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출발을 응원하는 봄동처럼, 열우물 전통시장 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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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출발을 응원하는 봄동처럼, 열우물 전통시장 일대
  • 유광식
  • 승인 2023.03.06 14: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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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유람일기]
(99) 십정1동 십정종합시장 일대- 유광식/ 시각예술 작가

 

십정종합시장에 멍석을 깐 봄동, 2023ⓒ유광식
십정종합시장에 멍석을 깐 봄동, 2023ⓒ유광식

 

바야흐로 경칩(驚蟄)이다. 만물이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시기라고 한다. 쌀쌀한 날씨임에도 쨍한 햇살이 함께 느껴지며 새 계절의 시작을 알려주었다. 어느 해보다도 좀 더 특별한 날이 되었을 입학과 개학식도 있었다. 마스크 해제가 일상에 가져다준 변화는 꽤나 크다. 더는 유리창 너머의 자연이 아닌, 알싸한 공기와의 생생한 만남이다. 


봄은 찾아왔건만 밖으로 눈을 돌리면 심상치 않은 일들이 많다. 기온이 오르면서 대지가 진창이 되어 버려 우크라이나-러시아의 교전은 말 그대로 진흙탕 속 싸움이다. 전쟁에서는 승리가 없다고 하는데, 당장이라도 끝내는 것밖에는 달리 도리가 없어 보인다. 이웃 나라 일본은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온 힘을 쏟고 있는 모양새다. 불 보듯 뻔한 악영향이 예상된다. 올해 3월 11일로 후쿠시마 원전 사고 12주기가 되었다. 봄이라고는 하지만 마냥 반가워만 할 수 없는 기억들이 여전하다.

 

배곶로(십정고개-동암우체국), 2023ⓒ유광식
배곶로(십정고개-동암우체국), 2023ⓒ유광식
무인택배함이 있는 열우물 놀이공원(공원 뒤로 부평더샾), 2023ⓒ유광식
무인택배함이 있는 열우물 놀이공원(공원 뒤로 부평더샾), 2023ⓒ유광식

    

동암역에서 열우물로를 따라 십정초 아래를 거닐었다. 십정종합시장(열우물 전통시장)을 비롯해 십정동성당, 마흔쯤이 된 시민아파트, 동암국민주택, 옛 주안변전소(십정공영주차장)와 인사한다. 기다란 슬로프(slope)를 연상시키는 배곶로는 십정고개 넘어 산업공단 노동자들을 동암역 주변까지 안내했을 생활도로이다. 이제는 오래전 이야기가 된 십정동 열우물 마을에는 우물물 먹고 자란 듯 거대한 높이의 아파트들이 고개 전체를 휘감고 있었다. 열우물로를 사이로 위아래의 거주 환경이 극명하게 대비된다. 그런데 이 일대의 전통시장인 십정종합시장은 붐빌 것 같다. 한낮엔 한산하지만 오밀조밀한 가게 상호에서 옛 시대의 기억이 소환되고 새로 생긴 상점과의 오묘한 중첩은 점점 봄의 바람을 북돋는다. 영화 ‘Stand By Me/1986’가 새록새록 떠오른다. 

 

조화와 생화로 봄을 수선하는 어느 꽃집, 2023ⓒ김주혜
조화와 생화로 봄을 수선하는 어느 꽃집, 2023ⓒ김주혜
낡았지만 남아 줘서 고마운 빙그레슈퍼, 2022ⓒ유광식
낡았지만 남아 줘서 고마운 빙그레슈퍼, 2022ⓒ유광식
시장 앞 3층 규모의 청화탕(쌍화탕 못지않은 자양 강장), 2022ⓒ유광식
시장 앞 3층 규모의 청화탕(쌍화탕 못지않은 자양 강장), 2022ⓒ유광식

 

십정동성당 옆으로 시민아파트가 있고 그 위로는 옛 주안변전소가 오래도록 방치되어 있었다고 한다. 만성 주차난에 허덕이던 마을엔 구청이 작년부터 변전소 터에 공영주차장을 조성해 운영하고 있었다. 주차장 뒤편에는 김포빌라가 있어 풍경에 재치를 더하고, 높고 낮은 언덕길 단독주택 안에는 유난히 감나무나 대추나무가 한 그루씩 자라고 있다. 겨울 한 철에는 지구대 옆이자 성당 모퉁이에서 붕어빵을 팔던 모습도 기억난다. 외국인 노동자들도 많고 인근 축산물도매시장 영향으로 고기 판매점이 많은 것도 특색으로 꼽힌다. 

