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태엽 / 자유기고가
지인의 집에 식사 초대를 받아 방문하게 되었다. 부인이 관절염으로 다리를 힘겹게 절면서 음식을 차려 냈다. “다리가 아프신가 봅니다?” 물었더니 “다리가 아파 볼 일이 있어도 외출을 못하고 우울증까지 왔다.”며 슬픈 표정을 지었다. 지인의 형편상 수술까지는 어려운 상황이라 생각하고 가까운 분들을 모아 재빨리 수술비를 마련하여 지인에게 전달했다.
그런데 그가 수술비 모금에 참여한 분들을 원망하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타진해보니, 본인은 자신을 무시한 처사라고 생각하며 자기를 불쌍하게 보고 동정한 것이라고 몹시 언짢아 한 것이었다. 자신의 삶을 침범한 것으로 선행을 베푼 이들을 원망하는 마음을 갖게 된 것이다. 선의의 손길이 반드시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는 순간이었다.
알고 지내던 지인 중 한 분이 어느 날 조그마한 선물을 들고 찾아와 친절하게 자신이 믿는 종교를 믿으라고 설파한다. 그는 “내가 얼마 전 어떤 종교를 믿었는데 그동안 되는 일이 없더니 지금의 종교를 믿고 나서 하는 일마다 잘 되고 좋아졌다.”고 말했다. 하지만 필자에게 종교는 강권해서 전도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 상대의 말에 공감이 되어야 하는데 마음이 움직이지 않은 상태에서 억지로 요구하면 도리어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그분은 헤아리지 못하고 있었다.
우리는 타자를 제대로 알기 어렵다. 상대편의 마음속을 잘 헤아리지 못하면서 자신의 생각대로 이끄는 탓에 문제가 발생한다. 같은 처지에 있지 않고 똑같은 삶을 살지 않았기에 크고 작은 차이들로 가득차 있을 상대의 마음 속을 제대로 알 수 있겠는가.
최근 또다른 에피소드가 있었다. 모임에서 2박 3일 하계 야유회를 가게 되었다. 나의 역할은 프로그램을 짜고, 구성원들이 사용할 생필품과 2박 3일 먹을 것을 준비하는 거였다. 회원들에 대한 애정 어린 마음에 맛있게 먹는 모습을 상상하며 힘든 줄 모르고 나와 아내는 며칠을 생각하며 준비물을 손수 장만하고 만들었다. 하지만 회원들의 반응은 제각각 달랐다. “뭐 이런 것까지 다 해왔어!, 맛있기는 한데 부담스러워!” 어떤 이는 “해놓은 음식을 사 먹는 것이 더 편하다”고 말했다. 고맙게 생각하며 잘 '먹어주는' 이들도 있다. 필자는 ‘그냥 맛있게 먹으면 되는데...’라는 생각만 들었는데도 말이다. 예상 밖의 이같은 현상에 민감해져 있었는데, 후에 생각해 보니 이와 같은 일은 허다했다.
고아원에서 자랐던 사람들에게 가장 싫었던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사람들은 부모님이 곁에 안 계신 것과 먹고, 입을 것이 부족하다고 말할 줄 알았다. 그러나 “도움을 주러 온 사람들과 사진을 함께 찍는 것이 가장 괴로웠다.”고 말했다. 도움을 받는 입장이었음에도, 도와주러 온 사람들로 인하여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을 수 있는 것이다.
요즘 사회는 친절하고 착하면 손해 본다고 생각하는 시대이다. 그럼에도 친절은 좋은 인간관계를 맺는 필수의 자원이며 존중과 예의라는 측면에서 꼭 필요한 덕목이라 말하고 싶다. 그러기에 베푸는 친절도 상대를 진정 아끼는 마음으로 수행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자신의 '욕심'에 따라 행하는 친절도 있기에 친절함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을 판단할 때 내 기준이 아니라 그들의 기준으로 판단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겠다. 서로의 관계는 자기 혼자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주고받으며 만들어져 가는 것이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