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이 함부로 사람들을 쫓아내지 못하는 문화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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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이 함부로 사람들을 쫓아내지 못하는 문화를 위해"
  • 김선경 기자
  • 승인 2015.04.09 18: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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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51] 유채림 작가 인터뷰, 오는 10일 미림극장 인천 최초 개봉
홍대 칼국수집 ‘두리반’의 철거위기에 홍대의 51개 이상의 인디밴드들이 모여 철거반대투쟁에 함께했던 과정을 있는 그대로 다큐멘터리로 담은 영화 <파티51(2013)>.
 
 

오는 10일 오후 7시 30분에 영화 <파티51>이 인천 최초로 미림극장에서 개봉된다. 이날 <파티51>의 작가이자 밥집 ‘두리반’의 주인인 유채림 씨와 '두리반' 철거반대투쟁의 과정을 찍은 정용택 감독이 참여하는 ‘작가와의 대화’, 영화의 주인공인 ‘민중엔터테이너 한받’의 공연 또한 풍부하게 준비돼있다. 이에 앞서 9일에 직접 홍대 칼국수집 ‘두리반’에 방문해 유채림 작가와 이야기를 나눠봤다.
 
우리는 ‘투쟁’이라고 하면 격한 궐기, 거창한 사명감 등 무거운 것들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지난 13년 ‘건강하고 즐거운 투쟁’이라는 새로운 투쟁의 형태를 영화 <파티51(2013)>에서 홍대 인디밴드들을 통해 즐겁게 제시한 바 있다. 더 나아가 영화 <파티51(2013)>은 홍대 칼국수집 ‘두리반’의 철거로 인한 문제점을 다루는 것은 물론, 홍대 음악가들의 현실적인 삶까지 다루고 있어 영화 평론가들 사이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영화 제작의 배경을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원래 서교동삼거리 쪽에 ‘두리반’이 있었는데, 가게를 연지 2년 10개월 만에 호텔 토지로 건설사가 가게건물을 매입을 해버렸어요. 건설사가 일방적으로 제시한 이사비용 300만원을 거부했더니, 건설사에서 협상을 하지도 않고 2009년 12월에 갑자기 용역과 인부들이 쳐들어와서 가게를 강제철거를 시작해버린 것이죠. 그래서 두리반에서 철거반대투쟁을 시작했습니다.
 
영화에 보면 2010년부터 촬영을 하셨던데, 뮤지션들은 언제부터 함께 투쟁을 해주셨나요?
 
영화 촬영을 시작한 것은 2010년 2월말부터고, 2011년 7월까지 촬영했습니다. 이 상황을 한겨레나 경향 등 진보언론에 기고를 해왔고, 이를 ‘아내의 우물, 두리반’이라는 기사를 한겨례에서 내줬어요. 이를 보고 ‘한받’ 등 예술가들이 '두리반'에 모여들기 시작한 것입니다.
 
혼자서 하시던 농성 초기와 홍대 음악가들이 도와주기 시작한 이후, 어떤 점이 달라졌나요?
 
영화에는 홍대 인디밴드들이 참여한 상황만 담겨있지만 당시 ‘두리반’ 철거반대투쟁에 참여해주신 분들은 굉장히 많아요. 월요일에는 음악회, 화요일에는 영화상영, 목요일에는 용산참사에 참여해주셨던 기독교인분들이 모여 예배를 하셨고, 영화에서 볼 수 있는 인디밴드들이 참여한 것은 금, 토요일입니다. 모든 분야의 예술가들이 모인 공간이었어요.
 
투쟁 당시 두리반에 벽화를 그려준 예술가들이 지금의 두리반 가게 바닥에도 그림을 남겼다.

이런 모임을 날마다 할 수 있었던 것은, ‘두리반’이라는 공간이 용역들로부터 안전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를 작가들이 돌아가며 윤리, 도덕적으로 철거의 문제점을 언론에 기고해줬던 덕분에 함부로 용역들이 건드리지 못하는 공간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유롭게 공연을 할 수 있었던 것이죠.
 
