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무관심 속 "알바 청소년 방치 심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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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무관심 속 "알바 청소년 방치 심각"
  • 이병기
  • 승인 2011.01.31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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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체불 · 최저임금 미지급 등 '부당대우' 많아


인천여상 '안심알바 신고센터'에서 진행한 교내 노동인권 캠페인 (안심알바 신고센터 제공)

취재: 이병기 기자

"작년 7월 PC방에서 매주 주말 10시간씩 일했어요. 한 주 일한 돈은 다음 주에 받는 식이었죠. 사정이 있어서 가게 문 을 닫았다고 일요일에 출근하라고 해서 그날 갔었는데, 가게 문이 닫혀 있었어요. 사장님은 연락이 두절됐구요. 7만7900원을 못 받았어요. 옆 가게에 물어보니까 컴퓨터를 다 철거해갔대요." - A(18)양

"남구 용현동의 한 당구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카운터를 보고 실내를 청소하는 일이었어요. 근로계약서는 쓰지도 않았고, 쉬는 시간도 없었죠. 작년 10월에 5일 동안 일했는데, 월급을 주지 않는 거예요. 임금을 달라고 해도 '법대로 하라'고 무시했어요. 또 전화를 했을 때도 '바닥에 뿌려줄까'라고 폭언을 하구요. 23만원 가량 임금이 밀렸죠." - B(18)양

겨울방학을 맞아 용돈을 벌기 위해 거리로 나선 청소년들이 어른들의 무관심 속에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 어리다는 이유로 임금을 주지 않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거나 최저임금을 알려주지 않는 등 청소년 근로권익 침해행위가 발생하고 있어 사회의 관심이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겨울방학을 맞아 최근 청소년 근로권익보호 관계기관 합동점검을 벌인 결과 수도권과 6개 광역시, 2개 지방도시에서 38개 업소 147건의 관계법령 위반사항을 적발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번 합동점검은 여성가족부와 고용노동부, 지자체 합동으로 작년 12월20일~23일까지 패스트푸드점, 일반음식점 등 청소년들이 자주 아르바이트를 하는 업소를 대상으로 진행됐다. 인천의 경우 21개 점검업소 중 3곳에서 13건이 적발됐다.

인천에서 적발된 건수 중 근로계약서 미작성이 12건으로 가장 많았으며, 기타(성희롱 예방교육 미실시, 건강검진 미필 등)가 1건으로 조사됐다.

서울에선 12곳의 점검업소 중 6곳에서 16건(근로계약서 미작성 10, 연소자 증명서 미비치 3, 최저임금 미지급 1, 야간 휴일 근무조건 위반 1, 기타 1), 부산의 경우 21곳에서 35건(근로계약서 미작성 4, 연소자 증명서 미비치 6, 최저임금 미지급 1, 기타 24) 등이 적발됐다.

광주에선 9곳(16곳의 점검업소) 41건의 적발건수 중 무려 5곳에서 최저임금 미지급으로 나타났다. 근로계약서 미작성 8건, 연소자 증명서 미비치 3건, 임금체불 1건 등도 있었다. 

여성가족부 관계자는 "적발 건수가 많은 '근로계약서 미작성'은 청소년 아르바이트가 단기간 근로를 하고 쉽게 그만두는 특성으로 업주가 근로계약서 작성 자체를 번거롭게 인식하고 있었다"면서 "청소년들에게도 반드시 계약서를 작성해야 최저임금 보장이나 심야·휴일근로 제한 등 법률에서 보장하는 권익을 보호받을 수 있다는 인식이 낮은 데 기인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업주가 고의로 계약서 작성 없이 청소년들을 고용한 후 불리한 처우를 제공할 경우 청소년들이 직접 근로감독기관에 불이익을 호소하지 않으면 피해구제에 어려움이 많다"면서 "적발 장소는 주로 청소년들이 자주 찾는 곳과 그들이 즐겨 먹는 떡볶이, 김밥집, 찜닭 등 소규모 일반음식점이었다"라고 말했다.


인천여상에서 조사한 청소년들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느낀 부당한 대우는?'

한편, 고용노동부 중부지방고용노동청이 작년 1~9월까지 연소자 고용사업장을 대상으로 정기 근로감독을 벌인 결과 점검업체 43곳 중 무려 42곳에서 206건의 위반건수가 적발됐다.

세부 내용으로는 근로계약서 미작성이 31건으로 가장 많았으며, 최저임금을 알려주지 않은 경우 29건, 근로자명부 미작성 22건, 연소자 증명서 미비치 17건, 임금대장 미비치 11건 등으로 나타났다.

