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란 결국 내가 산타가 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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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란 결국 내가 산타가 되는 것”
  • 최원영
  • 승인 2023.07.24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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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영의 책갈피] 제114화

 

쑥스럽지만 오늘은 제가 사춘기 때의 아팠던 경험을 전해드리면서 시작하겠습니다.

중학교 3학년 때였습니다. 저는 동급생인 동네 친구 둘과 늘 함께 시간을 보냈습니다. 한 친구는 몸이 무척 컸고 성격도 시원시원했습니다. 그는 리더십까지 있었습니다. 내성적이던 저는 그의 모든 면이 부러웠습니다.

동네에는 중학교 2학년 여학생 세 명도 있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우리는 자주 어울렸습니다. 어느 날부터 저는 세 여학생 중의 한 소녀를 볼 때마다 가슴이 설렜습니다. 그녀를 좋아했던 겁니다.

어느 날, 제 마음을 그녀에게 전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날 밤이었습니다. 그녀에게 사랑의 편지를 쓰고 찢고 또 쓰기를 반복하며 밤을 지새웠고, 그렇게 밤새워 써서 곱게 접은 편지를 가슴에 품고 다니며 그녀에게 전해줄 기회만 엿보며 또 며칠을 보냈습니다. 어렵사리 편지를 건넸습니다. 그때 그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왜 이런 편지를 받아야 해?”

자존심이 무척 상했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편지를 읽으면 생각이 달라질 거라며 애써 자위했습니다. 답장을 기다리는 나날이 이어졌습니다. 하루하루가 숨이 막힐 정도로 힘들었습니다.

그렇게 지낸 어느 날 저녁이었습니다. 대문에 ‘툭’ 하고 무엇인가 떨어지는 소리가 나서 그곳에 가보니 손수건으로 묶은 것이 있었습니다. 그녀가 보낸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마음이 울렁거렸는지 모릅니다. 벅차오르는 가슴을 주체할 수가 없었습니다. 형들에게 들킬까 봐 옥상으로 올라갔습니다. 희미한 달빛을 불빛 삼아 조심조심 손수건을 펼쳐보았습니다.

그런데, 아니, 이게 웬일입니까. 손수건 안에는 시커먼 재만 있는 게 아닌가요. 제 편지를 불태워 재로 만들어 보낸 겁니다.

그때의 심정이 지금도 선합니다. 하늘을 올려보았습니다. 달은 어제와 똑같이 떠 있었지만, 그날의 달은 왜 그리도 처량해 보이는지 마치 제 모습과도 같았습니다.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습니다. 그렇게 몇 시간을 옥상에서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어리거나 나이가 들었거나 상관없이 사랑의 감정은 설렘과 절망이 수시로 교차하는 것 같습니다. 설렘이 있을 때는 이 설렘이 영원할 것만 같고, 절망이 왔을 때는 이 절망이 영원할 것만 같습니다.

《언어의 온도》를 쓴 이기주 씨는 매년 12월 31일이면 선배와 술자리를 갖는다고 합니다. 어느 해인가 글을 쓰며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토로했더니, 그 말을 들은 선배가 이런 말을 들려주었다고 합니다.

“기주야, 인생 말이지.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 어찌 보면 간단해. 산타클로스를 믿다가, 또는 믿지 않다가, 결국에는 본인이 산타할아버지가 되는 거야. 그게 인생이야.”

그렇습니다. 누구에게나 이것이 삶의 진실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쓰러졌다가도 다시 일어나 살려고 버둥거릴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희망이라는 산타할아버지를 가슴에 품고 버티고 버티다가 주저앉고, 그러면 누군가가 그것은 산타할아버지가 너를 단련시켜 큰일을 맡기기 위해 준비한 일이라는 위로의 말을 믿고, 다시 일어나기도 합니다.

이러기를 반복하다 또 어느 날은 성공하기도 합니다. 이제 산타할아버지는 가슴속에서 사라집니다. 그러던 어느 날 다시 실패의 나락에 빠지고, 다시 그 늪에서 벗어나기를 반복하며 살다가, 어느 날 나이가 들고 나서 자신이 산타할아버지가 되어 누군가를 위로하며 희망을 전하는 것, 이것이 삶의 실체이고 사랑의 참모습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이렇게 살면서 겪는 아픔과 슬픔은 그저 사라지는 것만은 아닐 겁니다. 아픔에서 벗어나기까지의 그 모진 경험들이 쌓여 어느 날 누군가의 아픔에 위로가 되어줄 겁니다. 산타를 믿고 일어설 수 있었던 우리는 훗날 누군가의 산타가 되어 그들에게 따뜻한 손을 내미는 것! 이게 삶이고, 이게 사랑의 민낯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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