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뭐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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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뭐길래!
  • 장현정
  • 승인 2020.02.12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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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 일곱 살의 돌돌이 이야기 - 장현정 / 공감미술치료센터장

 

"엄마, 나는 일곱 살이고 쟤는 여섯 살인데 자꾸 야라고 불러

 

아들이 세 번째 와서 이르고 있었다. 아직 호칭이 익숙하지 않은 동생이 자꾸 친구인 듯 대하는 모양이었다. 한 살 두 살 차이는 본인에게 너무나도 중요한 문제일 테다. 이해가 가면서도 자꾸 일러대니 같이 있던 엄마들에게 약간 민망해졌다.

 

작년 sbs스페셜 왜 반말하세요?’에서 한국의 서열문화에 대해 다루었다. 한국 사람들은 나이직위에 따른 서열구조를 따르고 있고 이에 매우 민감하다. 다큐에 나온 언어학 학자들에 의하면 이러한 서열문화는 일제시대 통치의 수단으로 자리 잡아 현재까지 이르게 되었다고 한다.

 

때문에 다큐의 관찰 카메라에 나온 어린 아이들이 나이 순으로 장난감의 우위를 점하려고 하고, 나이가 어린 아이에게 바로 반말을 하거나, 나이를 기준으로 친구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모습은 더욱 인상적으로 느껴졌다. 심지어 아이들은 상대방의 이름을 묻지도 않고 나이부터 묻고 있었다. 한국에서 친구라는 의미가 나와 마음이 통하는 사람이 아니라, ‘나이가 같은 사람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한 외국인의 인터뷰도 기억에 남았다.

 

아들에게 누나에 대해 가르치기 시작한 것은 돌 무렵이었다. 그때 한창 말을 배워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하는 것을 좋아할 그 무렵,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는 젊은 여학생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아줌마라고 하는 바람에 깜짝 놀랐던 적이 있었다. 놀이터나 어린이집에서 아무에게나 라고 하다가 한 대 얻어맞지 않을까 싶어 자꾸자꾸 가르쳤다. 아이가 혹여나 미움 받을까 걱정되어 서둘러 호칭을 가르치게 되는 것도 그만큼 우리 사회가 이에 민감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다가 일곱 살이 되기를 손꼽아 기다리던 아들은, 올해 일곱 살이 되자마자 너무나 기쁜 나머지 과자를 먹을 때도 일곱 개씩 먹을 정도였다. 어느 날은 다음과 같이 말했는데, 앞으로 아이를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많이 고민 하게 되는 이야기였다.

 

엄마, 한 살은 두 살에게 까불면 안 되고, 두 살은 세 살에게 까불면 안 되고, 세 살은 네 살에게 까불면 안 되고, 네 살은 다섯 살에게 까불면 안 되고, 다섯 살은 여섯 살에게 까불면 안 되고, 여섯 살은 일곱 살에게 까불면 안 돼.

 

나이가 많고 권위 있는 사람 앞에서 자신을 낮추느라 해야 할 말을 하지 못하거나 긴장하여 엉뚱한 행동을 했던 사회초년생 때의 경험이 있다. 그들의 부당한 행동에 대해서도 거절하지 못하고 심지어 부당함을 느끼지도 못했던 오래전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나이가 많으면 더 높고 대단한 사람이니 잘 대해야 하고, 나이가 어리면 더 낮은 사람이라 막 대해도 된다는 말인가. 나이가 많은 사람의 행동이나 선택은 과연 늘 합리적인가? 늘 옳은가? 이 물음은 이십대의 내가 늘 생각했던 불만이자 아쉬움이었다.

 

이제는 마흔을 넘긴 친구들, 기관의 중간관리자가 된 동기들을 만나 이야기를 하다보면 때때로 요즘 세대의 당돌함에 대한 주제가 나온다. 한참을 이야기하다보면 결론은 그들의 어떤 부분은 이해가 가지 않지만 그래도 꼰대는 되지 말자로 내려진다. 예전 우리의 모습을 생각하자고. 우리도 그때 그랬노라고. 나이가 뭣이 중하겠냐고 그렇게 서로를 위로하고 다짐하곤 한다.

 

이야기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아이들과 엄마들이 모여 함께 놀고 있던 그날, 아들이 세 번째 라고 했다며 득달같이 달려오니 민망해진 내가 말했다.

 

우리 아들은 한 두 살 가지고 저러더라. 좀 넘어가주지, 속상하게...”

 

여덟 살 딸과 함께 온 엄마가 말했다.

 

내 딸이 아까 동생들에게 존댓말 쓰라고 했어.”

 

우리는 모두 큰 소리로 웃었다. 한 편으론 약간 씁쓸했다. 나이가 뭐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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