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일(51)마켓〉에서 배우는 나눔의 경제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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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51)마켓〉에서 배우는 나눔의 경제생활
  • 유미경
  • 승인 2023.02.16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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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대유쌤의 알콩달콩 교실이야기]
(2) 오일(51)마켓 프로젝트 활동 – 유미경 / 인천간재울초교 교사
23평 초등학교 교실, 그 작은 공간에서 벌어지는 알콩달콩 다양한 삶, 그 우주의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인천의 초등학교에서 30여년간 아이들을 가르쳐온 ‘나대는’ 유 선생 나대유쌤과 아이들의 동거 이야기입니다. 교실 이야기를 바탕으로 자라나는 어린이들을 좀 더 이해하고 좀 더 사랑으로 바라볼 수 있는 마음에서 연재합니다.

 

당근 마켓을 이용해 보신 적 있으시나요?

필자는 최근 이사를 앞두고 그동안 애정을 갖고 사용했던 가족들의 추억이 깃든 생활 용품들을 당근마켓( 주로 자신이 사는 동네를 기반으로 한 플리마켓(벼룩시장) 앱으로서 수수료를 내지 않고 개인 간의 중고 직거래를 할 수 있는 앱)을 이용하여 새로운 주인에게 양도하는 일을 시도해보았다.

나에게는 더 이상 필요 없는 물건이 다른 누군가에게 요긴하게 사용된다고 생각하니 뿌듯하기도 하고, 나와 함께 희로애락을 같이 한 물건이 쓰레기 더미로 폐기 처분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니 상실에 대한 애잔한 마음을 덜 수 있어서 좋았다. 더불어, 물건을 버림으로서 생기는 환경오염에 대한 부채감을 줄일 수 있다는 점 역시 매력적이었다.

무엇보다 우리 동네에서 직거래를 할 수 있다는 점이 편리했다. 또 무료 나눔을 할 때는 뭔가 어제보다는 더 나은 사람이 된 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거래자간의 상호 신뢰와 예의가 바탕이 된다면 이런 개인 간의 직거래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리라.

필자의 당근마켓을 통한 직거래와 나눔의 실천을 교실 안으로 가져와서 아이들과 함께 실천해보았다. 필자의 학급의 오일마켓에 얽힌 알콩달콩한 교실 이야기를 들려드리려 한다.

 

“이번 오일(51) 마켓은 2월 7일입니다.”

“와 ~ !! ”

 

아이들의 함성 소리로 교실은 흥분의 도가니가 되었다.

2월 9일 종업식을 앞두고 우리 반은 2월 7일 오일마켓을 열었다. 오일마켓은 학기 초 우리 반 아이들이 스스로 작명한 이름으로 두 가지의 의미를 지닌 다의어다. 5학년 1반을 줄인 51을 한글 소리로 ‘오일’이라고 한 뜻이 첫 번째 의미이고, 오일(oil)을 의미하는 뜻이 두 번째 의미이다.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대한민국에서 오일을 아껴서 물자 절약을 해보자는 대의가 내포되어 있기도 하다. 아무튼 이 이름은 우리 반의 다수 학생들에 의해 선택되어졌고 1학기말과 2학기말에 1회씩 총 2회를 실시했다. 오일마켓의 실시 과정은 다음과 같았다.

 

<사전 준비단계> 오일마켓 준비하기

오일마켓 일정이 정해지면 학생들은 전 주 주말에 가정에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물건들 중 팔 물건을 준비한다. (주의사항 : 자신이 쓸 수 없는 물건은 다른 학생들에게 팔아서는 절대 안 됨을 강조한다.) 그리고 오일마켓 하루 전날 학생들은 자신이 팔 물건을 홍보하는 홍보 포스터를 만든다. 이렇게 만든 포스터는 책상 앞에 붙여둔다.

