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개와 똥개를 함께 키워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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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개와 똥개를 함께 키워야 하는 이유
  • 최원영
  • 승인 2024.02.20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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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영의 책갈피] 제144화

 

 

드러나지는 않지만, 꼭 필요한 것들이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공기, 따스한 햇볕, 늘 그곳에 서 있는 나무 등 셀 수 없이 많습니다. 평소에는 있다는 것조차 모르고 살지만, 그것이 없으면 우리 역시도 살 수 없는 것들입니다.

사람도 같습니다. 여럿이 있을 땐 드러나지 않지만, 눈물을 흘리고 있는 내게 슬그머니 다가와 곁을 지켜주는 사람, 이런 사람이 평소에는 드러나지 않지만, 꼭 필요한 사람입니다.

정채봉 시인의 ‘만남’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가장 잘못된 만남은 생선과 같은 만남입니다.

만날수록 비린내가 묻어오니까요.

가장 조심해야 할 만남은 꽃송이 같은 만남입니다.

피었을 때는 환호하다가 시들면 버리니까요.

가장 비천한 만남은 건전지와 같은 만남입니다.

힘이 있을 때는 간수하고 힘이 다 떨어지면 던져버리니까요.

가장 시간이 아까운 만남은 지우개와 같은 만남입니다.

금방의 만남이 순식간에 지워져 버리니까요.

가장 아름다운 만남은 손수건 같은 만남입니다.

힘이 들 때는 땀을 닦아주고 슬플 때는 눈물을 닦아주니까요.

 

저의 하루는 눈을 뜨면 연구실로 달려와 책장을 펼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책을 읽다가 좋은 내용이 있으면 컴퓨터에 입력시킵니다. 그리고 그것을 주제별로 토막을 내어 다시 입력시킵니다. 그래서 자주 책을 사곤 합니다. 책방에 직접 가서 사는 경우가 많지만, 때로는 인터넷 서점에서 사기도 합니다. 간혹 신문에 소개된 책을 주문하기도 합니다.

보통 한 번에 5권에서 10권 정도를 사는데, 책이 도착한 다음 날 새벽에는 그 꾸러미를 들고 연구실로 향하는 새벽길이 무척이나 설렙니다. 마치 애인을 만나러 가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목차를 보고 신중히 골랐는데도 불구하고 많은 책은 저자 자신을 드러내는 책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런 책의 내용은 저자의 똑똑함과 성실함은 보이지만, 그 똑똑함과 성실함이 독자에게 주는 선물이 아니라 자신을 홍보하는 것에 그치고 있어 참으로 허탈해집니다. 선거철이 되면 많은 정치인들이 책을 내는 것도 같습니다.

그러나 간혹 보물과도 같은 책을 만나기도 합니다. 이런 책은 자신을 드러내는 책이 아닙니다. 누군지 모를 독자에게 자신의 깨달음을 겸손하게 풀어놓은 책입니다. 그때마다 얼굴도 모르는 저자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그런 책은 읽을 때마다 탄성을 터트리게 됩니다.

사람과의 관계도 그렇습니다. 정채봉 시인의 말처럼, 생선과도 같은 사람, 꽃송이 같은 사람, 건전지와 지우개 같은 사람들은 자신을 드러내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관계의 끝은 늘 비참합니다. 그러나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손수건 같은 사람도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이 저에게는 그런 사람입니다. 저 역시 여러분에게 그런 사람으로 남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안도현 시인은 《나는 당신입니다》에서 서문성 씨의 ‘작은 이야기 큰 깨달음’이란 글의 일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영국의 한 출판사가 상금을 걸고 ‘친구’란 말의 정의를 독자에게 공모한 적이 있었는데, 1등은 다음과 같은 글이었다고 합니다.

‘친구란 온 세상이 다 내 곁을 떠났을 때 나를 찾아오는 사람이다.’

윗글을 소개하면서 시인은 이렇게 자신의 감회를 적어나갔습니다.

“진돗개는 자신이 세상에서 제일 똑똑한 줄 알아서 어릴 때는 무척 오만하다고 한다. 녀석의 버릇을 바로잡으려면 그 녀석 옆에 똥개 한 마리를 같이 키워야 한다. 세상은 어울려 살아야 한다는 것을 그 똥개친구에게서 배운다는 것이다. 아무리 영리한 개라도 일정한 사회성 교육이 필요하다는 거다. 이건 진돗개뿐만 아니라 똥개를 위해서도 필요하다. 친구란 그렇게 서로 무언가를 주고받는 사이다.

아이들이 친구가 부디 많기를 소망한다.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서로 주고받을 수 있는 친구들 말이다.”

손수건 같은 사람을 만나고 싶습니다. 손수건과도 같은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누구나 자신을 진돗개라고 여기고 살아갈 겁니다. 그러나 한 가지 더 살펴야 할 게 있습니다. 나는 진돗개이면서 동시에 똥개라는 사실입니다. ‘진돗개인 나와 똥개인 너’라는 생각과 ‘진돗개인 너와 똥개인 나’라는 생각이 공존할 수 있어야 모든 인간관계는 빛이 날 겁니다. 그때 두 사람 모두 행복해지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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