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봄을 번쩍 일으켜 세우는, 신기시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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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봄을 번쩍 일으켜 세우는, 신기시장에서
  • 유광식
  • 승인 2024.02.05 08: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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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유람일기]
(121) 미추홀구 신기촌 일대 - 유광식/ 시각예술 작가

 

신기시장 서측 입구(캐릭터는 어린 도깨비 들비와 날비), 2024ⓒ유광식
신기시장 서측 입구(캐릭터는 어린 도깨비 들비와 날비), 2024ⓒ유광식

 

입춘(2.4)이 지났다. 갑진년의 기운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고 보면 될 것이다. 일단 멍석은 깔렸다. 아직은 조용한 겨울 같지만 조금만 바깥으로 눈을 돌리면 시끌벅적하다. 유독 화재 사고 안전문자와 배회하는 사람 찾는 알림을 연말연시 자주 수신했다. 급기야 매우 안타까운 사고도 발생했다. 선거를 앞두고 전쟁을 주시하고 축구를 시청하며 떠돌아다니는 뒤숭숭한 이야기들을 만난다. 얼마 후 설 명절을 앞두고 민심이 모여 있다는 시장을 찾았다.  

 

신기길 길가 점포들, 2024ⓒ유광식
신기길 길가 점포들, 2024ⓒ유광식

 

주안역에서 남쪽으로 직선을 그으면 마지막 구역에서 큰 시장을 만난다. 신기시장(新基市場)은 그 이름의 뜻 때문인지 뭔 일이라도 일어날 듯싶다. 신기시장은 인근 농장에서 키운 채소 상거래를 시작으로 긴 시간을 거쳐 시장으로서의 면모를 갖추었다. 신기시장사거리를 기준으로 남쪽으로 고개 하나 넘으면 문학산 터널이다. 통행요금소가 없어지면서 기분 탓인지 차량 통행이 좀 더 늘어난 것 같은데, 경사진 도로 중턱에서 신호대기를 할라치면 미끄러지지 않을까 걱정이 들 정도로 밀물 같은 교통량을 자랑한다. 그 물길 갈라져 시장으로 한 가닥 빨려 들어간다. 

 

주안쌍용아파트(과거 요업공장 터), 2024ⓒ유광식
주안쌍용아파트(과거 요업공장 터), 2024ⓒ유광식
진흥아파트 앞 상가(치킨의 기억은 사라질 기미가 없다.), 2024ⓒ유광식
진흥아파트 앞 상가(치킨의 기억은 사라질 기미가 없다.), 2024ⓒ유광식

 

시장은 맞은편 쌍용아파트와 진흥아파트의 이야기로부터 시작한다. 한때 요업 공장이었던 터인데, 지금은 시장만 남겨 둔 채로 철수했다. 찾아보니 이러저러한 정보가 많기는 하다. 시장 앞 미추홀대로는 명절쯤이면 안 그래도 굽은 도로변에 주차난 때문에 자동으로 거북이가 되어 아슬아슬하게 지나던 때가 있었다. 지금은 관리가 되어있는 것 같다. 주변에 큼지막한 주차장을 신설하고 각종 편의시설을 구비하여 생활 쇼핑이 가능하도록 정비했다. 간혹 TV프로에도 소개된 적이 있고 말이다. 

 

반가운 한복집(단 한 번도 입어보지 못했다.), 2024ⓒ김주혜
반가운 한복집(단 한 번도 입어보지 못했다.), 2024ⓒ김주혜
먹음직스러운 가래떡과 떡 포장 샘플, 2024ⓒ김주혜
먹음직스러운 가래떡과 떡 포장 샘플, 2024ⓒ김주혜

 

신기촌 일대에는 10평 남짓한 집이 많다. 먼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알 수 있는 내용인데, 그 10평의 연대감은 아직도 존재하는 분위기다. 평일임에도 시장 통로가 북적이는 걸 보니 많이 사라졌다고는 해도 명색이 명절이다. 생선과 채소가게, 떡집, 전집, 빨간 고깃집과 공산품 가게 등 각자의 역할대로 ‘설’ 집을 위해 한 벽돌씩 쌓고 있었다. 예전에는 도로변 보도블록에 점포들이 있었는데 이번엔 보이지 않아 의아했다. 정리가 된 모양이다. 어떤 시절에 시장 점포와 노점상들의 갈등이 첨예했던 적이 있었던 것 같다. 한 시인은 당시 상황을 ‘신기촌시장에 내린 비’라는 시로 당시 온도를 간직해 두었다. 