자신의 가게와 물건 홍보 포스터 만들기
자신의 가게와 물건 홍보 포스터 만들기

 

<실시 단계> 오일마켓 열기

오일마켓을 실시하는 날 아침의 교실은 왁자지껄 흡사 시골 읍내의 5일장을 연상시킨다. 두 손 가득 물건을 빵빵하게 들고 교실 문으로 들어오는 아이들의 목소리엔 설레임과 흥분이 가득하다. “나는 ~을 팔 거다”라고 벌써부터 홍보하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나는 “00가 가져온 물건을 살 거야”라고 미리 자신이 살 물건을 선점하는 아이들도 있다. 아이들 중 경제 감각을 가지고 있는 친구들은 자신이 팔 물건의 장점을 홍보하고 다니는 아이들도 있다. 이처럼 오일마켓은 학급의 작은 축제가 된다.

“이제 오늘의 오일마켓을 열어보겠습니다. ”

먼저 전체 학생들의 책상을 ㅁ자로 만들고 학생들이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작은 통로를 만든다. 그리고 자신이 가져온 물건들을 예쁘게 진열한다.

오일마켓을 위해 ㅁ자로 책상 배치하기
오일마켓을 위해 ㅁ자로 책상 배치하기

“ 이제 여러분에게 돈을 나눠줄게요”

이 순간 학생들은 긴장한다. 오일마켓에서 사용하는 돈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화폐가 아니다.

이 시간만 통용되는 우리들만의 화폐, 그것은 바로 흔하디 흔한 퍼즐조각

오일마켓의 화폐가 되는 퍼즐 조각들
오일마켓의 화폐가 되는 퍼즐 조각들

모든 물건의 가격은 퍼즐 조각 1개이다. 물건이 작으면 여러 개를 묶어서 퍼즐 조각 1개에 판다.

(퍼즐 조각을 사용한 이유는 간단하다. 1년에 딱 2번 사용하는 화폐를 위해 모의 지폐를 만들고 인쇄하고 코팅하는 번거로움을 귀찮아하는 나의 게으름과 나름 물자를 낭비하는 일에 일조하지 않겠다는 얄팍한 변명 때문이었다. )

그렇다면 우리 반에서 돈은 어떻게 벌까?

초등 교사라면 학급 운영의 방법으로 누구나 한번쯤 스티커 제도를 사용한다. 이러한 스티커의 개수에 따라 학생들은 퍼즐조각을 받게 된다. 예를 들어 스티커 10개당 퍼즐 조각 1개

학생이 1학기 동안 모은 스티커판
학생이 1학기 동안 모은 스티커판

그렇다면 스티커는 어떻게 받게 될까?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 받을까? 달리기를 잘하는 학생? 그림을 잘 그리는 학생?

결코 아니다.

잘하는 학생들이 아니라, 성실히 참여하는 학생들이 받는다.

필자의 학급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활동에 성실히 참여하는 학생들에게 지급된다. 예를 들어 마니또 활동 (한 달에 한 번 자신의 비밀 친구 마니또를 도와주는 활동)을 열심히 하는 학생, 주말에 1주일간 수업 시간에 정리한 배움노트와 수학 익힘책을 부모님께 보여드리고 싸인 받아오는 학생 등..,

학급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학급 활동은 학생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없이는 성공할 수 없다. 이러한 활동들이 잘 이루어질 수 있도록 동기 부여를 하는 방법으로 스티커제도를 운영하고 있고, 이 스티커는 학기말이면 어김없이 돈으로 바뀌어 실제로 물건을 구입할 수 있게 된다.

“이제 시작이다. ”

학생들은 A팀과 B팀으로 나뉘어 물건을 사고 판다. 만약 내가 A팀이면 먼저 물건을 사러 가고, B팀인 나의 짝은 자신의 물건과 짝인 나의 물건까지 함께 팔아준다. 그렇게 정해진 시간이 지나면 다시 역할이 바뀐다.

