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아트플랫폼 레지던시 사업 종료 계획’에 반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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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아트플랫폼 레지던시 사업 종료 계획’에 반대하며
  • 이권형
  • 승인 2023.11.23 17: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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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가 이권형의 인천인가요]
(28) 이권형의 〈수봉공원〉 (2018년)

어릴 적 제가 살던 석바위의 낡은 아파트 단지 중앙에는 놀이터가 있었습니다. 구체적인 놀이의 규칙과 이름, 그리고 그 놀이가 성립하는 세부적인 내용은 전부 달랐을 테지만, 돌이켜보면, 그 당시 놀이터의 풍경은 좀 거칠어도 나름 각자의 상상력이 투영된 놀이 문화를 공유하는 커뮤니티의 장이기도 했었던 것 같습니다.

언젠가부터 모래 놀이터의 모습은 오래된 아파트 단지에서나 가끔 눈에 띄고, 그나마도 아이들이 노는 모습은 잘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제는 우레탄이 깔린 바닥에 매끈한 플라스틱 구조물로 규격화된 놀이터가 더 흔해졌죠. 안전 기준이 강화됐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관리상 훨씬 수월하기 때문이라고도 합니다. 그렇다면 요즘의 놀이터는 얼마만큼 아이들의 상상력을 수용하고 있으며, 어떤 놀이 문화의 장으로서 기능하고 있는 걸까요?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최근 소문이 무성한 인천아트플랫폼 레지던시 사업 종료 계획이 담긴 인천아트플랫폼 운영개편안에 대한 소식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저에게 석바위 아파트 단지 놀이터가 일종의 유년 시기의 문화적 경험에 대한 기억이라면, 개항장 일대에서 접한 문화예술 커뮤니티에 대한 경험은 불안한 사회 초년기에 절 맞이해 준 놀이터와 같은 이미지로 남아있습니다.

당시엔 청년 문화예술 커뮤니티나 기획에 대한 행정 지원의 형태는 지금보다 다채로웠는데, 규모가 크진 않았지만, 그래서 부담 없이 시작하기에 좋은, 꽤 많은 기회가 열려있었습니다. 동인천 원도심의 부동산을 활용한 공간인 ‘청년플러스’는 소박하지만 자유롭게 열려있었으며, 그렇게 형성된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문화재단과 청년 기획 주체들이 함께 실행했던 문화행정 기획자 양성 프로젝트들이 벌어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경험은 제가 예술가로 시작하는 데에, 그리고 지역 커뮤니티의 일원이 되는 데에 중요한 초석이었습니다. <수봉공원>은 제가 그러한 기획을 통해 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처음 발매했던 곡이죠.

 

2018년 발매된 싱글 [수봉공원]의 표지. 사진가 류재형 사진의 사진을 사진가 오석근이 편집했다. 2017년 인천문화재단 바로그지원 사업을 통해 제작됐다.
2018년 발매된 싱글 [수봉공원]의 표지. 사진가 류재형 사진의 사진을 사진가 오석근이 편집했다. 2017년 인천문화재단 바로그지원 사업을 통해 제작됐다.

 

그렇게 개항장 일대의 삶과 문화와 관계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긴밀하게 연결된 지역의 문화적 자산들, 사람들, 그리고 인천아트플랫폼 레지던시 출신의 작가들과의 관계는 기획자로서 비전을 펼칠 수 있게 된 중요한 요소였어요. 그들은 저에게 지역의 어른들이자 멘토였고, 지역의 일원으로 현재진행형의 레지던시 사업을 경험하는 일은 예술가로 살아가는 다양한 방식과 영감을 체득하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돌이켜 이야기하자니 참 아득한 동네 성장담을 늘어놓는 기분이네요. 그때 인천 예술가 커뮤니티의 에너지는 정말 기이하고 파워풀했는데, 그동안 인천의 문화행정도, 동네의 분위기도 많이 변한 것 같아요.

저는 한 번도 인천아트플랫폼 레지던시 사업의 직접적인 지원을 받은 ‘전문 예술가’는 아닙니다. 그러니, (인천시가 구성한) '인천아트플랫폼 혁신 소위원회'에서 ‘인천아트플랫폼 레지던시 사업 종료 계획’을 포함한 개편안 따위를 가지고, “전문 예술가가 아닌 일반 시민을 위한 곳으로 바꿔보자”라고 주장한다면, 저는 그 사업을 통한 경험으로 하나의 주체로서 사회에 성장한 ‘일반 시민’의 이름으로서 이야기하겠습니다.

저에게 인천아트플랫폼 레지던시 사업에서 파생된 문화적 경험과 그를 통해 지역과 문화행정을 이해하고 기획자로 성장했던 과정은 지금까지도 제 삶에 큰 영향을 준 자산입니다. 그때의 경험이 없었다면 저는 한 명의 예술가로서, 한 명의 시민으로서 지금처럼 성장하긴 어려웠을지도 모릅니다. 지금의 제 삶은 사실 그때와는 거리가 멀다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누군가 제게 ‘당신이 인천의 예술가냐’ 묻는다면, 그 시절을 돌아보며 ‘그렇다’라고 말할 겁니다. 저에게 지역의 문화적 관계와 자산들은 일종의 배움의 장이자, 놀이터이자,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고향의 이미지와 같은 것입니다.

그것이 저뿐 아니라, 인천아트플랫폼 레지던시 사업을 거쳐 간 수많은 예술가들, 그리고 그들이 지역과 주고받은 관계와 영감, 그 안에서 함께 배우고 성장한, 모든 ‘일반 시민’들의 마음 또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제 배움의 장이, 제가 한 시절을 보낸 놀이터가, 제 마음 속 고향의 이미지가 뜬구름 잡는 탁상공론으로 그저 기억 속 추억거리가 되는 것을 원치 않으며, 이에 ‘인천아트플랫폼 레지던시 사업 종료 계획’을 포함한 ‘인천아트플랫폼 운영개편안’의 전면 수정을 요구하는 바입니다.

 

“산이라기는 뭐한 뒷동산에서

회전목마를 타는 꿈을 꾸었네

엄마아빠 따라 걷던 높은 산이

커져버린 나에겐 동산이었네

놀이기구가 있는 풍경 속에서

나는 벅차는 맘을 숨길 곳 없네

엄마아빠가 찍은 사진들처럼

멈춰버린 기억인줄 알았는데

엄마야 같이 가자

꿈이라면은 깨지 말고

학교 소풍 나오던 그 길목에서

사복 입은 녀석들 부푼 표정에

이런저런 얘기하며 내려오던

집에 가는 그 길 위를 돌아보네

친구야 같이 놀자

꿈이라면은 깨지 말고

엄마야 같이 가자

꿈이라면은 깨지 말고

기억을 돌아봐

기억을 돌아봐

기억을 돌아봐

기억을 돌아봐

꿈속을 돌아봐”

- ‘이권형’ <수봉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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