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을 바라보는 시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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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을 바라보는 시선들
  • 이상하
  • 승인 2023.08.24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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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읽기]
이상하 / 조각가

인천 개항장에 자리한 도든 아트하우스(관장 이창구)에서는 인천을 바라보는 창작가의 시선이라는 흥미로운 주제로 여섯 번의 전시가 열렸다. (첫 번째 전시가 6월 24일 시작해서 다섯 번의 전시가 열렸고, 여섯 번째 전시는 8월 21일부터 30일까지 열리고 있다)

첫 번째로 박정선 작가의 ‘알 수 없는 풍경-황해’와 두 번째 고제민 작가의 ‘시간의 풍경-사라질수록 선명해지는’ 세 번째 유동현 작가의 ‘골목, 온다 Onda’ 네 번째 최정숙 작가의 ‘아남네시스-하늬바람이 분다. 별이 내린다.’ 다섯 번째 정평한 작가의 ‘귀화(歸化)-뿌리 내린 식물, 뿌리 내릴 사람들-’이라는 주제로 다섯 번의 개인전이 열렸고, 여섯 번째 전시로 서범구 작가와 이종봉 작가의 2인전‘개항장을 걷다.’가 기사가 나가는 현재(인천과는 거리가 먼 춘천과 강원에서 활동하고 있는 두 작가가 며칠간 개항장에 머물면서 듣고, 걸으며 담아낸 어반 스케치 작품들과 시민들이 작가의 밑그림에 채색하는 체험 활동과 갤러리 콘서트가 함께 열린다) 열리고 있다.

이번 기획이 짧지 않은 시간을 가지고 일곱 명의 작가가 여섯 번의 전시를 이어서 열린 규모도 주목할 만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번 기획의 내용에 더 눈길이 갔다. 각각의 전시는 작가들이 추구하는 작업 세계를 간섭하지 않으면서 하나의 큰 주제(인천을 바라보는 시선) 아래 각자의 생각과 철학을 그대로 녹여낸 다양한 작품세계를 볼 수 있다는 것이 여타의 기획이나 전시와는 차별화된 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일곱 명의 작가가 각자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해석한 인천을 자신만의 조형 언어로 풀어낸, 도시의 풍광과 도시의 축적(蓄積)된 시간을 담은 작품을 볼 수 있는 기회라는 점은 평소 인천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도시의 구석구석과 지나간 시간을 알고 싶어 하는 한 사람으로 무척 반갑고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인천에 대한 사랑과 관심이 큰 이들에게 이번에 전시는 아주 소중한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전시는 인천의 자연(풍경)을 자신만의 조형 언어로 구현해 낸 박정선 작가와 최정숙 작가, 재개발로 사라져 가는 장소와 골목을 따라 시선을 옮겨가며 지나간 시간의 기억을 되살려낸 고제민 작가와 유동현 작가, 이주자와 귀화 식물의 인천 정착기를 담담한 시선으로 기록한 정평한 작가와 외지인의 눈으로 본 개항장의 모습을 담은 서범구 작가와 이종봉 작가의 어반 스케치 작품들이 관객들과 만났다.

여기서는 일곱 명에 작가들이 그려낸, 여섯 번의 전시를 세 번에 나눠서 이야기하려 하는데 첫 번째로 인천의 자연을 자신만의 시선과 철학으로 독창적 조형 언어로 구현해 낸 박정선 작가의 ‘알 수 없는 풍경-황해’와 최정숙 작가의 ‘아남네시스-하늬바람이 분다. 별이 내린다.’에 대한 짧은 소견(所見)을 적어본다.

첫 번째 전시 작가인 박정선 작가는 자신의 ‘알 수 없는 풍경’ 시리즈 중 인천의 바다 ‘황해’를 가지고 관객들과 만났다. 어느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박정선 작가는 “잠재된 무의식만큼 진실한 것이 곧 자연이라고 생각한다.”라며 “적나라한 자연을 그대로 보여주고자 했다.”라고 말했다.” 이 말은 작가가 생각하고 동일시하는 무의식과 자연이 가지는 진실성을 바탕으로 눈에 보이는 사실로의 ‘황해’이기 보다 자신이 찾고 있는 새로운 이미지를 찾아가는 과정의 하나로 읽히는데, 자연을 대하는 작가의 태도가 풍경 자체를 모사하고 재현하는 일에 의미를 두기보다는 새로운 이미지를 찾기 위한 과정의 일환으로의 자연을 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전시를 기획한 도든 아트하우스의 이창구 관장은 작가는 추상과 구상의 경계에서 표현되는 작품세계로 화단에서 인정받는 작가라고 말한다. 이런 작가의 시선이 관객들에게는 어떻게 비쳤을지 알 수 없지만, 작가의 작품을 마주한 나는 강렬한 모노 톤의 화면에 태고의 시간으로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온 심연의 바다가 넘실대며 보여주는 질기고, 모진 생명의 표현으로 인천의 모든 시간을 함께 지나온 황해의 울음과 생명을 품은 어머니의 바다가 보였고, 거기에 자신의 모든 정신과 가치를 담아내려 한 작가의 마음과 숭고한 노동이 보였다. 아무튼 우리는 이번 전시를 통해서 작가의 눈과 마음에 비춰, 새롭게 태어난 인천의 앞 바다 ‘황해’와 마주하는 경험을 했다. 이런 경험은 인천의 바다 ‘황해’를 바라보는 색다른 시각적 경험과 가까이 두고 있어서 잊고 지낸 무심한 마음을 돌아보게 하는 기회를 제공했다.

