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은 종교가 학교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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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은 종교가 학교예요?
  • 이임순
  • 승인 2023.08.30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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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이임순 / (전)인천여자상업고등학교장

 

'정년퇴임'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왠지 서운하면서도 가슴이 뛴다.

오늘은 40년 간의 교직 생활을 마무리하는 이경란 선생님(국어)의 정년퇴임식이 있는 날이다.

학생들을 친동생처럼 사랑하고, 주어진 업무에 남달리 열정을 다하신 존경하고 사랑하는 나의 선생님!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이경란 선생님! 오늘 선생님께서 학생들에게 들려주신 퇴임사가 너무 마음에 와닿습니다.

혼자 다시 읇조리며 선생님을 불러봅니다. 그리고 이 퇴임사를 우리 모두가 함께 읽어보아야 할 것 같아 이렇게 옮깁니다.

 

 

퇴임사

                        이경란

안녕하세요. 오늘 퇴임을 하는 이경란입니다. 

저는 여덟살 때 엄마 손 잡고 설레는 마음 누르며 온 가족의 기대 속에 학교에 들어갔어요.  그날이 학교와의 첫 만남이었어요. 학교가 참 좋았어요. 

​열네살 때,  중학교에 들어갔어요. 

A, B, C, D Dream이라는 단어를 배웠어요. 소나기를 읽다가, 진달래꽃을 읊다가 국어 선생님이 되고 싶었어요. 

​스물네살 때  학교 선생이 되었어요. 오늘처럼 비가 많이 왔네요. 아주 많이 떨렸는데 예쁜 꿈을 만나서 함께 가꾸었어요. 칭찬도 받았고, 성취도 이루었지만, 좌절도 겪었고, 아픔도 겪었어요. 그렇게 그렇게 단단해 졌어요.  

쉰살에 3월 1일  동양중학교 1학년 2반 교실, 그때는 남편과 아들과 함께 청소도 하고 사물함과 책상에 이름표도 붙였어요. 

한 학생이 “선생님~ 선생님은 종교가 학교예요?” 라고 물어서 “종교가 학교인 사람도 있니?”했더니 “그런데 왜 일요일에도 학교에 오세요”라고 했어요. 

그런데 생각해보니 저에게 학교는 거의 종교였어요. 특히 동양중학교는요. 

이곳에서 다 이루었어요. 교사로서의 꿈을 모두 펼칠 수 있었어요. 여러분 덕분에 오늘, 56년간 학교와의 긴 여정에 마침표를 찍어요. 

여기까지 온 것은 모두 교장, 교감선생님과 선후배 교사, 교직원 여러분 그리고 30년이 넘도록 밥해주시고, 아들들 잘 키워주신 시어머니, 무슨 일을 하든 반대 없이 지지해준 남편, 학교 다니느라 제대로 돌보지 못했는데도 잘 성장해준 아들들, 지금은 하늘에서 애썼다 흐뭇해 하실 부모님,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가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 공감해주고 웃고 따라준 여러분 덕분입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제가 제일 좋아하는 시가 있는데, 그 시는 장석주 시인의 ‘대추 한 알’입니다. 대추 한 알이 붉어지기까지 천둥, 태풍, 번개도 다 들어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도 천둥, 태풍, 번개도 다 성장의 동력이라는 생각으로 받아드리면서 예쁘게 성장하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읽어주고 싶은 시가 하나 있습니다. 나태주 시인님의 ‘어린 벗에게’입니다. 

그렇게 너무 많이  

안 예뻐도 된다.​

그렇게 꼭 잘하려고만 

하지 않아도 된다 ​

지금 모습 그대로 너는  

하지 않아도 된다.  ​

지금 모습 그대로 너는 

충분히 예쁘고 ​

가끔은 실수하고 서툴러도 너는 

사랑스런 사람이란다 ​

지금 그대로  

너 자신을 아끼고 사랑해라 ​

지금 그대로 있어도 

너는 가득하고 좋은 사람이란다. 

 

이제 저 이경란은 the end가 아니라 그리고의 and로 받아 드리고 새로운 삶을 멋지게 엮도록 하겠습니다. ​

행복했습니다. 감사합니다.

2023년 8월 29일 이경란 드림.

 

위에 글을 읽으며 눈물이 주루루 흐르는 까닭은 무엇인지요.

​이경란 선생님!

그 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제2의 인생을 설계하며 늘 행복하세요.

이임순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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