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도시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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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도시로 가는 길
  • 박병상
  • 승인 2011.02.17 20:30
  •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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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in 칼럼] 박병상 / 인천도시생태·환경연구소 소장


인천에 살면서 아직 거부감을 가진 음식이 있다. 흔히 홍탁이라 말하는 삭힌 홍어회로, 1980년대까지 전라도 사람들은 삭힌 홍어를 즐겨 먹는다는 사실을 미처 알지 못했다. 인천 사람들은 신선한 홍어를 주로 쪄서 먹었기 때문이다. 진주에서 근사한 김치찌개 앞에서 당혹했던 기억이 있다. 추어탕도 아닌데 산초가 잔뜩 들어간 게 아닌가. 초대한 이를 생각해 맛있게 먹는 시늉을 했지만 아직도 산초는 어색하다. 익숙하지 않다. 대신 인천 사람은 밴댕이회를 고추장 양념과 버무린 회무침에 익숙하다. 회무침을 피하고 싶은 외지인에게 강요한다면 스트레스를 받을 테고, 배탈로 고생할지 모른다.

집은 허름해도 물 맑고 공기 좋은 시골에 사는 사람이라면 최첨단 가전제품이 완비된 대도시의 아파트에 와서 행복을 느낄 것 같지 않다. 건드리면 고장날 것 같은 전자제품에서 나오는 전자파 뿐 아니라 폐쇄된 콘크리트 단지에서 생면부지의 얼굴들과 도무지 정 붙일 자신이 없을 것이다. 산촌에 사는 이는 어촌 생활에 서툴고, 식당을 하던 사람이 옷장사에 자신이 없으며, 체육인은 장문의 글을 써야 하는 일이 몹시 버거울 것이다. 갑자기 외국어를 사용해야 할 때 다가오는 스트레스를 생각해 보라. 익숙하지 않은 일을 하면 몸은 물론 마음도 피곤하기 마련이다. 한데 모든 언어에 우열이 없듯, 음식과 생활문화에도 우열은 없다.

'삶의 방식'을 문화라고 학자들은 말한다. 그러므로 문화에 우열은 있을 수 없다. 어떤 지방의 독특한 환경은 특별한 삶의 방식을 만들어내고, 결국 지방의 문화와 역사, 그리고 전통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그런 환경에 익숙하지 않은 채 살려고 하면 금세 피곤해질 것이다. 건강마저 해칠 수 있다. 농어촌과 산촌만이 아니다. 겉보기 비슷비슷해 보이는 도시도 마찬가지다. 도시의 연륜을 반영하는 삶의 방식이 깃들어 있는 시민들은 건강할 게고, 마냥 어색하고 불편하다면 스트레스를 받아 병에 걸릴 것이다. 병원 완비보다 시민들의 편안한 삶을 최대한 배려하는 도시가 진정한 건강도시라고 볼 수 있겠다.

전문가는 건강한 도시의 조건을 병원과 보건소의 양적 질적 수준으로 평가하지 않는다. 청결과 안전, 질 좋은 주택환경, 지속가능한 생태계, 높은 주민의 참여의식, 안정된 고용, 원활한 인적·물적 교류, 활력 넘치는 지역 경제, 그리고 독특하게도 비착취적인 지역공동체를 꼽으며 공중보건과 질 높은 의료 서비스는 뒤로 미뤄놓는다. 과거 전염병 퇴치나 보건의료에 중점을 두었던 세계보건기구도 건강증진에서 최근에는 건강 거버넌스, 다시 말해 참여와 행동으로 자신의 건강을 능동적으로 챙길 수 있는 정책을 도시에 권고한다고 전문가는 전한다.

'건강도시연맹'이란 게 있다는 걸 최근 연수구에서 열린 '건강도시 연수구 연구 용역 사업설명회'에서 알았다. 용역을 담당한 전문가는 유럽 25개국 1000개 이상의 도시가 회원으로 가입한 건강도시연맹이 2003년 서태평양 지역에 창설되었고 현재 11개국 158개 도시가 회원으로 활동한다고 전했다. 희한하게 우리나라에는 27개 도시가 가입한 중국과 17개 도시만이 가입한 일본보다 회원이 많아 62개 도시에 이르는데, 우리나라 도시들이 중국과 일본보다 건강에 대한 의식과 수요가 많다는 걸까. 아리송한데, 정작 인천에는 회원으로 가입한 도시가 없다고 한다. 연구용역 수행 과정에서 연수구가 인천 최초로 서태평양 지역의 건강도시연맹에 가입하고 건강도시 실현을 위한 정책을 펼쳐나갈 거라던데, 설명회 현장에서 우려하는 시민들의 목소리도 들렸다.

