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손을 조급하게 질식시킬 조력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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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손을 조급하게 질식시킬 조력발전
  • 박병상
  • 승인 2011.03.1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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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in 칼럼] 박병상 / 인천도시생태·환경연구소 소장

새로운 약을 개발하는 제약회사도 갯벌을 매립하는 토건회사도 일찌감치 자신이 아니라 환자, 그리고 후손의 이익을 위해 개발하는 거라 홍보해왔다. 그러면서 가난한 이에 만연된 질병보다 부자들의 생명 연장에 관심이 높고, 후손에게 온전히 전해야 할 환경을 뭉갠다. 드러나는 부작용을 숨기는데 급급한 제약회사는 새로운 약을 개발하기에 앞서 환자와 허심탄회한 논의를 번번이 생략한다면, 갯벌을 매립하거나 4대강의 흐름을 차단하는 토건회사들은 자연이 사라진 뒤 놓일 후손의 삭막한 처지를 염두에 두지 않는다. 자신들의 한시적이자 배타적인 돈벌이를 위해 환자와 후손을 위한다는 명분을 내세우는 그들은 다른 이의 생명과 재산을 담보로 자신과 남의 영혼을 판다. 노회한 정치권과 언론이 개발자 편에 선 전문가와 손을 마주잡았기에 가능한 일이다.

언론을 동원하며 식량 증산이나 질병 퇴치를 위해 노심초사하는 모양새를 과시하는 생명공학은 더욱 심각한 식량위기를 초래할 가능성을 높이고, 허술한 처치로 멀쩡했던 생명을 위험에 빠뜨리기도 한다. 막대한 연구비를 받은 전문가는 자본에 손을 더 벌리고, 가능성을 연일 침소봉대하는 언론은 필연적 실패 사례를 보도하지 않는다. 비교우위 명분으로 식량을 외국에 의존해왔던 국가 중에 시시각각 다가오는 국제적 식량위기에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는 나라가 과연 몇이나 될까.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닌 건, 정치권의 감언이설이 애초의 의사결정 과정을 불투명하게 이끌었기 때문이었다. 눈앞의 이익에 반사적으로 반응했던 정치권은 그때나 지금이나 개발자가 내세운 명분 뒤에 숨을 뿐, 그로인해 발생한 사태에 책임질 생각이 별로 없다. 개발 이익을 분별없이 좇던 우리 앞에 돌이킬 수 없게 다가온 지구온난화와 석유위기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한국해양학회와 인하대학교 서해연안환경연구센터에서 ‘인천만 조력발전 타당성 검토 토론회’를 서울대학교에서 2011년 1월 7일 공동 주최한 바 있다. 그 토론회에서 발표자들은 한국수력원자력과 GS건설이 강화도 인근 갯벌을 가로막을 인천만 조력발전의 경제성을 과대평가했다고 이구동성으로 주장했다. 갯벌 면적의 감소에 의한 손실을 줄이면서 온실가스 저감과 관광 수익의 편익을 과대평가했다는 것으로, 그 주장은 한국수력원자력과 GS건설이 내세운 전문가들의 논리와 거의 상반된 연구결과였다. 그렇다면 우리는 누구의 주장이 정당하다 믿어야 하나. 이해하기 어려운 용어를 남발하는 전문가의 태도보다 장차 갯벌의 생태적 가치를 향유할 후손의 시각을 소외하는 전문가의 자세가 우리를 두렵게 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전문가의 의견이 충돌하는 조력발전을 굳이 서두르는데 동의해야 하나.

인천만 조력발전의 문제를 제기한 전문학자의 주장을 믿는 환경단체와 지역의 어민들은 서둘러 제방을 쌓아 갯벌의 해수 흐름을 가로막으려는 한국수력원자력과 GS건설, 그리고 그들이 원하는 일정에 맞게 공유수면매립기본계획안을 마련한 국토해양부에 반기를 들었다. 한강을 비롯한 크고 작은 하천이 황해로 흘러든 이래 최근까지 우리 서해안에 드넓게 펼쳐진 갯벌은 한반도에 조상이 발걸음을 옮긴 이후부터 이제까지 숱한 먹을거리와 넉넉한 습기와 아름다운 경관을 무한히 제공해주었다. 그러므로 조상이 온전하게 물려준 그 ‘비빌 언덕’을 후손에게 있는 그대로 물려주는 일은 당연한 의무로 여길 것이다. 하지만 조력발전을 계획하는 측은 지구온난화의 주요 원인인 이산화탄소의 배출이 전혀 없는 친환경에너지라는 점을 강조한다. 이럴 때 유권자의 표를 의식해야 하는 정치인은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까.

한국수력원자력과 GS건설이 추진하는 인천만조력발전과 지난 인천시 행정부에서 추진했던 강화조력발전이 동시에 계획되고 있는 곳이 강화군인데, 강화군에 지역구를 둔 어떤 정치인이 최근 섣부른 주장을 내놓아 주민들의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강화조력 추진 여부를 주민투표로 결정하자는 제안을 내놓으며 자신의 노회함을 과시하는 촌극을 연출한 것이다. 강화군의 각종 단체들이 찬성하는 사업을 군민의사를 묻지 않고 취소하는 건 부당하다고 밝힌 그는 “강화군에 대규모의 조력발전소가 건설되면 인천국제공항과 연계한 관광산업 활성화와 방조제를 이용한 연육도로 개통 등 막대한 시너지 효과가 창출돼 1석3조 이상의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주민들을 현혹했다고 언론은 전했다. 그는 누구의 주장에 경도된 것일까. 반대 측 전문가는 아닐 테고, 후손인가 유권자인가, 아니면 개발업자인가.

