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고, 연미정 해안도로 함께 달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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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고, 연미정 해안도로 함께 달리고
  • 김시언
  • 승인 2024.01.16 16: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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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이야기]
(35) 사소한공방 다을
강화읍에 있는 _사소한공방 다을_
강화읍에 있는 _사소한공방 다을_

 

올해는 ‘책 읽는 다을’로

영하의 날씨가 이어지는 한겨울, 문득 ‘다을’의 온실이 생각났다. 선인장을 비롯해 다육이들은 어떻게 지낼까, 또 주인장은 책모임을 어떻게 꾸려나가고 있을까 궁금했다. 오랜만에 강화읍 남산리(화성길 50번길 20)에 있는 ‘사소한공방 다을(이하 다을)’을 찾았다. 주인장 이은경 대표는 오후에 있을 책 모임을 준비하고 있었다.

‘다을’은 ‘다글다글, 다그르르다그르르. 찻잎이 우러나는 소리, 말려진 찻잎이 물속에서 풀어지는 소리’에서 따왔다고 한다. 이은경 대표는 “지금 사는 공간을 천천히 여유있게 만든 공간이기도 하고, 지난해부터는 직접 재배한 메리골드 차를 내놓는다”고 했다.

다을은 강화에서 ‘책모임이 있는 다을’로 알려져 있다. 이 대표는 화요반 금요반 두 개를 꾸린다. 조만간 한 반이 더 개설될 예정이다. ‘호르메시스’라는 반을 모집해 나이 상관없이 남자분도 지원할 수 있게 했다. ‘호르메시스’는 ‘적당한 자극’을 줄 때 뇌가 활성화한다는 데서 따왔다. 화요반 금요반은 여태껏 해오던 대로, ‘호르메시스’는 단기회원반으로 책을 하나 정해서 읽고 그 책이 끝나면 모임도 끝난다. 그러다가 또 다른 책으로 모임을 열고, ‘한 권 읽기’다.

 

책모임이 열리고 있다.(다을 제공)
다을 책모임이 열리고 있다.(다을 제공)

 

7년 전에 강화읍에 터를 잡고

이 대표는 2017년 12월에 입주했다. 오래전에 사 놓은 땅에 집을 지었다. 가족은 모두 도시에 있고 혼자서 농사를 짓고 생활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관리할 게 많았지만, 차차 적응하다 보니 살 만했다. 강화는 군인인 아버지를 따라 어렸을 때부터 드나들었기 때문에 아주 편안한 곳이었다. 이 대표가 집을 지을 때만 해도 문화재지정보호구역이라 건폐율이 20%라 그야말로 임야였고 집이 별로 없었다. 지금은 규제가 풀려 건폐율이 50%가 됐고 집도 많아졌다. 이 대표는 도자기 작업에 열중할 생각이었다. 인적이 드문 데서 ‘작업하면서 조용히 살자’, ‘오두막을 지어서 자연적으로 살아보자’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집을 짓고 보니 오두막이 아니었다. 의도치 않게 건축가를 잘 만나고 집을 현대식으로 지었다. 모던한 집에 사람의 일상이 맞춰졌다. 정원을 가꾸고 책을 읽고 강화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고. 그렇게 집을 짓고서 첫해는 순전히 혼자만의 공간에서 일상을 이어갔다.

그러다가 하루하루 너무 심심할 즈음, 혼자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산자락에 살면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도종환 시인의 ‘산경’이 수시로 떠올랐다.

‘하루 종일 아무 말도 안 했다/ 산도 똑같이 아무 말을 안 했다// 말없이 산 옆에 있는 게 싫지 않았다/ 산도 내가 있는 걸 싫어하지 않았다/ 하늘은 하루 종일 티 없이 맑았다// 가끔 구름이 떠오고 새 날아왔지만/ 잠시 머물다 곧 지나가 버렸다/ 내게 온 꽃잎과 바람도 잠시 머물다 갔다// 골짜기 물에 호미를 씻는 동안/ 손에 묻은 흙은 저절로 씻겨 내려갔다/ 앞산 뒷산에 큰 도움은 못 되었지만/ 하늘 아래 허물없이 하루가 갔다’

 

공방에 전시된 작품들.
공방에 전시된 작품들.

 

책모임을 꾸리기 시작하고

시 내용처럼 하루가 단조로운 듯 평화로웠다. 도자기를 만들고, 온실을 가꾸고, 또 책을 소리 내서 읽었다. 그 어느 날도 책을 읽다가 문득, ‘이렇게 좋은 걸 왜 혼자 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책 모임을 꾸리게 된 것.