영화가 왜 청소년관람불가인가요?
 
밴드들의 가사에 욕들이 많기도 하고, ‘한받’의 댄스공연이 외설스러운 면도 있어서요. 하하.
 
영화의 어떤 부분이 가장 신나시던지?
 
51+ 공연 상황이 제일 신났습니다. 총 62개의 밴드들이 모여 메이데이(5월 1일)에 1박 2일로 5100원의 입장료를 받고 공연을 진행했었습니다. 당시 두리반의 건물 전체가 다 공연장이었습니다. 62개의 밴드가 너무 많다보니 층별로 무대를 3군데 설치했죠. 지하는 포크계열, 3층은 펑크나 록 공연, 유명하고 멤버가 많은 빅밴드들은 두리반 뒷마당에서 진행했었습니다. 관객들이 무대를 골라볼 수 있는 즐거운 공연이었죠.
 
그걸 계기로 두리반이 전국적으로 알려졌어요. 그때부터 두리반이 철거농성장에서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변모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한국 투쟁운동사는 다소 무거운 느낌이잖아요? 그걸 완전히 뒤집어, 새로운 문화투쟁운동의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한 것입니다.
 
영화에 홍대 인디밴드들의 현실도 담겨있는데.
 
그 이야기는 지금의 홍대문화가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 아셔야합니다. 김영삼 정권 때 발생한 성수대교 붕괴 이후 한강다리를 전체적으로 점검하기 시작하면서, 2호선이 지나는 양화대교도 점검을 했어요. 그래서 2년 동안당산역과 합정역 사이가 끊어지면서 2호선이  순환이 불가능했었어요. 그러면서 상수동 일대, 홍대 일대가 교통이 힘들어지니 이 동네가 집값이 싼 동네가 됐었습니다. 당시 신촌에 비해 낙후된 곳이었죠. 집값도 싸고, 전반적으로 가격이 쌌어요. 그러다 보니 배고픈 예술가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한 것이 지금의 홍대문화의 시작입니다.
 
특히 홍대 365번지 일대에 창작가, 예술가들이 모이기 시작해 직접 제작한 물품을 팔기 시작한 시장이 지금의 홍대가 된 것입니다. 그걸 젊은이들이 홍대를 많이 오게 되고 자연스레 클럽이 많이 생겨 뮤지션들도 많이 모일 수 있었어요.
 
하지만 이제 사람들이 많이 모이기 시작하고 다시 2호선이 다니게 되면서 집값이 많이 오르기 시작했어요. 예를 들면 당시 클럽 B의 월세가 60만원이었는데, 지금은 180만원이 되버리니 클럽들이 어려워져 하나둘 문을 닫고 있어요. 뮤지션들은 이제 공연할 공간이 없어져버리게 되버린 것이죠. 결국 홍대문화를 만든 뮤지션, 예술가들은 설 곳이 없어지고, 쫓겨나게 돼버리는 거죠.
 
그렇게 자본에 의해 쫓겨나는 뮤지션들의 처지가 ‘두리반’의 처지가 비슷하니 영화 <파티51>에 두리반과 홍대 뮤지션들의 현실을 맞물리게 담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또 영화에 어떤 내용들이 나오나요?
 
두리반에 전기가 끊기는 등 당시의 급박한 상황도 나오고, 명동 카페 M도 쫓겨나게 된 상황이라 이를 함께 돕는 내용들도 담겨있어요.
 
문인이셨다고 하는데.
 
인천 작가회의 회장도 역임했었고 지금도 활동 중입니다. 영화에서 볼 수 있는 내용들을 르포로 기록해서 <매력만점 철거 농성장> 책을 엮기도 했어요. 인천에서 나오는 계간지 ‘작가들’에 장편 소설을 요즘까지도 연재 중이었습니다. 올 여름에 엮어서 책으로 낼 예정이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덧붙이실 말이 있으시다면요?
 
자본에 의해 쫓겨나는 사람들이 없으면, 자본이 함부로 사람들을 못 쫓아내는 문화가 형성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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