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 핀 밤꽃... 철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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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에 핀 밤꽃... 철없다
  • 전갑남 객원기자
  • 승인 2024.09.13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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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실을 앞둔 시기에 밤나무가 꽃이 피었다

요즈음 한낮의 열기는 한여름이나 다름없다. 절기상 백로(7)가 지났는데도 말이다.

백로(白露)24절기 중 열다섯 번째 절기로 흰 이슬이라는 뜻이다. 이맘때는 밤에 기온이 이슬점 이하로 내려가 풀이나 물체에 이슬이 맺히고, 따라서 오곡백과는 무르익어간다.

절기는 못 속이는 법. 이웃집 할아버지네 밤나무에도 밤송이가 주먹만 해졌다. 과일가게에 햇밤이 나온 걸 보면, 여기 밤나무에서도 알밤이 떨어질 날도 머지않은 것 같다.

 

밤송이가 벌어져 알밤이 떨어지려는 시기에 밤꽃이 많이 피었다.

 

그런데 눈을 의심케 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미 6월 말에 꽃이 피어 수확을 앞둔 지금, 또 꽃이 피는 게 아닌가! 주렁주렁 달린 밤송이가 곧 벌어질 참에 새 밤꽃이라니? 생뚱맞다. 때맞지 않은 부조화다.

밤꽃이 제때보다 꽃이 많이 피어나지는 않았으나 수월찮게 피었다.

밤꽃이 몇 달 사이 두 번 피는 것은 처음 본다. 수확을 앞둔 가을에 밤꽃이 피는 수가 있는 건가?

'! 이 녀석, 이때 꽃을 피워 어쩔 참이지!'

 

수정이 끝났는지 새로 맺은 작은 밤송이도 보인다.

 

지금 핀 꽃이 지고 달리는 열매가 토실토실한 알밤이 되기까지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할 것이다. 앞으로 두어 달도 안 돼 단풍이 들 것이고, 이파리마저 다 떨어질 텐데... 지금 밤꽃은 제구실을 못 할 게 뻔하리라.

수상쩍은 밤꽃에 코끝을 갖다 대본다. 밤꽃 특유의 냄새가 난다.

'요 녀석 봐라, 야릇한 향기로 또 누굴 유혹하려나?'

밤꽃은 충매화이다. 꿀벌 먹이 사냥으로 수정이 이뤄지면 암꽃에서 아기 밤송이가 달리고 알밤으로 커진다.

식물은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대개 일장(日長, 낮의 길이)과 온도의 영향을 받아 꽃 피는 시기가 결정된다. 지금 밤꽃을 피운 녀석은 봄에 꽃눈이 피는 온도와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온도가 비슷하기에 봄인가 착각하고 꽃을 피웠을까? 흔히 있는 일은 아니다.

 

절기상 가을인 지금 밤꽃이 피었다. 수상쩍다.

 

아무튼, 밤나무가 때를 모르고 꽃을 피우는 것은 정상일 리가 없다. 최근 잦은 기상이변이 원인이라면 좋은 징조는 아니다.

꽃 피는 것도 다 때가 있는 법. 지금 밤꽃이 피는 것은 밤나무가 종족 번식을 위해 열매를 맺는 자연스러운 일은 아닌 건 같다.

꿀벌이 철없는 밤꽃을 찾았다. 영문도 모르는 녀석, 가을에 핀 밤꽃 꿀맛에 젖어 "웬 떡이야!" 하면서 "거참 이상 타!"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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