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살 먹은 구월동 회화나무, 하루가 힘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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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살 먹은 구월동 회화나무, 하루가 힘겹다
  • 김영숙 기자
  • 승인 2013.01.10 21:2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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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AG 선수촌 공사현장에서 '수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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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조상들은 회화나무를 무척 좋아했다. '학자수'라고도 불리우는 회화나무를 집안에 심으면 가문이 번창하고 자식이 출세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궁궐이나 오래된 기와집에서 주로 많이 심었다. 조선시대에는 이사 갈 때도 회화나무를 이사품목 0순위에 넣었을 정도다.
인천시 남동구 구월동에 500살 된 회화나무가 있다. 지금은 2014 인천아시아경기대회 선수촌 아파트 공사현장에 들어가 있어 맘대로 볼 수 없다. 회화나무는 밤낮으로 아파트 공사차량의 소음을 들으며 살고 있다. 500년 세월 동안 이토록 시끄럽고 험난한 때가 있었을까.

선수촌 공사는 2011년말부터 시작됐다. 벌써 1년 5개월가량 구월동 회화나무는 쉴 새 없이 공사현장 시끄러운 소리를 듣고 있다. 이곳이 녹지지대로 묶여 있을 때는 오가는 길이 비좁은 시골길가에 있어서 하루종일 고즈넉하고 조용했다. 논과 밭이 있었고, 논에는 개구리가 떠들썩하게 합창을 하고 백로가 맘껏 먹잇감을 찾던 곳이었다. 주변에는 영양탕, 백숙 등을 파는 음식점이 몇 군데 있었지만, 하루종일 오가는 차량은 그리 많지 않았다.

사람 사는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것이 얼마나 있을까. 녹지지대로 묶여 있던 곳에 대규모 아파트단지가 들어서는 일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문제는 그곳은 수많은 생명체가 살던 곳이었다는 점이다. 그들이 살아갈 곳이 없어졌거나 환경이 아주 나빠졌다는 것, 게다가 절대로 돌이킬 수 없다는 점이 안타깝다. 공사를 하면서 얼마나 많은 나무와 풀이 싹둑 베어져 나갔을까. 삶의 터전을 잃은 생명체들이 죽어서도 얼마나 방황하고 있을까. 높이 30미터, 가슴둘레 6미터인 500살 된 회화나무는 그나마 나이가 많아 살아남게 된 것을 다행이라고 여겨야 하나. 모든 것이 바뀐 환경에서 나무는 힘겹게 하루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구월아시아드선수촌 공사 조경팀 최용석 과장은 “회화나무의 생육환경을 좋게 하려고 진행 중이다. 나무를 중심으로 둔덕을 만들고, 그 아래에는 저류지를 만들어 비가 많이 올 때는 물이 자연스럽게 고이게 할 계획이다. 나무 바로 옆에는 임대아파트가 들어설 예정이어서 당분간 나무 주변에는 시공계획이 없다”며 “나무 옆으로 석축이 높게 있었기 때문에 나무가 뿌리를 제대로 내릴 수 없었다. 나무는 외과수술도 받은 상태였다. 나무는 생물이다. 공사하기 직전에 상태가 나빠서 죽을 수도 있는데, 만약 손을 대서 죽었다면 문제가 될 수도 있어 걱정이다. 나무가 잘 살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풍 팀장은 “회화나무는 화분에서 살았던 것과 다름없다. 공사를 하면서 석축을 없애고 뿌리가 제대로 숨을 쉴 수 있도록 했다, 나무 주변에 숨구멍을 만들어 나무가 건강하게 살 수 있도록 했다. 공사가 끝난 다음에는 멋진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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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아시아드선수촌 아파트에는 ‘구월 누리길 8경’이 조성된다. ‘구월 누리길 8경’은 구월동을 누비는 여덟 가지 경치라는 뜻으로, 단지에 숲속식물원, 억새밭, 구산단풍길, 구월폭포, 진달래동산, 만국광장, 은빛호수, 회화나무 동산을 만들 계획이다. 이 가운데 ‘회화나무 동산’이 바로 500살 된 회화나무를 중심으로 언덕을 만들어 시민에게 휴식처를 만들 계획이다.
 
지금은 회화나무가 있는 곳에서 바다가 보이지 않지만, 500년 전에는 바닷물이 이곳까지 들어왔다고 한다. 씨앗 하나가 바닷물을 타고 흘러들었다가 이곳에 뿌리를 내리고 살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래서 이곳에 살던 전재울 사람들은 회화나무를  ‘바다 해(海)’자를 써서 ‘해나무’라고도 불렀다. '바다나무', 얼마나 품이 넓은 나무인가.
 
500년 세월 동안 인천 사람들과 희노애락을 함께한 구월동 회화나무. 바닷물이 들어오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변화를 몸소 겪고 바라보았다. 세월이 흘러 지금은 6천 세대가 들어설 아파트 공사현장 한가운데 오롯이 서 있다. 온갖 소음과 먼지를 뒤집어 쓴 채 아무 말 없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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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sehd 2013-01-11 10:15:07
그러게요...말못한다고 나무들을 무심히 베어내는 것을 보면 참담한 맘까지 듭니다.
500년 이면 신령스럽기까지 하다 여겨집니다.
정말 그나마 아직 보존되고있는 것을 다행이라고 여겨야 할지...

미분양 아파트는 차고 넘치는데 저기는 그래도 아파트를 지어야만 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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