건강도시는 번듯한 건강도시연맹의 가입증서가 증명하는 건 물론 아니다. 전문가들이 정리한 그럴싸한 개념을 지역 여건에 도입하는 용역도 아닐 것이다. 주민들의 능동적인 참여로 실현되지 않는다면 공염불로 그칠 공산이 크다. 또한 지역의 삶의 방식, 다시 말해 문화와 역사를 이해하지 않고 펼치는 정책이라면 실패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따라서 연수구는 연수구의 지역 특색을 찾아 주민들과 함께 행동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하고, 용역은 그에 걸맞은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해야 하리라 생각한다. 다행히 용역을 담당한 전문가는 지역에 오래 살았고 지역을 잘 이해하는 주민들과 협의하며 수행하겠다고 약속해 청중의 기대에 부응했다.

건강도시는 단순히 질병과 환자가 상대적으로 드문 도시, 같은 맥락으로 거리에 젊은이가 넘치는 도시도 아닐 것이다. 안심하고 내 식구와 자신의 삶을 의탁할 수 있는 도시라야 건강한 도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자면 몸은 물론이고 마음의 건강까지 배려할 수 있는 도시의 설계와 정책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뒤에서 다가오는 자동차 때문에 사고를 당할 가능성이 없는 도시, 5분 걸어 반가운 이웃을 만날 수 있는 공원, 갑자기 살던 집과 직장에서 내쫓길 염려가 없는 도시, 낯모르는 이에게 정신적·물적 피해를 입지 않을 도시, 곳곳에 역사와 이야기가 있어 먼 데서 온 친지들과 찾아갈 곳이 많은 도시, 주변의 자연생태계와 녹지가 연결돼 이웃들을 가까이에서 바라볼 수 있고 그만큼 자연재해가 적은 도시, 그리고 정신이나 신체에 상처를 입은 이웃을 부담 없게 치료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춘 도시라면 건강도시라고 자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도시에 거주하는 시민들은 자신이 사는 지역에 자긍심을 가질 게 틀림없다.

오래된 나무나 숲, 역사유물이나 고택, 어릴 적 추억이 깃든 골목이 건재한 도시라면 상대적으로 쉽겠지만 사정이 그렇지 못한 아파트 숲의 신도시라도 정주의식으로 건강한 도시를 만들 수 있다. 단지 내에 불쑥 나타나는 자동차가 없는 도시를 독일을 비롯한 유럽 국가의 도시들은 재개발의 기본 개념으로 도입한다. 아장아장 걷는 아기도 안심하고 돌아다닐 수 있는 주택단지에서 시민들은 외지인에게도 여유를 보였다. 텃밭을 조성해 저렴하게 분양해 건강한 먹을거리의 자급에 기여하고 태양이나 지열, 그리고 바람과 같은 재생 에너지를 도입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빗물을 호수로 완충해 지하수와 이어주는 공원을 아름답게 조성하자 시민들은 여간해서 다른 지역으로 이전하려 하지 않는다고 했다. 우리도 충분히 참고할 사항이다.

결국 정주의식이다. 내가 사는 지역에 주민등록을 두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삶의 뿌리를 내리는 것이다. 자신과 식구의 삶을 의탁하는 지역에 뿌리를 내린 시민들은 평소 잘 알고 지내는 이웃을 서로 배려하니 갈등은 발생하기 어렵다. 이웃 사이의 범죄가 드문 것은 물론이고 외롭거나 어려움에 처할 때 손을 내밀 이가 주위에 있기 마련이다. 그런 도시는 용역이 아니라 시민의 능동적인 참여로 만들어갈 수 있다. 연수구는 시민들과 함께 건강도시를 만들어가겠다고 천명했으니 그 과정이 실현되길 기대한다. 용역은 주민의 정주의식을 높이는 데 기여할 방법을 능동적인 주민과 함께 만들어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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