 

옛 주안변전소에서 내려다본 시민아파트(A, B동 40세대), 2021ⓒ유광식
옛 주안변전소에서 내려다본 시민아파트(A, B동 40세대), 2021ⓒ유광식
마흔두 살이 된 동암국민주택(마을버스 승차장이기도 하다), 2022ⓒ유광식
마흔두 살이 된 동암국민주택(마을버스 승차장이기도 하다), 2022ⓒ유광식
자연 급수 시스템(봄비가 언제 오려나), 2022ⓒ유광식
자연 급수 시스템(봄비가 언제 오려나), 2022ⓒ유광식

 

잠시 시장 안으로 걸음을 옮겨본다. 채소가게에서는 겨울을 견뎌내고 달달한 맛을 피워내는 봄동이 주인공이었다. 안 그래도 요새는 남해 시금치에 이어 봄동을 자주 요리해 먹는다. 매실청을 넣은 겉절이는 물론이거니와 전으로도 부쳐 먹고 고기 쌈으로도 안성맞춤이다. 겨울꽃처럼 넓적한 봄동은 가격이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저렴했다. 시금치와 봄동의 단맛은 겨울 안에 숨겨 둔 1℃의 마음이 아닌가 싶다. 최근 냉장고 옆면을 봄동이 그려진 포스터로 장식했다. 지금부터는 봄동 먹고 봄을 바라고 ‘봄보로 봄봄’ 노래를 부른다. 

 

십정종합시장 내 생선들, 2022ⓒ김주혜
십정종합시장 내 생선들, 2022ⓒ김주혜
남쪽에서 올라 온 봄동과 시금치 등 채소 친구들, 2023ⓒ유광식
남쪽에서 올라 온 봄동과 시금치 등 채소 친구들, 2023ⓒ유광식
시장 중앙의 식당가(없으면 왠지 서운한 떡집), 2023ⓒ유광식
시장 중앙의 식당가(없으면 왠지 서운한 떡집), 2023ⓒ유광식

 

시장에서는 수산물, 과일, 떡집, 주점, 의류, 생활용품점 등 어제오늘 할 것 없이 내일도 어김없이 상인들의 노고가 단맛 우러나듯 지켜질 것 같다. 시장 정문 건너편 마을금고 앞에는 늘 허리를 굽혀 천천히 조개를 까는 할머니 한 분이 계신다. 손수레에 실어 온 어패류를 까서 판매하는 어르신의 모습은 보호막 없는 노상이라 좀 더 시려 보였다. 한번은 두툼한 천 원짜리 거스름돈을 세고 계시는 어르신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저울이 있었지만, 그날 매출은 생각만큼 무겁지 않았을 것이다. 그저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만 무성하다. 

 

십정종합시장 정문(1번 출입구), 2022ⓒ유광식
십정종합시장 정문(1번 출입구), 2022ⓒ유광식
올해 104번째 삼일절, 2023ⓒ유광식
올해 104번째 삼일절, 2023ⓒ유광식

 

걷다 보니 ‘건거니’라는 상호가 눈에 띄었다. 알아보니 간단한 반찬(건건이)이라는 뜻의 방언임을 배우게 되었다. 운율이 재밌어서 자꾸 읊조리게 된다. 건너 건너 상점이고 걷자니 십정동이었다는. 시장 아케이드가 둥글게 높아서 그런지 마치 한 동의 거대한 비닐하우스 같았다. 겨울 비닐하우스에 보관된 신선한 과일, 채소, 수산물이 인근 빌라 주택가로 전달되어 비로소 집 안이 꽃피는 것 같은 장면을 상상해본다.


바로 얼마 전 미추홀구 빌라왕 전세 사기 피해로 부당한 현실에 좌절해 자기 집에서 안타까운 선택을 한 30대 청년 소식에 큰 충격을 받았다. 부당한 사회 현실이 거주 환경을 공격하는 일이 없었으면 했는데, 결국 사고가 난 것이다. 최근 자주 먹은 봄동에서 희미하나 끈질긴 생명을 느낄 수 있었다. 풍성하고 활력 있는 곡선의 모습에서 작은 일상을 지켜주는 보호막을 연상했는지도 모른다. 삶을 긍정하게 하는 힘이 바로 안전이다. 올해는 더욱 내외적으로 ‘안전’을 쬐고 싶다. 안전이 제일이다. 

 

볕 쬐기 딱 좋은 두 자리, 2023ⓒ유광식
볕 쬐기 딱 좋은 두 자리, 2023ⓒ유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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