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생의 꿈에서 무엇을 깨달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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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생의 꿈에서 무엇을 깨달을 수 있을까?
  • 최원영
  • 승인 2023.08.07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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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영의 책갈피] 제116화

 

 

《뒤주 속의 성자들》에 노생이라는 청년의 꿈 이야기가 나옵니다.

당나라 현종 때 ‘여옹’이라는 도사가 어느 작은 마을의 한 주막에서 밤을 지냈는데, ‘노생’이라는 남루한 차림의 청년도 우연히 그곳에 묵었습니다. 청년은 여옹에게 자신이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가난을 면치 못한다며 신세 한탄을 하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노생이 잠든 지 얼마 되지 않아 그가 베고 누운 베개 가운데에 작은 구멍이 생기더니 그것이 점점 커졌습니다. 나중에는 사람이 들어갈 정도까지 커졌습니다.

노생이 그 구멍 안으로 들어가자 큰 집이 한 채 보였습니다. 노생은 그 집에 머물며 집주인에게 잘 보여서 주인 딸과 혼인하고 과거에도 합격해 관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빠른 출세를 시기해 모함하는 무리에 의해 역모죄를 뒤집어썼습니다. 그동안의 공로를 인정받아 겨우 사형을 면한 노생은 멀리 외진 곳으로 유배되고 말았습니다.

노생은 농사를 짓고 살던 지난 시절이 생각났습니다. 그때는 자신에게 약간의 땅이라도 있어서 열심히만 노력만 하면 먹고 사는데 별 지장 없이 살 수 있었는데, 괜스레 벼슬에 욕심을 내 오늘 이 지경에 이르렀구나, 하며 탄식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노생의 누명이 벗겨졌고, 황제는 그를 다시 복직시켰습니다. 그 후 그의 자식들은 모두 좋은 집안 자녀들과 혼인을 했고, 모든 일이 순탄하게 풀려나갔습니다.

나이가 들어 노생의 몸도 약해졌습니다. 그리고 그에게도 세상 어떤 권세로도 막을 수 없고, 어느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는 죽음이 찾아왔습니다.

하품을 하며 잠에서 깬 노생은 조금 전까지 자신에게 있었던 모든 일들이 꿈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허무한 표정을 지으며 일어나 앉았습니다.

옆에서 노생을 바라보던 여옹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습니다.

“인생이란 모두 그처럼 한바탕의 꿈과 같은 것이라네.”

노생은 그제야 꿈속의 모든 일이 자신의 부질없는 헛된 욕망을 잠재우고 깨우쳐주기 위한 여옹의 배려였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밀물과 썰물! 누군가에게 사람들이 몰렸던 것은 자신을 보고 몰린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재물이나 지위나 명예 때문이었습니다. 누군가에게서 사람들이 달아나는 것 역시 같습니다. 그의 재물이나 지위나 명예가 사라져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는 착각했었습니다. 자신이 잘나서 사람들이 몰린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그들은 그들의 이기심으로 그에게 접근했고, 그는 그들의 이기심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했던 겁니다. 그래서 썰물처럼 사람들이 자신에게서 빠져나갔을 때 허탈해지고 배신감을 느꼈던 겁니다. 그러니 이제부터라도 그런 모습이 삶의 실체이고 그것이 자연의 이치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사람들은 세월이 한참 지나고 나서야 그런 사실을 깨닫곤 합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이 한바탕 꿈이었다고 슬퍼하며 후회합니다. 이것 또한 삶의 실체입니다. 다행스러운 점은 우리가 아직도 건강할 때 자연의 이치, 삶의 이치를 알았다는 것입니다. 힘겨워도 그것이 삶이라고 받아들이는 순간 다시 일어설 힘을 얻게 될 겁니다.

여옹과 노생 이야기를 쓴 저자는 이렇게 자신의 소회를 담았습니다.

“인생살이도 같다. 영원 속에 백사장 모래 한 알갱이도 안 되는 시공간을 영위하고, 그 속에서 소유하고 다투고 울부짖는 인생이란 미망이요, 꿈이다. 그것도 깨고 나면 더 슬픈 헛된 꿈에 불과한 것이다. 불가에서는 이처럼 마음의 눈과 귀가 열려 예전의 껍데기만을 보던 꿈과도 같은 삶의 자리에서 벗어나 사물의 본질을 보게 되는 것을 견성(見性)이라고 한다.”

어쩌면 견성은 나이가 주는 선물인지도 모릅니다. 젊었을 때 그토록 소중하게 여겼던 것들이 늙어서야 그것들이 얼마나 하찮은 것인지를 깨닫게 되니까요. 만약 우리가 조금이라도 더 건강할 때 이 견성을 깨달을 수만 있다면 삶이 얼마나 행복해질까요. 아마 지금 내가 이 순간이 그것을 깨닫는 순간이 아닐까요. 지금 미워하고 있는 존재들, 지금 탐하려고 하는 것들이 나이가 더 들어 손발을 움직이기도 힘들어졌을 때도 과연 미워하고 탐할까를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그러면 미움을 던져버리고 사랑으로 관계를 복원시킬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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