또 임금을 지급하지 않은 사례는 8건, 최저임금보다 적게 지급한 경우는 5건으로 조사됐다.

신호재 중부고용노동청 근로감독관은 "근로계약서나 근로자명부 미작성 등 행정서류를 갖추지 않아 적발되는 것은 청소년뿐만 아니라 성인 대부분에서도 지적된다"면서 "특히 청소년들은 사업주하고 다툼을 벌이다 좋지 않게 아르바이트를 끝내는 경우가 많다"라고 말했다.

청소년들은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고 며칠 지나지 않아 그만두기 일쑤라는 것이다. 업주들은 이런 청소년들을 곱지 않게 보고, 아이들은 며칠 간 임금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다툼이 일어난다는 얘기다.

신호재 근로감독관은 "임금 미지급 신고가 들어와 업주들을 만나보면, 그들은 '돈의 문제가 아니라 아이들 버르장머리를 고쳐놓아야 한다'고 말한다"면서 "이런 경우 업주들을 설득해 미지급 임금을 지불하도록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청소년 스스로 노동인권 인식하는 여건 마련해야


아르바이트를 구할 때 가장 먼저 보는 것은?

그러나 청소년 노동인권을 지키기 위해 가장 중요한 점은 아이들이 스스로 자기 권리를 알고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인식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하인호 인천여상 교사는 "어른들도 마찬가지지만, 아이들의 경우 자신의 부당한 대우를 신고했을 때 그나마 일하고 있던 자리마저 놓칠까봐 하지 않는다"면서 "인식은 있지만, 알고 있는 것과 직접 신고하는 것은 별개 문제로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청소년들이 학교에 다닐 때부터 노동인권 교육을 받으면 나중에 사용자나 노동자가 되더라도 인식을 갖고 생활할 수 있을 텐데, 아직 그런 교육은 거의 없는 실정"이라며 "업주들에게도 애로가 있겠지만, 청소년들의 저임금을 희생양으로 삼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라고 충고했다.

중부고용노동청은 연소근로자 근로조건 보호를 위해 작년 한 해 인천시내 고등학교에 '안심알바 신고센터'를 설치하도록 권고한 결과 12개 학교가 이를 받아들여 설치했다.

'안심알바 신고센터'는 학교 안에 설치된 신고센터에서 직접 청소년들의 피해사례를 수집해 고용노동청에 통보하면 노동청이 사업주에 대한 법 위반 여부를 조사해 조치하는 제도다.

기존에 청소년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직접 노동청을 찾아가 신고해야 하고 이후 몇 차례씩 다시 찾아가 조사를 받는 번거로움이 있었지만, 학교에 설치된 센터에 신고하면 나머지 과정은 센터와 노동청이 직접 해결해 주기 때문에 접근성이 좋고 번거로움이 줄어든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잡무에 시달리는 일선 학교 교사들이 센터 업무까지 병행하기는 어려운 게 현실이다. 인천지역에 설치된 12곳의 센터 중 인천여상 단 1곳만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인천여상 '안심알바 신고센터'는 각 반에서 활동 희망자를 모집해 1학년 11명, 2학년 4명, 3학년 3명으로 구성됐다. 6명의 교사가 함께 참여해 교내 직업진로지도 박람회 부스 운영(근로계약서 작성, 설문 스티커, 노무사 상담), 피해사례 상담 접수, 운영요원 노동인권교육, 노동인권교육 강사단 워크숍 등을 진행하고 있다.

하인호 교사는 "센터 설치 전에는 학생들이 노동청에 신고하기에 접근성이 떨어지거나 과정이 복잡하다는 단점이 있었다"면서 "하지만 센터 설치 이후 학생들이 노무사나 교사를 통해 상담만 받으면 팩스 한장으로 이런 절차들이 생략돼 자주 찾는다"라고 말했다.

그는 "작년에는 중부고용노동청이 시범사업으로 진행했지만, 앞으로 더 많은 학교가 참여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한다"면서 "아울러 지역의 청소년 단체 등과 네트워크를 형성해 위반업주 단속이나 노동인권 홍보 등을 병행할 필요가 있다"라고 제안했다.

하 교사는 "무조건 잘못된 업주들만 지적할 게 아니라 잘한 곳에 대해선 모범사례를 만들어 알리는 등 사회 전체적으로 분위기를 조성해야 마땅하다"면서 "학생들의 노동인권 교육을 위해 강사나 교안을 마련하는 일도 절실하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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