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동구 논현동, '운동화빠는날' 주인장 형성관씨
운동화를 신고 하루를 보내는 사람이 많다. 직업상 하루종일 땀에 전 운동화를 신는 사람도 있고, 신발 벗을 일이 많지 않아 냄새 나는 신발을 신는 사람도 있다. 또 산으로 운동하러 다니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신발 관리를 어떻게 할까. 혹시 더럽고 냄새 난다고 신발장 구석에 처박아두진 않았을까. 솔로 문질러 빡빡 닦기도 귀찮고, 빨아도 금세 마르지 않아 고민하진 않을까. 이 고민을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아 남동구 논현동 휴먼시아 3단지 상가에 있는 ‘운동화빠는날’을 찾아가봤다. 주인장 형성관씨(54)는 배달할 운동화끈을 매고 있었다.
가게 한쪽에는 비닐에 넣어둔 운동화가 가지런히 놓여 있고, 한쪽에는 세탁을 마친 운동화들이 나란히 놓여 있다. 손님이 많냐고 물었다. 주인장은 전혀 그렇지 않다며 ‘때려치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5년 전에 가게를 시작했을 때는 깨끗하고 흠 없게 잘 한다고 소문이 났다. 그랬는데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6개월 동안 병원에 입원했다가 나오니 가게가 안 된다”고 말했다. 그가 가게 문을 닫은 사이에 아래층에 세탁소 겸 운동화 빠는 집이 생긴 게 결정적인 타격이었다. 그 가게는 1층이라 손님들이 다 거기서 멈추고 거기에 맡긴다. 2층까지 올라오는 사람들은 형씨가 깔끔하게 닦는 걸 아는 사람들이다.
상가 규모가 작은데 똑같은 가게가 두 군데나 되는 게 의아했다. 형씨는 그 부분만 생각하면 열이 치오른다. “그렇게 허가를 내주면 안 되는 거다. 두 군데 다 죽는다. 미용실은 세 군데나 된다. 장사 안 되는 걸 생각하면 속이 부글부글 끓는다.” 그래서 그는 마음을 다스리느라 요즘들어 부쩍 성당에 많이 간다.
운동화가 모아지면 어떻게 세탁할까. 형씨는 “다른 데는 운동화를 모아서 본사 공장으로 가져간다. 그렇게 하면 대량으로 하니까 지저분하다. 그게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은 우리한테 다시 온다”고 말했다. 세탁할 운동화가 있다는 전화가 오면 형씨는 두 켤레 이상이면 직접 가지러 간다.
요즘에는 하루에 서너 켤레 빤다. 한 켤레에 3천원이니까 하루 벌이가 만원 안팎이다. 웬만큼 잘 될 때는 하루에 40켤레씩 왔다. 그런데 아래층에 가게가 생기고 나서는 반씩 나눠먹는다. 화가 나다가도 오죽하면 여기로 왔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 형씨는 순간 마음이 너그러워진다. 아마 그 집도 여기에 들어온 걸 후회하고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가겟세도 못 내는 형편이 이어지면서 화가 완전히 사그라들진 않는다. 경기 상황이 안 좋은 것도 손님이 줄어든 데 한몫 한다.
전북 전주가 고향이라는 형씨. 그는 10년 전쯤 탈북 여성과 결혼했다. 그때 누군가 안동에서 운동화 세탁점을 하는데 무척 잘 된다는 정보를 주었다. 인천에 올라와 가게를 열었고, 초창기에는 힘이 들었지만, 그럭저럭 자리를 잡아갔다. 이런저런 이유로 아내와 헤어졌다. 그런 가운데 6개월 병원 입원은 치명적이었다. 사고 후유증으로 병원에 가는 바람에 손님이 다 떨어진 것이다. 한때 아주 잘 될 때는 70켤레까지 들어왔다며 아쉬워했다. 5년 동안 전화번호 저장한 게 200~300개 되는데 요샌 전화가 통 안 온다. 사람들이 먹고 살기가 힘드니까 운동화를 돈 주고 빨아 신지 않는다. 워낙 알뜰한 사람도 있고, 더러워도 아예 빨지 않는 사람도 제법 된다.
운동화 세탁 과정은 어떨까. “싼 운동화는 건들기만 해도 본드가 다 떨어진다. 본드 붙이는 것과 같이 간단한 건 직접 하는데, 시간이 더 든다. 본드 붙이는 건 서비스로 해주고 어려운 수선은 안 한다.” 그는 비싼 신발이 아무래도 튼튼하다고 말한다. 메이커 값을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싼 운동화는 본드도 떨어지고, 올도 나가고… 손볼 게 여러 군데다. 아무래도 일하는 입장에서는 비싼 게 손을 덜 가게 되기 때문이다.
