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이 흥하는 섬, 영흥
상태바
영혼이 흥하는 섬, 영흥
  • 김정아
  • 승인 2023.07.14 15:4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속닥속닥 인천 설화]
(18) 영흥도

영흥도라는 섬이름에는 고려왕조와 얽힌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고려 말 왕손 익령군(翼靈君) 왕기(王埼)의 기구한 운명에 관한 이야기이다. 나라가 망할 것을 미리 예측한 익령군은 가족들을 데리고 개경을 탈출해 바닷길에 나섰다.

그러다 폭풍을 만났는데 구사일생으로 살아서 영흥도에 도착했다. 익령군은 신분을 숨기고 영흥도에 은거하면서 후손들의 화를 피하기 위해 옥(玉) 씨와 전(全) 씨로 성을 바꾸고 말을 기르며 살았다고 전해진다.

그때부터 바다에 빠져 죽을 뻔했던 익령군(靈)이 하늘의 뜻으로 다시 살았다(興) 해서 섬 이름을 영흥도라고 했다고 전한다.

어떤 자료에는 영흥도의 명칭에 다른 얘기가 전해진다. 고려가 망하자 고려 왕족의 후예인 왕씨가 영흥도에 피신 정착하면서 살고 있었다. 어느날 그가 영흥도에서 제일 높은 산 국사봉에 올라와 나라를 생각하며 한양을 향하여 고려국이 다시 흥할 것을 신령께 기원한 곳이라 하여 영흥도(靈興島)라 불리어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국사봉(國思峰)은 영흥도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고려 말 이성계에 의해 몰락당한 고려 왕족들이 영흥도로 피난하여 이 산에 올라가 한양을 바라보며 나라를 생각했다하여 국사봉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영흥도01_36.0x25.5cm_종이 위 채색_2023
영흥도01_36.0x25.5cm_종이 위 채색_2023

 

전설에 의한 지명 유래는 이것 말고도 더 있다. 옛날 중국 상인이 우리나라에 오던 중 풍랑을 만나 표류하게 되었다. 이 때 마침 이 배가 침몰하기 직전 어디에서 나타났는지 커다란 거북이 한 마리가 배 밑창으로 기어 들어가 파손된 구멍을 막아주어 간신히 육지로 댈 수가 있게 되었다고 한다. 그 후 사람들은 이 섬에서 신령이 도와서 이 배가 무사히 뭍으로 귀환할 수 있었다고 여기어 이 섬을 ‘영흥도’라 하게 되었다고 한다.

 

영흥도02_25.5x36.0_종이 위 채색_2023
영흥도02_25.5x36.0_종이 위 채색_2023

 

영흥도의 유명한 곳으로는 소사나무 군락지가 아름다운 십리포해수욕장을 꼽을 수 있다.

십리포(十里浦)란 이름은 포구에서 이곳까지의 거리가 십리라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해변 서쪽으로는 기암괴석이 우뚝 솟아 있어 아름다운 경관을 이루고 해수욕장 뒤편으로는 소사나무가 군락지를 이루어 해변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다. 약 350그루의 소사나무가 멋진 숲을 이루고 있어 전국적으로 하나밖에 없는 ‘해변괴수목’(怪樹木, 기이한 나무) 지역으로 보호받고 있다.

 

영흥도03_36.0x25.5cm_종이 위 채색_2023
영흥도03_36.0x25.5cm_종이 위 채색_2023

 

장경리해변과 십리포해변 사이에는 농어바위라는 곳이 있다. 농어바위 전설이 전해져 온다. 옛날에 몸이 불편한 홀어머니를 봉양하고 있던 가난한 어부가 있었다. 어느날 어부는 잠을 자다 꿈을 꾸었는데 많은 농어를 낚은 것이다. 다음날 그 바위를 찾아 낚시를 하였는데 커다란 농어를 잡았다. 어머니는 농어를 먹고 건강이 좋아져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았다. 또한 어부는 많은 농어를 잡아 큰 부자가 되었다. 이후 그 바위를 농어바위라 부르고 있다고 전해진다.

영흥도는 2001년 영흥대교로 육지와 연결돼 여행이 편한 섬이다. 영흥대교를 건너 영흥익령군길을 트래킹하며 섬의 역사적 의미를 느끼고, 다양한 갯벌체험을 할 수 있다. 바다향기를 사랑하는 많은 관광객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시민과 함께하는 인터넷 뉴스 월 5,000원으로 소통하는 자발적 후원독자 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