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사람들과 덜 나쁜 사람들의 세상? 그래도 믿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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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사람들과 덜 나쁜 사람들의 세상? 그래도 믿어보자...!
  • 정대민(인천미디어시민위원회 기획정책위원장)
  • 승인 2015.02.16 01: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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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쌈마이의 미디어로 세상헤집기> 9.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위해..."


배가 망망대해에 표류했다. 식량이 떨어져 모두가 굶어죽게 생겼다. 때마침 선원 한 명이 병에 걸렸다. 모두를 위해 병에 걸린 선원을 죽여 식량으로 썼다. 비인륜적일까?

어느 마을에 한 소년이 살았다. 그런데 그 소년이 행복하면 마을 전체가 불행해졌다. 마을사람들은 그 소년을 빛도 들지 않는 추운 방에 가둬버렸다. 음식도 주지 않아 소년은 병약해졌다. 비도덕적일까?

몇 년 전, 대한민국 부동의 베스트셀러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에 나오는 내용 중 일부이며 제레미 벤덤의 공리주의를 예시한 것이다. 17세기 영국 천재학자 벤덤의 공리주의는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수치로까지 정리할 정도로 디테일하지만 머리 뽀개질 정도로 디피컬트하다.

벤덤은 인간을 지배하는 것이 신도 아니요 권력도 아닌 고통과 쾌락이라고 정리했다. 당근 인간은 변태가 아니고서야 고통은 피하고 쾌락은 지속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도덕과 법의 기초는 많은 수의 사람들이 많은 양의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정해져야 한다고 또박또박 적시하며 행복계산법까지 출원했다. 첫째가 쾌락의 ‘강도’다. 두 번째가 ‘지속도’, 세 번째가 ‘확실성’, 네 번째가 ‘근접성’이다. 일 년 뒤 찾아올지 모를 하룻밤 만리장성보다 일주일 뒤 찾아오는 휴가의 며칠 데이트가 더 행복하다는 얘기다.

거기에 3개를 더 추가했다. 다섯 번째가 ‘다산성’, 여섯 번째가 ‘불순도’, 일곱 번째가 ‘타인에게 끼치는 영향’이다. 즉, 모임에 가입했는데 여성들이 많아 사귈 확률이 높으면 다산성이고, 퀸카를 꼬셔 사귀었는데 이런 젠장 유부녀에다 남편이 조폭이라면 불순도이고, 조폭남편에게 열라 줘터지는데 구경하는 사람들이 좋아라하면 타인에게 끼치는 영향이라는 말씀! 어렵지?

그만큼 다수의 인간들이 득실대는 이 사회는 단순할 수도 단순해질 수도 없는 모양이다. 하긴 개개인의 욕망으로 대립하고 충돌하는 인간사회에서 이렇게 쾌락과 고통의 수치를 계산해서라도 안정을 꾀하지 않는다면 아마 전쟁은 끊이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문득 이런 의문이 든다. 17세기 학자의 공리주의를 정리한 마이클 셀던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왜 뒤늦게 한국 땅에서 베스트셀러로 등극했을까? 우린 수도 없이 ‘정의’란 말을 들어왔는데 말이다. 군부정권 시절부터 수십 년 동안 관공서에 가면 사거리 펼쳐진 현수막을 보면 정치인이나 고위관료들이 TV에 나와 지겨울 정도로 떠들어대는 표어가 있다.

“정·의·사·회·구·현!”

그런데 왜 이제 와서 정의를 궁금해 하고 난리블루스탱고란 말인가? 혹... 우리 사회에는 정의가 애당초 없었는지 모른다. 인문학적인 정의, 본질적인 정의는 없고 눈 가리고 아웅하는 쇼·쇼·쇼 거짓정의가 판치고 있었을지 않을까?

요즘 공중파 방송에서 인기리 방영되다 곧 종영되거나 종영된 두 개의 드라마가 있다. 바로 <펀치>와 <힐러>다. <펀치>는 부조리했던 검사가 뇌종양 시한부를 선고받자 부조리한 법조권력에 맞서 남은 인생을 싸우는 브레인 드라마이고, <힐러>는 80년대 언론통폐합을 비판하며 해적방송을 했던 세대의 자식들이 이 사회 배후의 기득권과 싸우는 액션 드라마다.

이 두 드라마의 공통점은 힘을 가진 소수가 자신들만의 영역을 지키기 위해 그들만의 반전에 반전 레이스를 펼치며 벤덤의 ‘최대다수 최대행복’이 아닌 지들끼리의 경쟁 속에 ‘최대소수 최대행복’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또 눈여겨 볼 공통점은 과거 민주화운동권 출신이 권력 또는 기득권의 핵심으로 진입해 들어가 살아보니 세상은 변하지 않더라고 뻔뻔하게 말하며 그것이 정의라고 강요까지 한다. 괴물을 잡다가 괴물이 되어버린 것이다. 양쪽 다 괴물이면 국민들의 고통은 안 봐도 비디오겠지?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오해하지말자, 라고는 하지만 가끔 현재 시대상을 조금이나마 반영할 수도 있겠고, 미국에서 10만부 팔린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대한민국에서만이 유독 100만부나 팔려나간 이유와 묘하게 겹친다고 느끼는 건 나만의 느낌일까? 정의를 몰라서가 아니라 오랜 세월 실현되지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한 국민적 갈망이라고 말하면 오버일까?

“나쁜 사람과 덜 나쁜 사람. 내 앞의 선택은 지금도 똑같네.”

<펀치>에서 비리의 온상 검찰총장에 맞서온 개혁파 수장 법무부장관의 추악한 이면을 다시 한 번 확인한 온주완 분의 이호성 검사는 이런 대사를 뱉으면서도 법무부장관의 라인에서 이탈하지 않는다. 어차피 갈 데도 없는 현실적 판단이다.

“믿어보라고... 한번만 믿어보라고... 그럼 점점 더 많은 것을 믿을 수 있게 될 거라고...”

<힐러>에서 기득권의 희생양이었던 박민영 분의 채신영 기자는 이렇게 독백한다.

그래... 믿어보자. 많은 다수가 많은 걸 얻을 수 없어도 가능한 만큼의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그날을 위해 믿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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