물건을 사고 파는 학생들
물건을 사고 파는 학생들

오일마켓을 하는 동안 교실 안은 왁자지껄 시장과 비슷하다. 여기에서 진열된 물건을 구경하는 것에 덤으로 재미를 더하는 것은 학생들의 다양한 상점들의 이벤트들이다. 어떤 학생은 돌림판을 돌려서 뽑기로 사탕을 주기도 하고, 악어 이빨 속에 손을 넣어서 초콜릿을 주기도 했다. 아이들은 단순히 물건을 파는 것뿐만 아니라, 다양한 이벤트를 준비하여 즐기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교사인 필자도 딸 아이가 초등학교 때 썼던 물건을 팔았고, 그 돈으로 필요한 물건을 샀다. 그리고 악어 이빨에도 손을 넣었다. 악어 이빨이 하나도 아프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지만 손을 넣는 순간 나도 모르게 “ 으 윽 ~ ” 하는 비명이 나왔다. 다행히 악어 이빨은 안 닫혔고 초콜릿 2개를 선물로 받았다. 어른인 나도 이런데 아이들은 얼마나 즐거웠을까!! 이렇게 재미있는 이벤트를 준비해온 아이들이 고맙고 기특하다. ‘ 음 ~ 나보다 낫구나!! ’

(재미있는 이벤트가 가득한 가게들)
재미있는 이벤트가 가득한 가게들

이렇게 판매자와 소비자의 역할을 몇 번 바꾸어 물건을 사고 팔다 보면 자신이 가져온 물건이 모두 소진되면 오일마켓은 끝나게 된다.

물론 마켓이 끝나고 나면 돈으로 사용된 퍼즐조각은 다시 흔하디 흔한 퍼즐로 바뀐다. 마치 신데렐라의 호박 마차가 다시 호박으로 바뀌듯이...

 

<사후 단계> 오일마켓을 하고나서 느낀 점 나누기

한바탕 마켓이 끝나고 나면 흥분한 아이들을 진정시켜주는 느낀 점 글쓰기 시간을 갖는다.

자신이 산 물건을 사진 촬영하여 페들랫(padlet, 실시간 협업 웹 플랫폼)에 올리고 느낀 점을 쓴다. (물론 이 페들랫에는 사전에 만들었던 홍보물과 자신이 팔 물건의 사진도 순차적으로 올라와 있다. )

오일마켓 준비 및 오일마켓 열기 페들랫(23.02.07)
오일마켓 준비 및 오일마켓 열기 페들랫(23.02.07)

학생들의 경제활동과 느낀 점을 한 명씩 돌아가며 모두 발표 한다. 발표를 듣다보면 학생들이 선호하는 물건이 각자 다르고, 물건을 구매한 이유도 제각각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친구들에게 산 물건이 아주 마음에 든다고 발표를 하면, 그 물건을 판 친구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고 했다. 또한, 자신의 물건이 잘 팔려서 기분이 좋았다는 말도 했다.

 

“학기 중에 열심히 스티커를 모은 것에 대한 보람도 있었고 필요한 걸 사서 기분도 좋았고 필요 없는 걸 팔아서 청소도 돼서 좋았습니다.” (김00)

“1학기 때도 해봐서 아는데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게 재밌고 좋았다. 솔직히 내 물건을 아무도 안 살 것 같았는데 의외로 애들이 많이 사서 기분이 좋았다. 다음에도 해보고 싶다.” (허00)

“ 오늘 이렇게 물건을 사고 파니까 경제를 배울 수 있어서 좋았고 재미도 있었고 학기 중에 스티커 모은 보람이 있어요!! 그리고 필요 없는 물건도 처리해서 청소도 돼서 좋았어요.” (김00)

 

이렇게 우리 반 학생들은 오일마켓을 하면서 나에게 필요 없는 물건을 나눠 쓰는 즐거운 재활용의 경제 활동을 체험하게 되었다. 또한, 아이들은 자신에게 필요한 물건 외에도 동생을 위해서 또는 엄마를 위해서 물건을 구입하는 예쁜 마음을 보여주기도 했다. 한 가득 물건을 들고 돌아가는 아이들의 발걸음이 가볍게 느껴진다. 그리고 교사인 필자 역시 우리 반 친구에게서 산 뜨게 컵 받침을 매일 사용하면서 그 물건을 판 학생이 고마워 옅은 미소를 짓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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