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딸 이쁜이, 입분이, 효진이, 도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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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딸 이쁜이, 입분이, 효진이, 도영이
  • 권근영
  • 승인 2020.02.0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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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남숙과 형우의 둘째 아이

 

 

2020년 새 기획연재 <송림1181번지, 수도국산 달동네를 기억하며>1954년부터 1998년까지 수도국산 달동네 송림1181번지에 살던 정남숙님과 그의 가족들의 구술을 바탕으로 격주 연재합니다. 어린 시절을 송림동에서 보낸 남숙의 손녀 영이가 가족들을 만나 그 시절, 그 이야기를 듣고, 글로 옮깁니다. 어렵고 가난했던 시절, 서로를 의지해 살아가던 가족들의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보려고 합니다.

 

 

1959년 남숙은 송림동 집 마당에서 진통을 느꼈다. 뱃속에서 애가 돌면서 나올 채비를 하느라 배가 아픈 것이다. 첫째 인구는 밤새도록 비실거리다 새벽에 낳았는데, 둘째는 힘 안 들이고 금방 낳았다. 낳아놓고 보니 눈이 동그랗고 얼굴이 둥글납작한 게 참 예뻤다. 쌍꺼풀이 졌고 얼굴은 허여멀건 게 꼭 인형 같았다. 동네 여자들은 남숙네로 자주 마실 나왔다. 남숙네는 동네 모든 소식을 들을 수 있는 곳이기도 했는데, 아이를 보고 싶어서 더 자주 모여들었다. 동네 여자들은 남숙의 둘째 아이를 이쁜아하고 불렀다.

 

남숙이 아이를 마루에 뉘어 놓고 마당에서 기저귀를 빠는 사이, 동네 여자들은 다른 집으로 몰려가면서 꼭 아이를 데려갔다. 기저귀를 널고 집을 한바탕 정리하고 동네를 한 바퀴 돌면 아이를 금방 찾을 수 있었다. 가끔 동네 여자들이 장난친다고 아이를 감춰 놓기도 했다. 남숙이 겁먹은 얼굴로 아이를 찾으러 다니면, 짜니 할머니는 고생하지 말고 집에 가서 기다리고 있으라고 했다. 그러면 얼마 지나지 않아 짓궂은 여자 몇몇이 아이 젖 먹이라며 배고픈 아이를 안고 나타나곤 했다.

 

형우는 동사무소에 출생신고를 하러 갔다. 직원이 아이 이름이 무어냐고 물으니, 그제야 형우는 아이 이름을 짓지 않았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첫째 인구는 아들이라 강화도 종친회를 찾아가 항렬을 따져 물어 이름을 지어왔는데, 딸 아이의 이름은 지을 생각조차 못 했다. 형우는 흔한 이름들을 떠올렸다. 윤달에 낳으면 윤자, 봄에 태어나면 춘희, 순하게 살라고 순이, 여자로서 행실이 곧으라고 정숙이. 그런 이름들 사이에서 동네 여자들이 이쁜아하고 부르던 게 생각이 났다. 형우는 직원에게 아이 이름이 이쁜이라고 알려주었다. 직원은 이쁜의 자는 한자에는 없는 글자이기 때문에 사용할 수 없는 이름이라고 말했다. 형우는 학교에 다닌 적도, 한자를 배운 적도 없었다. 어떤 한자가 이름으로 쓰일 수 있는지 없는지도 몰랐다. 직원은 이쁜과 발음이 비슷한 설 자에 나눌 을 써서 입분이라는 이름을 적어주었고, 그래서 둘째 아이의 이름이 입분이가 되었다.

 

송림동 집 안방. 형우와 도영
송림동 집 안방. 형우와 도영

 

입분은 어려서부터 손이 야무지고 재주가 많은 게 형우를 닮았다. 형우는 말수가 적고 손재주가 좋았고, 집에 필요한 것들을 손수 만들었다. 형우와 남숙이 살던 송림동 집은 초가지붕이었다. 형우는 겨울이 오기 전에 초가집 용마름 이엉을 직접 이었는데, 그걸 초가지붕 한가운데 씌워 놓으면 멋도 멋이지만 겨울에 그렇게 따뜻할 수가 없었다. 형우는 빗자루도 잘 만들었다. 수수 알갱이를 털고 난 수숫대로 술을 만들고, 손잡이를 만들어서 나일론 줄로 단단하게 처맸다. 빨간 수수비(수수 빗자루)는 거칠어서 마당에 흙 따위가 잘 쓸렸다. 수수비를 마당비로 쓰고, 방비(방 빗자루)는 탈곡하고 남은 벼로 만들어 썼다.