 

박정선작 알 수 없는 풍경 2022126. 규격 91X117cm. 재료 Mixed Media on canvas

 

박정선 작가의 ‘알 수 없는 풍경’ 연작은 일찍부터 시각적 외양(外樣)보다는 대상의 본질에 다가가려는 정신성을 바탕에 둔 것으로 보인다. 서양에서 그림을 통해 정신성을 드러내고자 한 것이 20세기 현대 미술에 와서야 시작된 것에 비하면, 동양의 그것은 일찍부터 시작되었다고 본다. 서양화를 전공한 작가의 ‘알 수 없는 풍경’은 서양의 그것보다는 동양의 그것과 가까이 있는 것으로 보이는 것은 나만의 느낌일까? 갸웃해 본다. 추상도 구상도 아닌 경계에 선 새로운 형상 속에서 관람객들의 잠재된 의식이 이미지를 통해 바다(황해)를 다양하게 해석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작가는 자신이 만들어 낸 황해에서 관객 한명 한명이 자신의 바다와 만나기를 바라는 모양일 지도 모르겠다.

 

박정선작. 알 수 없는 풍경 2023013. 규격 91X117cm. 재료 Mixed Media on canvas

 

태생부터 인천에 뿌리를 둔 최정숙 작가는 오랜 시간 꾸준하게 문화 운동(해반갤러리, 사단법인 해반문화, 해반포럼)을 전개해 오면서도 그림에 대한 열정은 그대로 가지고 살아왔다. 작가는 자신의 어릴 적 기억에 더해, 지금까지 살아온 인천과 아버지의 고향 백령도에 대한 사랑과 열정으로 인천 문화의 성장과 확장을 위해 온 에너지를 쏟아부어 왔다.

그로 인한 인천 문화의 양적, 질적 성장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작가가 바쁘고 힘든 시간 속에도 작업에 대한 열정을 이어올 수 있는 것은 이런 성정(性情)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작가는 잠시의 나태(懶怠)도 용납하지 않으며, 조형적 실험을 모색하는 한편, 자신의 이야기와 뿌리를 찾고, 기록하는 여정을 이어오고 있는데 그 작업의 연장선에 바로 백령도가 있다. 또 다른 한편으로 작가는 백령도에 대한 작업뿐 아니라 백령도 등의 도서 지역의 문화 운동을 통해 도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취약한 섬 문화의 부흥을 꾀하고 있다.

 

최정숙작 별내리는 하늬바다 1 규격 100X40cm 재료 Mixed Media on canvas
최정숙작 별내리는 하늬바다 1 규격 100X40cm 재료 Mixed Media on canvas

 

이번 전시에서 보여준 백령도는 자연 그대로의 가시적(可視的) 섬으로 보다는, 자신의 마음과 기억에 살아있는 유년의 시간과 섬의 시간을 함께 그려내고 있다. 작가는 어릴 적 백령도에서 할머니와 살면서 보고 느꼈던 기억 속에 백령도를 소환하고 있다.

백령도의 역사적(지구적 시간 위에 인간의 시간을 포함한) 가치와 지리적(육지와 먼 섬과 분단이라는 상황을 포함한) 상황은 매 순간 경계선에 서 있는 것과 같이 위태롭고, 잠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현실에 고단하고 치열한 삶의 현장이지만, 작가의 기억 속 백령도는 할머니와 살던 집이 있는 진촌 동고물과 할머니를 따라 굴을 따던, 하늬바닷가와 한여름 동무들과 절벽 바위구멍에 돌을 던지며 놀던, 아름다운 추억으로 가득한 곳이고, 매일 밤하늘 위로 쏟아지는 별들의 잔치로 기억되는 그런 곳이다.

이런 기억을 재료 삼아, 작가는 백령도에 하늬바다와 쏟아지는 별과 지나간 아름다운 시간을 표현하기 위해 수없이 물감을 뿌리고, 칠하고, 찍기를 반복하는 지난(至難)한 노동을 기꺼이 감내(堪耐)한다. 그 결과물이 별이 내리는 섬, 백령도 하늬바다의 연작이다. 작가에게 백령도와 하늬바다는 작업의 시작이자 동력을 제공하는 중요한 지점이 된다. 작가의 작업을 보고 있으면 팍팍하고 고단한 현실은 잠시 잊고, 신화와 전설 속 아득히 멀고 먼 저 세계, 어디론가 빠져드는 시간을 경험하게 된다.

작품과 마주하면 쏟아지는 별의 세례를 받을 수 있고, 지구 속 용암이 만들어 낸 감람암포획 현무암이 품고 있는 아득한 태곳적 신비의 시간과 마주할 수도 있다. 작가는 자신의 기억을 통해 관객들에게 따뜻했던 유년의 추억을 공유하게 하는 한편, 아득하게 먼 지질학적 시간으로 관객들을 이끈다. 작가는 관객들에게 숭고한 자연의 시간에 더해, 아름다웠던 유년의 시간을 찾아가게 하는 안내자가 된다.

 

최정숙작 하늬바다-여름 1 규격 53X45cm  재료 Mixed Media on canvas
최정숙작 하늬바다-여름 1 규격 53X45cm 재료 Mixed Media on canvas

 

** 옹진 백령도 진촌리 감람암포획 현무암분포지(橄欖岩捕獲 玄武岩分布地)는 진촌리에 있는 원시시대의 지질 지형으로 천연기념물 제393호로 지정되었다. 진촌리에서 동쪽으로 1.3km 정도 떨어진 해안에 있으며, 해안선을 따라 지름 510cm 크기의 노란 감람암 덩어리가 들어있는 용암층이 만들어져 있다. 용암층은 두께가 10m 이상이며 검은 현무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지구 속 수십km 아래에서 만들어진 감람암이 용암이 분출할 때 함께 올라와 만들어진 것으로 지하 깊은 곳의 상태를 연구하는 데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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