곳에 차를 주차해도 멋진 해변과 연결된다. 모래는 부드럽고, 해변에는 선탠과 서핑을 하는 사람이 많이 보인다. 햇살이 강렬해서 바닷물이 더욱 시원하게 느껴진다. 발을 담구고 있는 동안에도 갑자기 높은 파도 때문에 무릎 위까지 물이 올라오기도 한다. 이렇게 바다에 오면 아내도 아이가 된다. 해변에는 샤워를 할 수 있는 시설이 있어서 부담 없이 물에 들어갈 수 있다. 

해변도로를 따라 이어진 가게마다 크리스마스트리를 볼 수 있다. 아이들은 이런 크리스마스를 뭐라고 불러야 하는지 물었다. “Hot Christmas!” 분명히 “White Christmas!”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곳에서 본 산타클로스도 빨간 모자에 털옷을 입고 있다. 이렇게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작은아이는 수영복을 입은 산타클로스를 볼 수 있는 우표가 있다고 했다. 산타클로스가 이곳에 올 때는 최소한 짧은 바지에 반팔 옷은 입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말 힘들지 싶다.

골드 코스트를 따라 팜비치에 있는 캠핑장에 도착했다. 이곳 역시 캠핑장 옆으로 강이 흐르고 해변으로 이어지는 위치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라고 했다. 역시 크리스마스 연휴 때문에 거의 빈공간이 없다. 전원을 연결할 수 없는 캠핑자리라도 빨리 선택해야만 했다. 나무 그늘아래 차를 주차하고 큰아이는 항상 그랬던 것처럼 침구를 정리하고 의자를 내려놓았다. 샤워를 하러 가는 길에 캠핑장 주변을 돌아보았다. 


팜비치의 캠핑장. 맨발로 자전거를 타는 아이도 보인다. ⓒ 서진완

이곳 사람들은 크리스마스 연휴를 보내기 위해 캠핑장을 많이 찾는다고 한다. 가족 전체가 대형텐트를 치고 연휴기간 내내 집처럼 이곳에서 머무른다. 그래서인지 텐트 안에는 집에서 사용하던 냉장고, 간이침대, TV, 심지어 세탁기까지 보인다. 집을 그대로 이곳에 옮겨두었다고 해야할 것 같다. 그늘 아래서 책을 읽는 사람, 환담을 즐기는 사람, 컴퓨터로 뭔가를 작업하는 사람, 그리고 수영을 갔다 온 사람까지 이곳 캠핑장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연휴를 즐긴다. “동양인은 우리밖에 없네요!” 잠시 잊었다. 모두 백인들 뿐이다.  

어둠이 짙어지고 아내와 산책을 나갔다. 강에서 바다로 이어지는 지점까지 걸었다. 모래가 너무나 깨끗해서 신발을 벗고 물에 들어갔다. 한밤중에 고기를 잡겠다고 나온 사람도 있다. 어둡지만 발밑에 물고기가 보일 정도로 물이 맑아 충분히 낚시를 할만 하다. 캠핑장에 설치된 크리스마스트리와 장식들이 밤이 되자 더욱 화려하게 반짝인다. 


여행의 마지막, D-10


캠핑장에서의 아침은 일찍 시작한다. ⓒ 서진완

캠핑장에서의 아침은 일찍 시작된다. 5시 이전에 주위가 밝아져 오래 잠을 잘 수가 없다. 수영, 조깅을 하거나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 아침 일찍 일어나 책을 읽는 사람들이 각자의 하루를 연다. 우리가 여행했던 후진국에서 보았던 환경과 이곳은 너무나 다르다. 같은 천막집이라도 이들과 그곳 사람들의 천막집은 모든 면에서 차이가 있다. 심지어 맨발로 자전거를 타는 이곳 아이들의 모습은 그곳에서 맨발로 다니던 아이와 비교조차 할 수 없다. 

아내와 커피를 함께 마시면서 똑같은 인간에게 주어진 삶의 환경이 이렇게 차이가 나는 것에 대해 얘기했다. 아이들에게 좋은 환경을 물려주고 싶은 것은 모든 부모들이 갖는 공통적으로 갖는 마음일 텐데, 여기처럼 자유로운 환경을 보면 자라난 우리 아이들에게도 이런 곳에서 자유롭게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아내와 얘기를 하는 사이에 밥이 다 되어 아이들을 깨웠다. 된장국으로 아침을 먹었다. 냄새가 나도 상관없는 야외인지라 이렇게 아침식사를 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이렇게 우리는 아침에 국을 끓이고 밥을 먹는데 익숙하다. 옆에서 지켜보던 이곳 사람들도 신기한 듯 쳐다본다. 우리는 이렇게 먹어야만 힘이 납니다!

퀸스랜드주를 벗어나 드디어 뉴 사우스 웨일즈(New South Wales)주로 다시 돌아왔다. 이곳 캠핑장에는 야자수 나무가 주변을 둘러싸고 있다. 바람이 불어 야자수 나뭇가지가 천천히 흔들린다. 햇살이 뜨겁지만 이렇게 바람이 불면 그늘 밑에서 앉아 책을 보는 것은 큰 즐거움이다. 캠핑장 사무실에 갔던 큰아이가 페이스북으로 메시지를 보냈다. “아빠, 로비로 오세요! 탁구 치게…” 


캐러반 앞에 화분과 장식을 두는 등 가정집처럼 꾸며놓은 사람들이 많다. ⓒ 서진완


이곳 캠핑장에는 캐러밴을 가정집처럼 꾸며놓아 반영구적으로 사는 집들이 많다. 캐러밴 앞에 화분을 심고 장식을 해두어, 아내는 한 집 한 집 부지런히 카메라에 담았다. 이곳 캐러밴에는 연세가 드신 분들도 많이 보였다. 살고 싶은 곳을 발견하면 그곳에 일정기간동안 지내다 또 다른 곳으로 옮겨서 살 수 있다는 것이 캐러밴의 장점이다. 

“우리도 이런 집에서 살면 어떨까요?” 아내는 그런 것도 재미있겠다 했다. 그런데 대화 중에 우리의 세계일주여행이 10일밖에 남지 않았다는 말이 나오자 아내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나는 그 이유를 잘 알고 있다. 여행이 얼마남지 않았다는 말은 곧 병원에 가야할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면 다시 받을 건강검진이 많이 두려운 모양이다. 항상 건강 때문에 걱정해야하는 아내는 가끔 이런 심리적인 압박을 받는다.  한 마디 한 마디 뱉는 말마다 걱정이 묻어나고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조용히 안아주었다. 지금부터는 시간이 조금 더 천천히 갔으면 좋겠다. 

<정리 = 이미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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