 

겨울이 되면 형우는 뜨개질로 스웨터와 양말을 떴다. 다른 사람들은 양말을 발목에서부터 뜨기 시작하는데, 형우는 발가락에서부터 떠올라갔다. 뜨개질하는 형우 옆에서 입분도 실을 만지기 시작했다. 입분은 잘 입지 않는 스웨터 실을 풀어냈다. 스웨터에서 실을 풀면 실이 꼬불꼬불한데, 거기에 뜨거운 김을 쐬어주면 실이 곧게 펴졌다. 양은 주전자의 뚜껑 손잡이를 풀어서, 거기에 실을 넣고 주전자 주둥이 쪽으로 실을 빼내었다. 주전자에 물을 조금 부어 끓이고 김이 올라오면, 실을 잡아당기면서 천천히 감아주었다. 그럼 꼬불꼬불하던 실이 완벽하게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 펴져서 다시 사용할 수 있었다. 입분은 헌 실로 동생 상규의 양말을 떴다. 나일론 양말을 신을 때마다 발이 시리다고 칭얼대던 상규의 목소리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양말을 뜰 때 발뒤꿈치 파는 방법이 어려웠는데, 입분은 눈썰미가 좋아 금방 익혔다. 입분은 여섯 살 터울의 어린 동생 상규에게 털양말을 만들어 신기며, 많이 아꼈다.

 

입분에게는 고민이 하나 있었는데, 그건 바로 자신의 이름이었다. 이름을 이야기하면 한 번에 제대로 받아 적는 사람이 없었다. 입 할 때 ’, 분꽃 할 때 이라고 설명을 붙여야 했다. 특히 시은고등공민학교에 다닐 때 음악 시간은 정말 고통스러웠다. 음악선생은 출석을 부르며 성을 뺀 이름만 불렀는데, 종례! 집에 가, 끝분이! 너 끝번으로 낳았어?, 입분이! 너 어디가 이뻐? 너 나와봐, 라고 해서 입분은 음악 시간마다 스트레스를 받았다. 입분은 같은 학교를 졸업한 오빠 인구에게 이름 때문에 힘들다고 고민을 털어놓았다.

 

인구는 입분에게 새로운 이름을 지어주려고 옥편을 폈다. 집에서 한자를 아는 사람은 인구와 입분 둘 뿐이었다. 인구는 입분에게 밝고 진실하게 살라는 의미로 밝을 자에 참 자를 써서 효진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입분은 효진이라는 이름이 마음에 들었다. 직장 사람들에게도 효진이라는 이름을 알려주었고, 송현교회에서 결혼할 때도 효진이라고 이름을 달았다.

 

결혼 후 입분은 개명신청을 하러 갔다. 법원은 대한민국 전체에 입분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680명이 있고, 그 이름이 혐오스럽지 않다는 이유로 신청을 기각했다. 입분은 전국 전화번호부를 펼쳐보았다. 김입분, 박입분, 정입분입분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정말 많았다. 그 여자들은 그 이름을 가지고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지 궁금했다.

 

몇 년 뒤 입분은 같은 직장 사무실에 있는 은순이 은화로 개명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부르는 이름만 바꾼 줄 알았는데, 물어보니까 호적도 다 바꿨다고 했다. 개인 행복 추구권이라는 것이 생겨, 본인이 자기 이름에 만족하지 못하면 그런 이유로 개명 허가가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그 길로 입분은 작명소를 찾아갔다. 태어난 연도, , , 시를 알려주었고, 원장에게 세 가지 이름을 받았다. 입분은 세 가지 중에 도영이라는 이름이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본인의 이름을 도영이라고 스스로 정했다.

 

법원에서 개명 허가를 받은 입분은 이제 도영으로 살고 있다. 이쁜이나 입분이나 효진이나 도영이나 모두 같은 사람인데, 도영은 어쩐지 다시 태어난 것만 같은 좋은 기분이 든다. 남숙은 이름 때문에 시간 쓰고 돈 쓰고, 오랫동안 마음 고생한 딸에게 미안하다. 도영은 안다. 형우의 잘못도 남숙의 잘못도 아닌 것을. 도영을 어떤 이름으로 부르건, 사랑을 가득 담아 불렀던 형우와 남숙의 목소리를.

 

송림동 집 마당. 도영
송림동 집 마당. 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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