그 정치인은 주민투표를 제안했다. 언뜻 주민의 자유의사를 지지하는 듯 보이지만 그는 갯벌의 가치를 주장하는 의견들을 무시했다. 갯벌이 상쇄하는 이산화탄소의 양은 조력발전이 상쇄하는 양보다 적지 않을 뿐더러 식량자급에 차지하는 비중까지 고려한다면 갯벌을 잃어 생기는 부담은 막대하다는 것, 또한 그 피해는 영속적이라 후손에게 고스란히 전가된다는 과학적 주장을 그는 주민들에게 애써 알려주지 않았다. 일부 주민이 반대하지만 대다수가 찬성한다고 그 정치인은 내세웠지만 찬성 주민이 누구인지, 그 주민들이 갯벌의 가치와 후손의 생명에 주의 깊게 생각할 기회를 가졌는지 언급하지 않았다. 조력발전으로 제방과 도로가 생기면 부가가치가 극대화될 것이라는 감언이설을 던져놓고 주민투표하자는 제안은 일시적 돈벌이를 위해 후손의 생명을 선조의 다수결로 폐기처분하자는 주장과 진정 다른 것인가.

자식을 건강하게 키우려는 이라면 그 누구라도 제 이익을 위해 자식의 생명을 팽개치려 하지 않는다. 아무리 노회한 정치인이 집요하게 유혹해도 진실을 알고 나면 유권자의 권리를 제대로 행사하려 할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유권자가 진실에 접근하기 어렵게 만든다. 충돌하는 전문가의 어려운 주장이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만이 아니다. 양심을 가진 언론도 진실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양측 의견을 비슷한 비중으로 소개할 뿐이다. 한쪽은 막대한 이익을 장담하며 갯벌 손상이 크지 않을 거라 장담하고, 한쪽은 갯벌의 가치가 크게 훼손될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인다. 주민들은 갈피를 잡지 못하는 사이 한 정치인은 은근슬쩍 주민투표를 제안한다. 논의에 초대되지 않은 주민은 후손과 더불어 소외되기만 한다.

개발에 앞서 제기되는 다양한 주장은 사후 발생할지 모르는 문제를 미리 검토하는 계기를 마련해주므로 대개의 경우 환영해야 한다. 개발을 서두르면 놓칠 수 있는 문제를 진작 파악해 대처할 수 있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당대나 후손에 영향을 미칠 환경이나 경관의 파괴를 최소화하면서 최대다수의 행복을 지향하는 방안을 찾으며 양보와 타협안을 사회적 합의로 만들어 갈 수 있다. 강화도 일원의 조력발전처럼 대립적인 주장이 충돌할 때 더욱 그러할 것이다. 그런데 개발 이익이 주민에게 돌아간 예가 드물다는 숱한 경험적 사실을 개발자도 정치인도 언론도 생태전문가들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조력발전이 실패했을 때 주민과 후손에게 전가되는 파탄이 정치인과 개발자와 언론과 생태전문가에 파급되지 않는다는 사실도 알려주지 않았다. 이럴 때 유권자를 진정 생각하는 정치인이라면 무작정 찬성투표부터 임하자고 성화할 리 없다. 사회적 합의를 이끌 심층논의를 제안할 것이다.

첨예한 의견이 대립될수록 충분한 논의가 수반되어 의사가 투명하게 결정되어야 한다. 바로 심층논의다. 그래야 사회에 신뢰가 성숙하고 주민의 삶은 지역에 뿌리 내리게 된다. 관심을 가진 주민을 포함하여 대립하는 주장을 가진 측이 불편부당하게 모여 충분한 논의를 펼치고, 필요하다고 합의될 경우 합리적 검증과정을 투명하게 거친 뒤 민주적으로 의사결정을 한다면 개발자도 후손을 위하는 재생 가능한 에너지를 발굴한다는 애초의 대의명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대안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를 위해 강화도 일원의 조력발전은 강화든 인천만이든 서두를 하등의 이유가 없다. 외국의 사례도 가감 없이 살펴볼 가치야 없지 않겠지만 이미 시행되고 있는 우리나라의 사례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 시화만이나 가로림만과 같은 다른 지역에서 조력발전을 건설하거나 계획 중에 있으니 그 결과를 주목한다면 내일을 위한 바람직한 대안을 찾는데 크게 기여할 게 틀림없다.

거듭 제기되는 문제를 그때마다 백안시하거나 왜곡하면서 개발자의 이익에 충성하며 개발절차를 막무가내 밀어붙인다면 당장 시민사회의 저항을 피할 수 없겠지만 사태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을 것이다. 한번 파괴하면 돌이킬 수 없는 갯벌을 당대에 모두 잃어 자칫 후손을 질식시킬 수 있지 않은가. 내일을 위한 법안을 유권자와 더불어 만들어갈 자세를 갖춘 정치인과 자식 키우는 유권자는 어떤 감언이설 앞에서도 그 점을 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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