 

줄 서며 쇼핑하는 시장 통로, 2024ⓒ유광식
줄 서며 쇼핑하는 시장 통로, 2024ⓒ유광식
물건을 고르는 어르신(김이 특히 부각된다.), 2024ⓒ김주혜
물건을 고르는 어르신(김이 특히 부각된다.), 2024ⓒ김주혜

 

5번 버스의 종점이었다고 하는 신기촌이 신기하다는 말도 다 옛말인 것 같다. 요업 회사에 다녔던 분들이 많고 88올림픽의 특수를 맛본 분들도 많다고 한다. 당시 매월 5일이 월급날이었다고 하는데, 마침 5번 버스가 사이렌을 울리며 덩실덩실 사람들을 싣고 와 이 지역이 들썩이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개인적으로는 10년 전 3개월 정도 한 가옥을 작업실로 사용했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 넓이가 딱 10평이었던 것 같다. 어느새 길게 자란 시간 터널이 되었다.  

 

담벼락 벽화(우리 것, 우리 동네가 좋은 것이여~), 2024ⓒ유광식
담벼락 벽화(우리 것, 우리 동네가 좋은 것이여~), 2024ⓒ유광식
신기시장 사거리(신기시장은 작은 시장들의 합이다), 2024ⓒ유광식
신기시장 사거리(신기시장은 작은 시장들의 합이다), 2024ⓒ유광식

 

신기시장 옆에는 신기・남부종합시장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다. 2013년 증설을 했는데 1층에는 시장 현대화 사업을 추진하면서 진행되었을 간이 야구박물관이 포토존을 겸해 있었다. 주차장 앞에서 녹차호떡을 사 먹었던 기억이 있는데 보이지 않았다. 인근 우진아파트도 재개발이 완료되어 새 아파트 ‘2편한’이 말뚝처럼 박혀 있었다. 인근의 식당을 찾아 육개장칼국수를 먹었다. 오후의 볕과 더불어 육개장 한 그릇이 찬 기운을 몰아내고 속을 따뜻하게 만들어 주니 입춘이 따로 없다. 이 와중에도 어르신들은 마치 일개미처럼 부지런히 장을 보고 무언가를 들고 메고 움직인다. 아무튼 풍성함을 느껴 보는 것만으로 후식을 대신한다.   

 

신기・남부종합시장 주차장 1층 야구 박물관(전시장에 가깝다.), 2024ⓒ유광식
신기・남부종합시장 주차장 1층 야구 박물관(전시장에 가깝다.), 2024ⓒ유광식
보면 볼수록 들어가고 싶은 이불집(따듯한 설날 보내세요!), 2024ⓒ유광식
보면 볼수록 들어가고 싶은 이불집(따듯한 설날 보내세요!), 2024ⓒ유광식

 

요즘 맛보고 있는 시금치와 봄동, 냉이, 브로콜리, 콩나물 등을 유심히 살펴 몇 가지 장을 보기도 했다. 방앗간에 머무는 사람들은 자기 떡에 어떤 희망을 찧어 넣었을까? 요즘 시국이 신기할 정도로 비현실적이기도 한데, 올해 설날엔 어떤 이야기들이 오갈지 걱정도 된다. 다시 돌아온 일상에 부디 찬물을 끼얹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명절이라는 이름으로 되풀이되는 안타까운 사건・사고가 없기를 바라는 마음이 보름달처럼 활짝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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