갱년기 여성들이 겪는 어려움이 있지 않을까, 그걸 공유하자 싶었다. 처음에는 《사는 게 뭐라고》라는 에세이부터 시작했다. 한 페이지씩 읽어가면서 ‘낭독의 힘’을 활성화한 것. 참여한 분들한테 자극도 많이 받았다. 그들에게서 에너지를 얻고 힘을 낸다. 한마디로 공생관계. 책을 읽고 소통하다 보면 서로 ‘경계를 허물게’ 되고 나이를 ‘느리게’ 먹을 수 있다는 걸 실감해서 좋다.

처음 3년은 시집, 에세이, 철학을 읽었고, 2년 전부터는 과학책을 읽는다. 이런저런 책을 읽다가 어느 지점에서 답답한 점이 있었는데, 그 점을 해결하기 위해서 과학책을 잡게 됐다. 김상욱의 《떨림과 울림》으로 시작했는데 처음 석 달은 씨름하면서 읽었다. 유튜브도 열심히 들었다. 참여한 분들도 “너무너무 어려운데 재밌어요!”라면서 좋아한다고.

이 대표는 “과학에 문외한이던 나도 재밌으니 다른 분들도 재밌겠다 싶었는데 적중한 것”이라면서 칠판을 이용한 시각적 효과도 좋았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앞으로 당분간 과학책 읽기는 계속된다. 어렵지만 궁금하니 접근해야 하고, 접근하는 방법을 찾으면 의외로 쉬운 방법이 있다. 이렇게 과학책을 읽다가 또다시 인문학 책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했다.

 

이은경 대표가 수업 준비를 하고 있다.
이은경 대표가 수업 준비를 하고 있다.

 

책을 읽으면 인식에서 자유로워지고 편견도 사라져

책을 읽으면 특히 뭐가 좋을까. 이 대표는 “내 인식을 바꾸기 시작했다. 삶의 패턴이 바뀌었다. 편견에서 많이 자유로워졌다”고 명쾌하게 답했다. 올해 책모임에서는 ‘강화마라톤대회’에 참여하기로 했다. 지난해에 읽은 책 중에 《운동하는 뇌과학》이 인상적이었다. ‘움직여야지’, 작정하고 심장을 뛰게 하면 뇌를 활성화한다는 걸 실천하기로 한 것.

책 모임의 모토는 ‘just doing’이다. ‘해보는 것’. 책을 읽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생활 패턴을 바꾸고, 나의 뇌와 정신을 컨트롤하자는 것, 그래야 천천히 늙는 방법을 찾지 않겠는가 싶어서다. 운동하기 꺼려하는 사람은 걷기, 줄넘기, 워싱을 하기로 했다. 평소에는 각자 운동하고 한 달에 한 번 점검 차원으로 연미정 해안도로를 함께 달린다.

올해도 그는 열심히 꽃농사를 지을 계획이다. 농사를 지으니까 쓰지 않던 근육과 감각을 쓰고 즐거움을 느껴서 좋았다. 지지난해까지는 풀뽑기 명상에 집중했는데, 그 정도로는 안 되겠다 싶어 지난해부터는 먹거리도 심고 꽃도 열심히 가꾸었다. 양배추 농사도 성공적이어서 이웃들과 나눠먹을 수 있었다.

가족은 한 달에 한 번 만난다. 특히 직장 다니는 딸은 가장 큰 지지자. “나도 엄마처럼 살고 싶다”고 할 정도다. 딸과 이야기하다 보면 요즘 젊은이들이 어떤 책을 읽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 공유할 수 있어서 좋다.

 

한겨울에도 식물이 잘 자라고 있다.
한겨울에도 식물이 잘 자라고 있다.

 

도자기 작업과 식물 가꾸기도 병행할 것

이 대표에게 공방과 온실도 참으로 중요한 공간이다. 지난해까지는 공방을 온종일 열어놨는데, 올해는 책모임을 하는 날만 열 생각이다. 공방을 하루 종일 열면 거기에 너무 시간을 써서 막상 도자기 작업이나 온실에서 식물 가꾸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손님이 오면 거기에 매달려 집중할 수 없어서 할 수 없어 또 다른 방법을 찾은 것. 내가 여유 있고 행복해야 공방을 찾는 손님에게도 편안하고 여유롭게 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공방을 방문하겠다고 미리 연락하면 책모임이 없는 날이더라도 반갑게 맞이한다고. 강화는 지금 열심히 ‘책 읽는 중’이다.

 

다을6_눈 내린 뒤 다을 마당 모습(다을 제공)
눈 내린 뒤 다을 마당 모습(다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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