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령도 사곶해변 미스터리... 북방 식물 시베리아여뀌의 영토 확장
상태바
백령도 사곶해변 미스터리... 북방 식물 시베리아여뀌의 영토 확장
  • 박정운
  • 승인 2023.08.02 16: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백령도 물범지킴이의 생태일기]
(19) 모래갯벌에 자리잡은 시베리아여뀌
백령도 사곶해변에 서식하는 시베리아여뀌
백령도 사곶해변에 서식하는 시베리아여뀌

 

# 한반도에서 유일한 시베리아여뀌의 서식지 백령도

한반도에서 오직 옹진군 백령도의 사곶해변에 와야만 볼 수 있는 생명체가 있다. 2008년에 국내 식물연구자들에 의해 발견된 이 생명체는, 현재 사곶해변의 일부 지역에서 수 천 개체가 서식하고 있다. 바로 ‘시베리아여뀌’다.

점박이물범을 따라 온 백령도 살이 4년째이던 2022년 9월 4일, 시베리아여뀌 군락지를 처음 관찰했다. 가을철에 이동하고 있는 도요물떼새를 찾아 사곶해변에 갔다가 만난 중부리도요 덕분이었다. 해변 가장자리에 사구식물들이 무성한 곳에서 곤충과 벌레를 잡아 먹고 있는 중부리도요를 카메라로 들여다보던 중에 처음 보는 식물 하나가 눈에 띄였다. 말로만 듣던 시베리아여뀌였다. 북방계식물인 시베리아여뀌 군락지에서 툰드라, 한대지방, 몽골지방 등에 분포한다는 ‘중부리도요’가 먹이를 찾고 있는 풍경이라니!

 

백령도 사곶해변에 서식하는 시베리아여뀌
백령도 사곶해변에 서식하는 시베리아여뀌

 

# 시베리아여뀌라는 이름은 어떻게 지어졌을까!

시베리아여뀌는 Knorringia sibirica (Laxm.) Tzvelev subsp. sibirica로 마디풀과에 속한 여러해살이풀이다. 마디풀과는 전 세계적으로 약 50속의 1,120여종이 북반구를 중심으로 널리 분포하며, 한반도에는 지금까지 11속의 약 100분류군이 알려지고 있다고 한다. 이 중 백령도에서만 확인된 시베리아여뀌는 주로 만주지역을 포함한 중국 동부 및 시베리아지역에 분포하는 종과 같다고 한다.

 

시베리아여뀌속의 전 세계 분포지역
(출처: https://powo.science.kew.org/taxon/urn:lsid:ipni.org:names:944917-1)
시베리아여뀌속의 전 세계 분포지역

 

시베리아여뀌의 생김새는 땅속줄기는 가늘고 마디에서 부정근이 발달했다. 줄기는 눕거나 비스듬히 서고 털이 없으며, 길이 10~45cm, 지름 2~3mm, 마르면 짙은 갈색 또는 다소 붉은색을 띤다. 잎은 장타원상에서 피침형으로 끝이 뾰족하거나 둔하며 밑은 창 모양 또는 쐐기형이다. (참고: 국립생물자원관)

 

꽃이 핀 시베리아여뀌
꽃이 핀 시베리아여뀌

 

백령도에서 발견한 시베리아여뀌에 관한 논문에 따르면, 한국명은 종소명(그 종(種)의 특징을 나타내는 말)의 의미와 기준표본의 채집지를 감안해 ‘시베리아여뀌’로 부여했다. 그리고 영문 추천명은 ‘Siberian knorringia’인데, 국가표준식물목록에 보면 ‘우리식물 주권 바로잡기' 추진을 통해 추천된 영문명이라고 한다.

 

#북방계 식물 시베리아여뀌는 어떻게 백령도의 사곶해변에 오게 됐을까

바닷가 모래땅에서 자라는 것으로 알려진 시베리아여뀌의 백령도 서식지인 사곶해변 역시 천연비행장으로 유명한 모래갯벌지역이다. 이곳 사곶해변의 가장자리 염생식물 서식지 일부 지역에 자리를 잡고 있다. 시베리아여뀌가 자리잡은 이 지역은 백령담수호 조성으로 생긴 제방 아래인데, 퇴적물이 쌓이면서 무른 모래갯벌로 변해가고 있는 곳이다. 씨앗이 많이 맺히는 번식력이 강한 식물로 보이는 시베리아여뀌는 점점 무른 모래갯벌로 변해가고 있는 사곶해변의 일부 지역을 따라 서식범위를 계속 확장하고 있다.

 

사곶해변의 시베리아여뀌 군락지
사곶해변의 시베리아여뀌 군락지

 

그런데 몽골이나 시베리아 일대가 고향인 시베리아여뀌는 어떻게 섬 지역인 백령도의 사곶해변에서 살게 되었을까? 백령도는 여름철에도 30℃가 넘지 않는 비교적 서늘한 기후로 인해 시베리아여뀌, 큰천일사초, 청닭의난초를 비롯해 다수의 북방계 식물이 분포한다. 그럼에도 백령도가 시베리아여뀌의 한반도 내에서 유일한 서식지라는 것은 정말 미스터리하다. 2008년 백령도에서 서식하는 것이 처음 보고되었으나 언제부터, 어떤 경로를 통해 이곳에 들어왔는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고 있다. 또한, 백령도에서 국내의 다른 지역으로 확산됐다는 이야기도 아직은 들리지 않는다.

식물이 멀리 이동하는 일반적인 경우를 보면, 해류를 따라 이동하거나 대륙이동설에 의한 분리, 새를 통한 이동 그리고 인간에 의한 직간접적인 이동 등이 있다. 국내 일부 섬 지역과 해안가에 서식하는 모감주나무는 해류를 따라 씨앗이 이동한 대표적인 경우이다. 대륙이동설에 등장하는 글로솝테리스(Glossopteris, 폐름기 대멸종시기에 절멸)는 고생대 석탄기와 페름기에 무성하게 자랐던 식물로, 이들 식물의 화석이 아프리카 대륙의 남부, 인도의 남부, 오스트레일리아 대륙, 남극 대륙에서 발견되고 있다고 한다. 인간에 의한 직접적인 경우는 제국주의 시기에 전 세계의 식물을 이동시키는 데 사용된 워디언 케이스(Wardian Case, 밀폐된 유리상자)를 이용해 이동한 경우를 볼 수 있다. 그리고 열매를 먹은 새가 똥으로 배출하는 과정에서 옮겨지는 경우를 비롯해 사람들이 옷이나 물품 등에 들러붙어 들어오는 경우 등 경로는 다양하게 있었을 것이다.

 

사곶해변에서 영역을 확장해가고 있는 시베리아여뀌
사곶해변에서 영역을 확장해가고 있는 시베리아여뀌

 

이 처럼 어떤 경로에 의해서 불과 몇 십년 사이에 백령도에 정착했을 것으로 보여지는 시베리아여뀌. 기후위기의 시대, 급변하는 기후변화의 영향 속에서 북방계 식물인 시베리아여뀌는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유입 과정도 채 밝혀지지 않은, 한반도의 유일한 시베리아여뀌의 서식지 백령도 사곶해변에서 시베리아여뀌를 계속 볼 수 있을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시민과 함께하는 인터넷 뉴스 월 5,000원으로 소통하는 자발적 후원독자 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