형씨가 운동화 세탁점을 하면서 보니 운동화를 빨아 신는 사람이 많다. “요새 사람들이 운동화를 많이 신는다. 좋은 게 많이 나오니까, 어떤 건 구두보다 더 비싸다. 등산화를 비롯해 신발이란 신발은 다 한다. 부츠도 한다. 전국적으로 한 켤레 세탁요금은 인천은 4000원씩 받기로 했는데, 아래서 3천원으로 하는 바람에 따라 내렸다. 너 죽고 나 죽는 거다. 세탁소에서는 4000원에 받아서 운동화 세탁점에 3천원에 넘긴다. 우리는 안 한다.”
한때 운동화를 무척 귀하게 생각할 때가 있었다. 형씨는 운동화를 보면 그 사람이 깔끔한지 아닌지 귀하게 신는지 마구 신는지 알 수 있다. 신는 횟수나 일하는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깔끔한 사람들은 한 달에 두 번 정도 세탁해서 신는다. 그러면 3천원씩 해서 두 켤레 6천원이다. 요즘 웬만한 커피전문점에서 파는 커피 한 잔 값이랑 비슷하다. 어떤 사람은 몇 달에 한 번 빨기도 한다. 신발 빠는 데가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도 많다.
사람들은 계절별로 언제 운동화를 많이 빨까. 혹시 장마철이나 겨울 눈 올 때는 아닐까. 형씨는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여름에는 많지 않다. 샌들이나 슬리퍼를 많이 신기 때문이다. 운동화 맡기러 5월에 많이 온다. 봄꽃 나들이 다녀와서 맡긴다. 그때는 정말 바쁘다.”
운동화는 일일이 다 손으로 빨까. “세탁기에 들어갈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다. 싸구려는 세탁기에 넣으면 올도 터지고 본드도 다 일어난다. 절대 넣으면 안 된다. 세탁기에 한 번 돌린 건 손으로 다시 빤다. 세탁기 안에서 운동화 안쪽은 잘 안 빨린다. 깔창을 떼어냈다가 붙이면 저절로 붙는다.”
냄새 많이 나는 운동화도 많다. 그는 운동화를 보면서 심하다 싶다가도 더러우니까 빨겠지, 하는 생각으로 금세 고쳐먹는다. 운동화를 세탁기에 넣을 때는 운동화끈은 1/3만 남기고 넣는다. 세탁기에 넣고, 다시 꺼내서 손으로 다시 빤다. 건조기가 있으니까 하루면 나온다. 요즘엔 맡겨놓고 몇 달 뒤 생각날 때 오는 사람도 있다. 옛날처럼 운동화가 딱 하나가 아니고 여러 개니까 맡기고도 신경 안 쓰는 사람이 많다. 그는 가게 한쪽에 있는 신발을 가리키며 웃는다. “6개월이 넘었는데, 찾으러 오지 않는다. 1층에 가게가 있는데 2층까지 올라오겠냐. 운동화도 물 빠지는 건 골라서 손으로 빨아야 한다. 직접 빨다가 물 빠지면 가져오는 경우도 많다.”
가게를 운영하면서 그는 힘든 점은 거의 없다고 했다. 묵은때가 안 지워지는 운동화는 뭐라고 한소리 듣는다. 그럴 때는 다음에는 잘 빨아준다고 말한다. 묵은 때는 알콜 같은 걸로 지워주기도 한다. 고무장갑 끼고 하고, 반은 기계로 한다.
그는 나름 영업활동을 많이 했다. 한 달 전에 200~300만원을 들여 광고전단지를 뿌렸다. 그는 장사가 안 되니까 사는 게 사는 것같지 않다며 한숨을 쉬었다. 한창 잘 될 때는 노후 걱정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당장 가게 월세를 내기도 어렵다.
그는 부지런하다. “아침 8시에 문을 열고 밤 9시 반에 닫는다. 험한 일을 하는 사람은 운동화를 자주 빤다. 보통 분들은 4~5개월 신는다. 알뜰한 사람들은 자기가 직접 빨기도 한다. 그런데, 빨았다가 잘 마르질 않으니까 결국 맡긴다. 운동화 한 켤레 세탁료는 3천원, 명품 부츠는 2만원이다. 장마철이나 눈이 올 때는 사람이 그래도 있으니까, 올 겨울에는 장사가 잘 되면 좋겠다.”
*운동화 이야기를 들으러 갔다가 장사가 안 된다는 넋두리만 실컷 듣고 나왔다. 애초에 인터뷰를 요청한 콘셉트와는 거리가 좀 있는 듯했으나, 주인장의 넋두리가 요즘 사람들의 고민이라는 생각을 했다. 가게 월세를 내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사는 것같지 않다는 , 가게를 당장 때려치고 싶다는 그의 말이 내내 귓가를 맴돌았다. 창업하는 사람도 많고 폐업하는 사람도 많은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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