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센 조류를 치받는 섬, 물치도 - 무상한 세월의 변화를 치받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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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센 조류를 치받는 섬, 물치도 - 무상한 세월의 변화를 치받다
  • 김정아
  • 승인 2023.09.21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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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닥속닥 인천 설화]
(19) 물치도

인천 동구의 섬, 물치도는 작약도로 불리기 전 이름이다. 2020년 제3차 국가지명위원회'에서 만석동 산 3번지 일원에 있는 작약도 명칭이 물치도로 변경되었다.

물치도(勿淄島)는 강화해협의 거센 조류가 강하게 부딪히는 섬이란 의미다. 일제 강점기 때 물치도를 매입한 일본인 화가가 섬의 형태가 마치 작약꽃 봉오리를 닮았다고 해 작약도라는 지명이 붙여진 것으로 알려졌다.

1893년 편찬된 ‘청구도’를 비롯하여 ‘대동지지’, ‘대동여지도’, ‘동지도’, ‘경기고지도첩’ 등에는 물치도라고 표기되어 있지만, 1917년 일본이 측도한 지형도에 물치도가 작약도로 표기된 점 등을 비춰 보면 일제 강점기에 섬 이름이 바뀐 것으로 학계는 추정하고 있다.

 

물치도01_25.0x36.5cm_종이위채색_2023
물치도01_25.0x36.5cm_종이위채색_2023

 

한편, 1871년(고종 8) 신미양요 당시 미국 군함 5척이 리델 신부의 안내로 이 섬 앞에서 정박한 뒤 강화도해협의 손돌목[孫乭項]을 지나 광성진(廣城津) 전투에 참가하였다. 이 때 미군은 이 섬을 우디아일랜드(Woody Island, 木島)라 칭하였다. 병인양요 때는 프랑스 함대의 이름을 따서 보아제(Boisee)라 불리기도 하였다.

 

물치도02_36.5x25.0cm_종이위채색_2023
물치도02_36.5x25.0cm_종이위채색_2023

 

이름의 변천사만큼 섬의 역사도 여러 번 변화를 겪고 있다.

물치도는 약 30여 년 전부터 관광지로 개발되기 시작하였다. 1975년 건설부 고시로 도시계획시설 유원지로 결정이 이뤄진 뒤 여러 차례 소유권 이전을 거쳐왔다. 1993년에는 서해해상관광에서 인수하여 유원지로 개발하기도 하였으나 서해안고속도 건설과 영종도개발 때문에 전보다 관광객 수는 적어졌고, 소유주의 부도로 인해 2005년 경매에 들어갔다.

물치도는 연간 25만명이 찾는 인천의 대표 휴양지였으나 섬과 육지를 오가던 여객선이 2013년 끊긴 뒤 무인도로 남게 되었다.

 

물치도03_36.5x25.0cm_종이위채색_2023
물치도03_36.5x25.0cm_종이위채색_2023

 

현재는 ‘물치도’를 복합 해양공간으로 개발하는 민자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이 계획 관계자는 “영종도와 만석‧화수부두 일대 해양 친수공간과의 관광 해양벨트를 잇는 시너지를 기대하고 있다”며 “물치도를 ‘해양도시 인천’의 대표적인 해양관광명소로 개발하겠다”고 했다.

​거센 조류를 치받는 섬이라는 뜻의 물치도는 세월의 흐름을 온 몸으로 부딪치고 받아내며 다가올 2024년, 어떻게 탈바꿈하게 될까. 변화를 겪어내는 섬이 품어내고 풀어낼 이야기들이 궁금해진다.

참고 [네이버 지식백과] 물치도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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